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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도교수님, 맑은 뒤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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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둔다는 것, 그리고 지도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학원에 처음 들어와서 누군가와 스승-제자 관계가 된다는 것이 신선하다, 혹은 신기하다고 느꼈다. 형식적으로 지도교수는 학생이 학위 논문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것이지만, 이 관계가 형식적인 것에서만 그치지 않기도 한다. 지도교수는 나의 학문적 선배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동료가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지도교수에게 바라는 것, 지도교수가 나에게 바라는 것, 그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정말 제각각의 경험들을 한다. 동시에 지금 나와의 관계가 ‘표준’, 혹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이번 탁상공론은 대학원생과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서로 자기 지도교수에 대해, 그와 관계하는 나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님과의 관계가 차지하는 지분이 그만큼 큰 것이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많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금 나와 지도교수의 관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또 지도교수님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고, 교수님을 이해하게 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면서, 우리가 ‘연구자’가 되어가는 그 여정에서 지도교수님은 어떤 존재일까? 또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 우리는 이 관계에서 어떤 걸 바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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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소개:


두호 박사 졸업. 지도교수 3명(석사 2명, 박사 1명)을 경험했고, 박사 때는 많이 시달렸다. 현재는 ‘독립 지향’ 상태


화분 박사 수료. 석사-박사 지도교수가 다르다. 지도교수에게 바라는 게 없다. 리터럴리.


양산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같다. 교수님의 조카가 되고 싶었으나 적당히 된 듯하여 적당한 거리의 필요성 느끼는 중.


곰탕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다른데 사실 바뀐 게 아니라 두 명이 된 걸지도 모른다.


매실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같다. 애증을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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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분이(이런 분이) 나의 지도교수님?!


화분의 이야기

석사 때는 학과 교수님들의 은퇴 문제로 어떤 교수님에게 지도를 부탁드릴지 한참을 헤맸었어. 석사 학위 논문은 문화연구를 하시는 분이라면 누구에게 가도 지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4학기 들어가기 직전에 방목형 교수님께 지도를 부탁드렸어. 근데 그때가 코로나 시기였거든. 그래서 석사 지도를 ZOOM으로 두 번 받고 졸업했어. 그 후 그 교수님은 은퇴하셔서 내가 박사를 들어가려고 할 때쯤에는 박사 지도를 못 해주시는 상황이었지. 석사 때의 경험상 지도교수님의 역할을 크게 생각 안 했었고, 그보다는 문화연구만 하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는 문화연구학과로 갔어. 사실 박사 들어갈 때는 그 안에 교수님이 누가 몇 분 있는지도 안 알아보고 갔어. 사전에 컨택도 안 했고. 그냥 나는 그 학과가 문화연구인 게 중요했지. 그래서 그 과로 박사과정을 지원했고, 다행히 받아주셨어. 그냥 지도교수님 수업 들었을 때 서로 잘 맞고 하니까 “제 지도를 맡아주세요”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지도교수와 제자가 되어 버린. 그래서 여기에 대해 딱히 큰 감각이 없네.


(두호 석사 때 지도를 많이 못 받았는데, 박사 때는 많이 받았어?)

(화분 응응. 그래서 되게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 수업을 듣고 면담을 하면서 교수님한테 지도를 받는 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지.)


