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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밖] 언젠가 세상은 한 장의 보고서가 될까?

최종 수정일: 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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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골머리를 앓던 시기의 최대 고민은 1차 자료였다. 어떤 자료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반복하는 데에만 만족하던 학부생 시절, 수업에서 읽은 텍스트는 대부분 이론서이거나 누군가가 잘 가공한 책들 뿐이었다. 누군가가 잘 정리해 둔 이야기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막막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1차 자료’는 달랐다.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형태의 자료, 즉 아무런 이론이나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은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무언가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막연함 같은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 막연함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1차 자료를 접하긴 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학적인 논문을 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 어렵게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정도였다. 뭐든 생각 없이 부딪혀 봐야 아는 것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석사과정에 들어왔고, 앞으로 내가 어떤 연구, 어떤 방법, 어떤 방법론들을 만나게 될지도 알지 못했다. '군대'라는 연구 대상만 있었다. '역사를 다루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연히 지도교수, 동료 대학원생들이 이야기하는 ‘역사’를 주워 들으며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


자료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은 커녕 그걸 어떻게 수집하고 활용하는지도 모르면서 미국에 있는 내셔널 아카이브(정확히는 칼리지파크에 위치한 2관)에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연구용역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듀선생의 만화에서도 등장했던 곳으로, 수많은 박스를 기계적으로 열고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곳이다. 물론 할당량을 못 채웠다고 감자튀김만 먹는 형벌 같은 건 없었다.


고문서관이라고 하면 일렬로 뻗은 책장을 배경으로, 책상에 웅크리고 앉아 어두운 조명에 의지해서 금방이라도 부서질듯 연약한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분위기가 떠오른다. 창가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먼지가 위아래로 물결 치듯 움직이는 모습이 비치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은 숨죽이며 과거의 단면들을 읽어 내려간다... 왜 이런 이미지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셔널 아카이브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일렬로 길게 뻗은 책장은 아쉽게도 볼 일이 없다(서고는 직원만 들어갈 수 있으니까). 다만 사방에 놓인 넓은 책상들과,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이 있을 뿐이었다. 내셔널 아카이브는 단지 조금 오래된 자료를 다룰 뿐인 현대적인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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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아카이브에 간다. 근처 카페테리아에서 대기하다가 시간이 되면 입장한다. 아이디 카드를 찍으면 뚱한 표정을 한 경비원이 노트북이나 스캐너 뚜껑을 열도록 지시한다. 혹시라도 다른 문서가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며, 나갈 때도 문서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똑같은 절차를 거친다. 줄서서 들어가서 2층 문서실로 향한다. 문서실에 가자마자 괜찮은 자리를 골라 잡고, 보관해두었던 박스 카트를 반출한다. 그리고 카피센터로 가서 열람 확인증과 기밀해제 확인증을 받는다(둘 다 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기밀해제 확인증은 일련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 쪼가리인데, 기밀해제된 서류는 반드시 이걸 올려놓고 스캔해야 한다. 이후 오버헤드 스캐너를 대여하고 자리를 세팅한다. 여기까지 하면 대략 15분 정도 걸린다.


