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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밖] 런던과 도쿄의 신문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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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이었다. 한국연구재단 지원금으로 해외 학술대회를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이전까지, 해외 학회가서 발표하라는 말을 나에게 해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고, 주변에 가는 사람도 없었다. 국제학회 참석은 유학 간 친구들의 일, 아니면 교수님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행정의 문제로,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해외 어느 나라에 어떤 행사에 참가할 지 혹은 누구를 만나서 교류할 지에 대한 계획서를 적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산은 2019년 2월까지 다 털어서 사용해야 했다. 몇몇에게 물어보니 알려진 국제학회들은 발표신청과 선정결과 발표 일정이 6개월에서 1년까지도 걸리기 때문에, 그 일정으로 뭔가를 준비하는 건 무리라고들 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참가할 수 있는 국제 학술행사 정보가 테이블로 정리되어 있는 웹사이트를 알려준 것이다. 주변에서 이미 들은 말들과 달리, 거기에는 내가 당장이라도 발표를 신청해서 겨울 안에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세계 전역에서 열리는 수많은 행사 목록이 있었다. 같은 이름의 학회가 동시에 세계 십여 개의 도시에서 행사를 열기도 했다. 아마도 그 당시 처음으로 학계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약탈적’ 혹은 ‘가짜 학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얻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타협점을 찾았다. 목록의 행사 하나 하나를 자세히 검색해보면서 가장 뭔가 진정성 있어 보이는 행사를 골랐다. 2월 런던에서 개최되는 영화 관련 학술행사였고, 개최 장소도 런던대 버벡 칼리지(Birkbeck, University of London), 그러니까 대학이었다.


주최 기관은 런던 학제연구 센터(London Centre for Interdisciplinary Research, LCIR)라는 곳으로 2017년 런던에 설립된 비영리기구(NPO)였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박사학위를 받은지 오래되지 않은 유럽권의 학자들이 팀을 꾸려 이 단체를 설립한 것으로 보였다. 발표를 무사히 하기는 했다. 나는 한국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청년 담론과 재현의 젠더 정치학에 관해 발표를 준비했고,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른 연구자들과 같은 세션에 묶였다. 지인 아무도 없이 혼자 간 외국에서 영어로 한 발표였지만, 어쨌든 시간은 무사히 흘러갔다. 동시에 네 개의 방에서 발표가 진행될 정도로 나름 규모가 있었던 행사였고 공식적인 네트워킹 시간도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내향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 세션 직후 행사장을 뛰쳐나왔다.


단체의 핵심 관계자들과 이야기 나누어보지도 못했고, 정말 너무 짧은 시간, 내 세션이 있는 2시간 정도만 머무른 학술행사 경험이었지만, LCIR는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우선, 그때 그렇지 않아도 한국 서울에서 동료들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을 만들기 위해 한참 준비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당시 LCIR 스탭은 대부분 박사학위가 있는 것으로 보였으니, 대학원생들을 모아 출발한 신문연과는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LCIR도 대학 내에 안정적인 자리가 없는 연구자들이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학 밖에서도 학술적인 아젠다를 제시하고 또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할 수 있음을 서울과 먼 곳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당시 문화연구의 학제성(interdisciplinarity)에 대한 고민을 개인적으로, 또 동료들과도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 그리고 기성 연구자들이 구성해놓은 분과학문 중심의 경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의 실천이 이런 조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신기함을 느꼈다.


긍정적인 감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의 경험은 영어를 중심언어로 형성된 국제 학술 장의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LCIR은 하루 진행되는 학술행사 참석을 위해 1인당 100파운드(약 18만원)를 받았는데, 적어도 100여 명의 학자들이 행사에 참여했고, LCIR은 그때도 지금도 거의 한 달에 1~2개씩 지속적으로 비슷한 학술발표회를 진행하고 있다. 현장 다과는 뭔가 있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정도는 아니었으며, 현수막이나 배너 등 학술행사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꾸밈도 거의 이루어져있지 않았다. 이걸 가짜 학회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학술행사의 짜임새도 완성도가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대학 혹은 가까운 유럽 대학 소속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여러 연구자들이 각자 소속대학의 펀딩을 통해 15분짜리 발표를 하러 영국에 모였다. 이것은 아카데믹 투어리즘일 수도, 혹은 해외에서 발표한 것을 국내에서 발표한 것보다 더 인정해주는 로컬 학술 제도의 맥락이 모인 결과일 수도 있을테다. LCIR은 수천만 원을 벌어가고, 영국은 수많은 아카데믹 투어리스트들을 소비자로 맞이한다.


또한 LCIR에서 학제성은 분과학문의 강고한 틀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형성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저 참여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가려주기 위한 세련된 수사로 쓰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이지만 영화를 연구한 적은 없는 내가, 그저 내가 재밌게 본 몇몇 한국영화들에 대한 비평적 인사이트를 가지고 ‘영화 연구 컨퍼런스’에 지원할 수 있는 용기를 냈던 것처럼, 그곳에서 이루어진 많은 발표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매우 어려워보였고 ‘집단적 독백’ 짤을 연상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내가 편견을 조금 내려놓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네트워킹하려는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 성찰해보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LCIR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적어도 그때의 짧은 느낌으로는, LCIR이 참가자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하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LCIR은 경력이 필요한 새로운 젊은 학자들을 지속적으로 충원할 수 있는 위치(런던, 영어)에 있으며 100파운드쯤 낼 수 있는 세계의 젊은 박사들과 대학원생들은 꽤나 무한히 많아보인다. (찾아보니 최근 행사는 현장 참여시 150파운드, 온라인 참여시 90파운드 정도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을 만드는 과정에 있던 내게, LCIR은 어쨌든 대학이 아닌 곳에서 꽤나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인 학술 제도를 구성할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주었다. 물론 서울에 있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영어를 20년 넘게 배웠지만 겁부터 내는 우리는, LCIR과 같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적 위치를 갖지 못했다는 점이 커다란 차이였다. 못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안 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수익보다는 메시지를 만들고 싶었고, 철저히 사적 이익에 기반해 한 번 왔다 가 버릴 익명의 누군가보다는 이 네트워크 안에서 호혜적 관계를 쌓아 나갈 동료 관계를 형성하고 싶었다. 잘 하고 있는 점도,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어느덧 7년차를 맞이한 학술단체가 됐다.