두호의 이야기

나는 지도교수가 두 번 바뀌었어. 지도교수님이 석사 과정 중에 딴 학교로 가셨거든. 그래서 전공이 다른 선생님으로 변경해야 했고.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석사 때의 ‘공동’ 지도교수였어. 그분은 내가 석사과정일 때 새로 부임하신 분이었는데, 그분 수업을 들으면서 질적연구를 처음 접하고 이걸 내 방법론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지. 이분한테 질방을 배우면서 유대 관계가 강해졌어. 논문도 같이 썼고. 그러다 보니 원래 지도교수님과는 라포가 쌓이지 않았어. 사실 박사과정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현재 지도교수님 때문이었어. 근데 석사 때는 ‘공동’ 지도교수였고 건너건너의 관계였잖아. 그땐 학생의 역량을 키워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면, 박사 때 ‘정식’ 지도교수가 된 이후에는 다른 관계가 형성된 거지. 완전 돌변한 거야. 왜냐면 교수님이 일을 많이, 빨리 몰아치면서 하는 스타일이어서 내가 그거를 따라갈 수가 없었던 거야. 공부며, 과제며 이런 것들이. 게다가 막 BK 사업을 시작했고, 너무 많은 과업과 발표를 해야 했지. 물론 결과적으로는 좋았어. 외부 활동도 하게 되고 논문도 많이 썼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았어. 근데 그러고 나서 지금은 가끔씩 연락해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잘 나누고 괜찮은 관계가 됐어. 이젠 동료로 안착한 편이야.


(화분 교수님이 정말 장난 아니시네.)

(두호 정말 힘들었어. 본인도 대학원생 시절 악랄했대. 논문을 써야 되면 파티션에 ‘말 걸지 마시오’라고 써붙였다고. 진짜 대단해. 그땐 너무 힘들었어. 논문을 300페이지 써서 갔는데 “이건 논문이 아니라 보고서야”라고 하시기도 했지. 나중에 벽 보고 막 울고… 한 번은은 친구한테 재미로 타로카드를 봤어. 지도교수님이 너무 힘들게 하니까 교수님과의 관계를 봤는데, 웨딩 카드가 나온 거야. 선생님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지. 악마 이런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도 선생님이 두호쌤 너무 좋아서 못 사는 것 같다고 말하고. 당사자인 나는 체감을 못했지. 힘드니까.)


매실의 이야기

나도 석사 때는 대학원에 정확히 어떤 교수님이 있는지는 잘 몰랐고, 그냥 잘 맞겠지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었어. 잘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2학기 때부터는 지금 지도교수님의 조교가 되었지. 그러다 보니 좀 더 가까운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긴 해. 근데 가끔 교수님은 나를 통해서 다른 학생들을 혼내실 때가 있어. 내가 빌미를 준 것도 있긴 하지만… 발제문에 오타를 낸다든가 비문이 많다든가 하면 꼭 내가 발제할 때 혼내시고. 그런데 평소에 내가 그냥 학교에 편하게 가고 싶어서 모자 눌러 쓰면 평소보다 조금 아파 보이거든? 어떤 날은 유독 힘들어 보였나봐. 갑자기 교수님이 잠깐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조교 일 시킬 게 있나보다 해서 연구실에 갔는데 교수님이 대뜸 요즘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셨어. 분위기가 뭔가 힘들다고 해야 할 것 같고… 그런데 교수님이 팔을 벌리면서 안기라고 하시는 거야. (일동 놀람) 어머, 어머, 이러면서 살짝 안기고… 쬐금 눈물? 감동도 받고… 지금 돌이켜 생각 해보면 그때는 교수님도 나를 잘 모르셨던 것 같아. 친해지는 과정에서 내가 좀 여려 보이니까 나름대로 케어를 해주시려고 했던 것 같고. 지금은 좀 거리를 두고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자로서는 너무 존경해. 앞으로 시작될 나의 마음가짐은 내가 교수님에게 오점을 남기겠다, 나라는 오점을 남기겠다는 거야.


(두호 나도 그 선생님 아는데, 그런 부분이 있었구나 진짜. 전에 내가 무슨 사고를 당했는데 새벽에 괜찮냐고 연락주시기도 했어.)

(양산 진짜 멋진 사람이네. 진짜 나쁜 사람인데.)

(두호 우리 지도교수님도 밖에 나가면 완전 스윗하고 젠틀하고 그렇거든. 멋진 사람이라고들 해. 진짜 하나도 아닌데. 지도교수가 원래 그런 것 같아.)