이제 문서를 넘겨가며 필요한 부분을 계속 스캔한다. 여유롭게 하나하나 읽을 시간은 없다. 내 눈도 고성능 스캐너처럼 필요한 키워드만 빠르게 캐치해내야 한다. 오버헤드 스캐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손으로 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다. 종이의 재질과 형태는 무척 다양하다. 얇고 뒤가 비치는 기름종이, 부서지기 직전까지 황변한 종이, 보풀이 잔뜩 일어난 도화지, 손바닥만 한 메모부터 곱게 접힌 지도까지. 잘 보존된 것도, 여러 사람 손이 거치면서 가장자리가 뜯겨나간 것도 있다. 헤진 종이는 넘길 때마다 먼지가 일어서 눈과 코를 간지럽히고(절대로 눈을 비벼선 안 된다!), 보존용 약품 냄새로 머리가 슬슬 아파온다. 글자만 보다가 사진이라도 발견하면 반가운 느낌이 든다. 필요한 자료는 아니어서 고화질 스캔은 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어떤 시점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경이로운 느낌도 든다. 이 사진 속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프레임의 사각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행정 서류가 대부분이지만 한창 전쟁 중일 때에도 기관원들에게는 시시껄렁한 일상이 있다. 누가 휴가를 가서 좋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는 둥, 누가 다리를 다쳐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는 둥 잡담이 적혀 있기도 했다. 때때로 한국인들도 등장한다. 대부분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거나 일본군에서 붙잡힌/탈주한 포로들이다. 언제인가는 미군이 노획해서 영어로 번역한 어떤 일본군 병사의 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일기엔 어느 날 몇 시에 어디로 이동했다는 간단한 일지가 적혀 있었다. 병사는 거의 세 달 동안 기차 타고 배 타고 행군하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병에 걸려 후송되고 어떻게 본대를 따라잡을지 고민하면서 복귀했다가 또 병에 걸려 후송되고 복귀하기를 반복했다.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동료들이 준 약과 담배에 기뻐하고, 어디에서 전투 중이고 어느 기지가 공습당했다는 소식을 듣거나, 본토에 두고 온 자녀의 생일을 떠올리며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보고서처럼 무미건조한 문장이었지만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전쟁은 전투로 꽉 차 있지 않다. 전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루한 대기 시간과 부대의 긴 이동이 필요하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그 여로에서 병사는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결국 그 병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보고서 작성자는 그가 죽었거나 생포됐을 거라고 적었다. 이걸 번역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일본계 미국인(닛케이진)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거라는 어떤 책의 인상적인 제목처럼, 언젠가 우리의 세상도 이렇게 한 장의 보고서가 될까?


사진제공. 김선우
사진제공. 김선우

문서실을 가득 채우는 건, 위잉 하는 오버헤드 스캐너의 작동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 때때로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뿐이었다. 한 장 한 장 과거를 음미하는 건 사치였다. 위에 잠깐 감상을 적은 것도 나중에 번역했기 때문이다. 나는 발주자가 지시한 과업을 수행하러 왔을 뿐이었다. 2주 안에(주말을 제외하면 고작 10일 뿐) 필요한 자료들을 모조리 찾아서 스캔하라! 이미 연구팀이 사전에 필요한 자료가 어느 레코드그룹 어느 시리즈, 심지어 어느 박스, 어느 폴더에 있는지 어느 정도 타겟팅을 해놓았기 때문에 내가 찾아야 하는 건 정해져 있었다. 그저 목록을 잘 보고, 슬립(Slip, 신청서)을 잘 쓰고, 그 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을 스캔하는 건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스트레칭으로 풀리지 않을 때쯤 “Attetion Researcher”이라는 방송음이 들려온다. 곧 닫을 거니까 얼른 짐 싸서 나가라는 말이다. 직원들이 떠드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제 처음 들어왔을 때 과정을 정확히 반대로 해서 나가면 된다. 금요일에는 직원들도 빠르게 퇴근하고 싶어서 행동이 잽싸다. 언제인가는 박스 카트를 반납하고 자리로 돌아오니 내가 반납해야 하는 확인증들을 미리 빼서 가져간 상태였다. 그렇지. 일하기 싫은 건 다 같은 마음이구나.