EAYSA 웹사이트 캡처
EAYSA 웹사이트 캡처

그러던 와중 최근 새로운 자극을 주는 외국의 학술단체를 알게 되었다. 도쿄에 있는 선배가 발표해보라고 추천해준 곳으로, 2024년 설립해 현재 베타 버전으로 운영하고 있는 동아시아청년학자협회(East Asia Young Scholars Association, EAYSA)라는 조직이다. 마침 내가 동아시아의 청년을 연구하는 연구사업단에서 일하게 된 상황이기도 했던 터라, 2025년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되는 청년 심포지움(Youth Symposium 2025: The Intersection of Research, Civil Society, and Young People in East Asia)에 참여하고 있다. 발표 신청 단계부터 이메일 연락, 프로시딩 등의 모든 과정이 영어로 이루어졌다. 현지에 오니 참가자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은 물론 베트남,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미국 등의 지역적 맥락을 담은 발표들을 주로는 일본에서 공부하거나 활동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노력을 거쳐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젊은 학자(Young Scholars)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는 탓인지 대학원생 발표는 물론이고 학부생, 심지어 고등학생 발표자도 있었는데,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괜히 해보는 중이다.


얼마전 신진 설문조사를 통해 참가비가 비싸지만 다과와 만찬이 성대한 학회와 참가비가 저렴하지만 부실한 학회 사이에서 밸런스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 EAYSA 행사는 따지자면 후자에 속한다. 후원이 넉넉치 않을텐데도 참가비를 전혀 받지 않는다. 대신 3일 일정 동안 식사는 물론, 다과나 음료, 물조차도 제공하지 않는다. 발표 환경은 매우 잘 갖추어져 있지만, 포스터나 현수막, 자료집 같이 비용 드는 일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처음 건물을 찾을 때 많이 헤맸다. 딱 하나 제공된 것은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고 부를 수 있도록 하는 명찰이었다. 


제공된 네임카드, 귀여운 크기를 손민수하고 싶다
제공된 네임카드, 귀여운 크기를 손민수하고 싶다

하지만 돈이 별로 없어보인다는 것이 오히려 ‘느좋’ 포인트다. LCIR과는 달리 EAYSA는 모든 참여자들이 3일 전체 일정에 참여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참여자들이 일정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어설픈 영어로나마 서로에 대해서 묻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서로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익어가고 있다. ‘진정한’ 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네트워킹에 대한 지향이 전체적으로 있어 보이고, 나는 자연스럽게 (일본어/영어/한국어 중 하나의 양식으로 작성할 수 있는) 회원가입 신청서를 적었다. (현재 회비 없음!)


일본 도쿄에서 막 시작한 단체이지만, 애초에 처음부터 국제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신기하고 인상적인 점이었다. EAYSA의 이름 그 자체도 도쿄나 일본이 아닌 동아시아로 시작하고 있다. 멤버 중에는 일본 유학 중인 한국인 대학원생도 있어서, 내가 도착하자마자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나요?”라고 한국어로 인사해주었고 사실 내게 영어로 온 메일들이 다 그가 적은 것이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국제적인 교류에 대한 지향이 내 대학원 생활을 통해 전혀 생겨나지 않았고, 그게 왜 필요한가, 너무 형식적으로 강조되고 (사실 글을 통해 어느 나라 이야기든 다 읽을 수 있는 LLM의 시대에)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여기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내 연구 주제가 한국이라는 국가적 맥락과만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대학원 생활 중에 외국인 동료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난 한국인들끼리 공부할 수 있는 과정에서 졸업한 걸 운이 좋았다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부터 동아시아를 범위로 삼아, 외국의 연구자들을 스케일 있게 초대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아마 홍콩에서 학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넘어와 박사과정 생활을 하고 있는 EAYSA 공동창립자의 개인적 배경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여기서 만나고 있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드는 감정은 아직까지는 약간의 호기심 정도이고, 또 여전히 국제교류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 정도의 생각은 새롭게 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한국 내에서 이야기할 때도 해외 사례를 참조하게 된다면,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번역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때 우리에게 준비된 우리의 네트워크가 없다면, 그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특히 우리와 완전히 다른 입장이나 관점에 있는 누군가가 독점하도록 내버려두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청년이라는 맥락으로 연구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고 하니, 주변 활동가 친구들도 다들 일본과 중국에서의 청년정책이 어떤 상황인지 내게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일본에서, 다른 아시아/서구 청중들 앞에서 발표를 해보니, 청년(youth)이 왜 19-34세인지부터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고, (39세까지 늘리려는 논의가 있다고 했더니 다들 strange하다며 웃었다.) 나 또한 일본과 중국에서 청년이 몇 살부터 몇 살까지를 일컫는 개념인지조차 모르는 바보 상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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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어가 덜 유창해서 아쉽지만, 첫 번째에 배부를 수는 없고, 영어로 말하는 연습은 어쨌든 열심히 할 것이다. 우리가 ‘동아시아’라는, 그리고 ‘젊은 학자’라는 공통점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여기서 출발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만날 일들이 종종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게 되었다. 그리고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도 사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고민이, 한국을 넘어서는 스케일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언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자극을 받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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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선기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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