곰탕의 이야기

나는 학부 졸업 앞두고 뭐하지, 대학원을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떤 선배한테서 자기 지도교수가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볼까 하다가 그 교수님이 담당하시는 학부 수업을 듣게 된 거야. 수업을 들으면서 대학원에 오라고 엄청 영업을 당했고, 나도 괜찮은 것 같아서 자대 대학원으로 가게 되었어. 선택하는 과정 그런 거 없이 그냥 그 교수님이 지도교수님이 된 거야. 자연스럽게. 그 이후로 크게 나쁜 일은 없었어. 오히려 지도교수였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연구용역 같은 경험들도 할 수 있었지. 근데 마주 앉아서 대화할 때 태도 같은 것들 있잖아. 뭔가 느껴지는… 이 분이 이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보면 좀 가부장이다 싶어. 나쁜 의미에서의 가부장이라기보단, 되게 기분이 묘한 거야. 제자의 앞길에 책임감을 느끼는. 내가 미래에 교수가 되는 걸 전제로 얘기하시고. 그리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 구분이 확실한 편.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잘 챙겨주고 일도 많이 시키고. 그러니까 되게 선을 잘 아시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 허물없이 대하는 편인데 뭔가 선을 넘어갔을 때 위험한 지점을 아시는 것 같았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부분 그 이상으로는 넘어오지 않는 거야. 이제는 지도교수가 바뀌어. 싫어서 떠났다기 보다는 학교의 지원이 많지 않았고, 또 한 학교에 오래 다녔으면 옮길 때도 됐지 이러면서 다른 학교를 선택했어. 근데 그 과정에서… 나도 사전에 컨택을 안 했네. 어쨌든 교수님도 나에게 다른 학교로 가라고 권장하시기도 했었고, 막상 다른 데 붙었을 때는 아쉽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었고. 그래서 학교를 옮기지만 지도교수가 바뀌었다기보단 지도교수가 두 명이 된 느낌이 더 강해. 그래도 운이 좋아서 원만하게 잘 지냈던 것 같아.


(양산 긍정적 가부장?)

(곰탕 약간 ‘자식’이 된 기분이 이런 건가? 이런 느낌.)

(화분 새로운 부모님이 되어주셨어요.)


양산의 이야기

나는 처음에 석사 입학 해서 어떤 교수님한테 가야 할지 오랫동안 결정을 못했어. 보통은 빨리 정하던데 지도를 받고 싶은 교수님이 별로 없었어. 나랑 비슷한 주제를 하는 사람은 보통 다른 교수님한테 갔지. 지금 생각하면 딱히 그렇진 않은데 그때는 그 교수님의 제자들과 내가 너무 결이 안 맞다고 느껴서 가기 어려웠어. 근데 우리는 교수님들이 한 명씩 들어와서 자기 연구 주제를 소개하는 수업이 있는데, 거기서 지금 지도교수님을 만났어. 그분은 제자가 많지 않아서 별로 정보가 없었지. 근데 그분 수업이 너무 웃긴 거야. 친해지고 싶었어. 그리고 또 하나는, 교수님의 다른 지도제자인 선배와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졌는데, 그분이 나와 교수님과 자신이 닮은 점이 많고, 자신이 교수님과 잘 맞으니 가는 걸 추천한다고 적극 영업하기도 했어. 그래서 3학기 때 지도를 부탁드렸어. 근데 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교수님이 계속 나한테 선을 긋는다고 느꼈거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얼탱없는 고민이었는데 그때는 매우 진지한 걱정이었어. 교수님이 봤을 때는 나는 다른 제자들과 결이 다르다고 느끼신 것 같아. 수업에서도 학생들 입장을 계속 물어보는데 내 입장은 분명하지 않으니까 ‘쟤는 뭘까?’ 이런 것도 있었던 것 같고. 그래도 1년 동안 꼬박 석사논문을 썼는데 지도를 되게 성실하게 해주셨어. 논문에서 좀 더 잘 주장할 수 있는 방식을 배웠던 것 같고. 그러면서도 나는 ‘왜 나는 진짜 제자가 아니고 다른 쌤들이랑 다르지’ 싶었던 거야. 석사졸업을 하고 나서도 되게 걱정했던 것 같아. 근데 이번에 그분의 조교로 들어가게 되었어. 좀 더 자주, 밀접하게 이런저런 연구 활동을 보조하게 되다 보니까, 예전에는 ‘왜 나는 진짜 제자가 아니지?’ 생각했던 게 너무 이상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벽이 없어졌어. 지금은 진짜 제자가 됐어^^ (물론 아닐수도)