하루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며 팀원들과 자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쁘게 스캔하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자료에 대해, 혹은 내가 몇십 박스를 깠는데 관련 자료 하나 안 나왔다는 둥 그런 얘기들이다(나는 주로 후자였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팀원들은 역사 연구의 고충을 털어놓곤 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웬만해선 다 나오는 시대에, 심지어 그마저도 AI가 딥리서치 기능으로 원하는 걸 딱딱 찾아주는 시대에, 역사라고는 교과서와 종종 두꺼운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접해본 적 없는 나는 역사학에 어떤 환상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혹은 역사도 역사학도 역사적인 것도 잘 모르는데도 ‘역사적인’이라고 추임새를 붙여 강조한다거나. 실제 연구는 생각보다 멋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반복적이고 지루하고 눈과 머리와 어깨와 허리가 아파오고 때로는 불확실함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모든 연구가 그렇듯 말이다.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국가기록원,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자료를 찾으면서 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불안했다. 필요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고,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제목만 봤을 때는 길 가다가 5만 원짜리 지폐를 주운 것처럼 기뻐하다가 막상 보면 어린이은행 발권인 종이쪼가리인 것처럼 내 연구와 무관한 경우도 많았다. 그때는 내가 단지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자료를 볼 줄 몰라서,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전공자들은 막 슉슈슉 잘 찾아서 어쩌구저쩌구(이하 생략) 하겠지? 근데 전공했어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온갖 추측과 추리, 선행연구의 인도를 받아 더듬더듬 찾아가거나, 이미 누군가의 수고로 수집된 자료에서 발견하거나, 혹은 큰 맘 먹고 해외 아카이브를 털어도 큰 소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반대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하게 중요한 자료를 얻기도 한다.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수집하는 일은 월리를 찾는 일과 같다. 〈월리를 찾아라!〉에는 한 페이지에 꼭 한 명의 월리가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애매하게 오래되어서 보존된 것도 많고 여전히 발견되어야 할 문서가 많은 경우엔 더더욱. 누군가의 결실만을 섭취하던 나에겐 모든 게 자명한 설명처럼 보이지만 어떤 자료들의 묶음이 역사 '서술'이 되기까지, 그 밑바탕에는 미궁을 헤매며 불확실한 '실체'를 더듬더듬 짚어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모든 연구자들이, 아무도 보증해주지 않은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인가 동료에게 100년 후의 연구자는 지금보다 연구하기 수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2125년에 지구가 존재할지는 묻지 말자). 내가 찾는 40년대 자료는 죄다 종이에 타자기로 친 것들 뿐이고 그마저도 '공식 자료'들 뿐이었다. 기록의 모범이라고 불리는 조선시대도 왕의 실록과 글을 깨우친 선비들의 일기만 잘 남겨 놓았을 뿐,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는 풍문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서화되지 않은 기억들은 늘 그 진위를 의심받는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로 일기를 쓰고 인터넷에 공유하지 않는가? 그 양도 어마어마하니 2125년의 연구자는 2025년을 서술하기 편하지 않을까? 물론 별로 현명하진 않은 말이었다. 그때의 연구자들도 블로그와 트위터(현 X)와 페이스북과 메신저 캡쳐본 등 온갖 말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료의 진위와 가치를 평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정보값이 너무 많아서 더 힘들 것이다. 사실 40년대의 기관 자료에도 그런 게 많다. "A과장님, B씨가 오늘 3시에 회의 잡자고 하네요. - 총무과 C가"라는 연락 문서는 우리가 역사를 기술하는 데에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 어떤 역사를 쓰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자료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매시간 강조했던 것은 기록들이 그 자체로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기록 하나에 진실을 담을 수는 없고, 단순히 기록이 많아진다고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개인이 모인다고 사회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기관이 이런저런 목적을 가지고 문서를 작성한다. 문서들은 선별되어 아카이브로 보내지고, 아카이브는 또 나름대로 분류해서 기록물로 관리한다. 어떤 것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뭉텅이로 있고, 어떤 것들은 기밀로 지정되어 열람할 수 없다. 사고나 누군가의 의도로 영원히 소실되어 버린 문서들도 많다. 하나의 문서가 작성되기까지, 그리고 훗날 ‘기록물’이 되기까지 온갖 자의와 권력과 우연이 개입한다. 그게 하나의 서술이 되고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문서를 다른 문서들과 엮으면서 맥락 위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맥락을 만드는 작업에서 지나간 일은 역사가 된다.


얼마전에 국가기록원에 자료를 신청했는데, 대전본원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벌써 3주 전인데 아직 가지도 못했다.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충분히 시간을 낸다면 다녀올 수 있었을 텐데, 타고난 게으름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걸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게 만든다. 이불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거기에 내가 원하는 자료가 있는지는 모른다. 기껏 갔는데 쓸모 없을 수도 있다. 아니,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며 뭘 위해서 가는지도 잘 모른다. 뭔가 확실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열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일단 보아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늘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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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선우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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