(화분 최근에 교수님이랑 처음으로 밥을 먹었다고 하던데?)

(양산 맞아. 선배가 교수님이랑 밥을 먹으려면 밥을 사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선생님이 안 사주려는 게 아니라, 그냥 밥을 먼저 먹자는 말을 프로그래밍적으로 못하신대. 그런데 나도 그런 말을 잘 못하고… 한 번도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주 최근에 교수님이 나에게 먼저 밥을 먹자고 제안하셨어!!!! 대신 조교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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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의 돌봄, 제자의 돌봄


화분 교수님의 진짜 제자가 됐다, 나 교수님의 제자구나 이런 거를 느끼는 포인트? 사실 석사 때는 급하게 석사 논문 프로포절 직전에 지도를 요청 드렸었거든. 박사를 온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어. 뭔가 (지도교수를 정하기 위한) 물밑 작업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교수님의 제자인가보다 느꼈던 건 교수님이 나에게 일을 시켰을 때였어. 교수님이 어떤 행사를 준비하시는데 나한테 “너 조직위로 들어와서 일할래?”라고 했을 때 나 교수님의 제자인가봐 생각했던 것 같아. 학위 논문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 서로 좀 통하는 게 있는데?’ 하면서 지도교수와 제자로 연결되기도 전에 말이야. 나한테 일을 시킬 때 ‘나 어디 가서 교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감각이었어.


두호 두 가지인 것 같아. 지도교수가 논문을 지도하면서 연구를 키워주는 사람이면서 일상생활에서의 친밀한 관계이기도 하잖아. 나는 내 논문을 계속 봐주니까 지도교수라고 느꼈지. ‘이렇게 써보면 어떠냐’, ‘논문거리를 가져와라’, ‘논문 써라’ 하셨으니까. 또 친밀한, 특별한 관계라고 인식했던 건… 전에 논문을 내야했을 때 자문화기술지로 썼거든. 근데 너무 힘들었던 거야. 어느 날 카페에서 교수님을 만났을 때 “저 논문 못 쓰겠어요”라며 선생님 앞에서 울었어. 그러니까 선생님이 막 웃으시면서 “왜 우냐, 그러면 자문화기술지를 하지 말았어야지”라고 말씀하신 거야. 나쁘게 얘기하신 건 아니었어.

그 뒤로 나를 집에 초대해주셨지. 전에는 자기가 어디에 살고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얘기해주지 않으셨거든. 집에서 교수님이 밥을 만들어주셨어. 처음이었지. 여기가 선생님 공간이고 이런 곳에서 사시는구나. 내가 조금 더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가 됐구나, 이런 걸 느꼈지.


화분 대박이다. 


두호 그런 적 없어?


화분 응. (다른 사람에게) 가보고 싶어?


매실 아니… 근데 집에 초대받아 보고 싶긴 해. 


양산 내 친구나 다른 학교 사람들은 초대받아서 많이 가더라. 근데 나는 충분히 친밀해진 것 같아. 이미 많은 걸 알아버렸어. (웃음)


화분 예전에는 “교수님은 왜 내 이모가 되어 주지 않는 거야! 다른 학생들한테는 이모가 되어 줬는데!” 이런 얘기 하지 않았었어? 


양산 맞아, 맞아.


화분 나는 한 번도 지도교수님에게 친밀함을 바라본 적이 없어. 그냥 논문지도 잘해주면 되는 거지. 지도교수의 덕목은 논문지도야. 교수님을 통해서 돈을 벌어본 적도 없고. 물론 우리 교수님도 내 커리어를 걱정해주긴 해. 그게 되게 고마워. 근데 그것도 어쨌든 논문에 대한 지도란 말이지. 교수님한테 돌봄받기…? 나는 내 논문 얘기해주는 게 제일 돌봄 같은 느낌이야. 내 주제에 관심을 가져주고 같이 고민해주고 좋은 질문을 많이해주는 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두호 맞아. 어쨌든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아. 우리 선생님의 돌봄도, 사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지도제자인 내가 좀 더 계속 연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시는 거니까.


매실 나는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아. 오히려 나만 이분이 지도교수님이라고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했던 것 같고? 근데 또 얘기를 듣다 보니까 친밀하다고 느낀 포인트들이 몇 개 있었어. 언제인가 동기들하고 교수님들끼리 오손도손 석사 세미나를 했었어. 햇빛이 예쁜 날이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저기 가봐 사진 좀 찍어줄게 하면서 우리 사진을 찍었지. 그리고 카페에서 얘기하면서는 자기 젊었을 적 사진을 보여주고. ‘뭐야, 좀 가까워졌나 우리?’ 이렇게 느낀 게 있었고. 또 4학기 개강파티날에, 좀 술도 들어가고 하니까 교수님한테 인생네컷 찍으러 가자고 말했어. 그런데 교수님이 아직 자기 자녀분하고도 못 찍어보셨다고, 우리랑 처음 찍는다는 거야. 다음 날 깨고 나서 ‘나 미쳤나봐…’ 이랬지.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를 해주실 때에도 나에 대해 되게 잘 파악하고 계셨구나 생각도 들었어. 내가 좀 더 잘 연구할 수 있게 혼내기도 하시고.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지도하고 싶으셨구나, 그런 지점에서 약간 친밀함을 느꼈던 것 같아.


곰탕 나는 잘 모르겠네. 이 분이 나의 지도교수라는 걸 의심했던 적은 없었어서. 항상 지나가듯이 내가 너 지도교수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셨셨고.


두호 그런데서 가부장 성향이 나오는 거 아닐까? 내가 얘를 케어해야 하고 내 지도 대상이고.


곰탕 응, 그런 느낌. 어라, 석사도 박사도 내가 결정한 게 아니니까 진짜 이상하다. 아무튼 내가 지도교수에게 추구하는 게 뭐지? 음… 사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는 게 최고인 것 같아. 돈을 벌면서 내가 여유가 있어야… 근데 또 이렇게 되면 지도교수에게 종속되는 거 아닌가, 이런 느낌도 들고.


양산 나는 내가 돌봄을 하고 있잖아. 지금은 조교로 일하면서 교수님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언젠가 내가 해외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 나라에서 파는 커피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근데 그게 의도가 있는 말이 아니야. 그냥 생각나서 말하신 거야. 사오라는 게 아니라. (물론 사가긴 했지) 그런 부분이 되게 웃기고 나도 그런 성향이라 코드가 잘 맞아. 앞에서 다 말하니까 뒤에서 뭔 생각하는지 생각 안해도 되고. 논문 읽으면서도 그냥 머리 속에 있는 거 다 얘기하셔. 너무 웃겨. 되게 독특한 사람이야. 


두호 우리 교수님도 그런 돌봄 같은 걸 원하시는 것 같았어. 외로워하는 느낌. 그분이 다른 교수님들이랑 친하게 지니지 못하셨거든. 자발적인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든 나에게 그런 케어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해.


화분 그런 것도 궁금해. 나는 아직 졸업을 안 했고 수료 상태인데, 졸업한 이후에 지도교수님과의 관계도 달라질 것 같은 거야. 


두호 좀 더 연구자 동료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 ‘너 아직도 이 판에 살아 있구나’. 전에 그런 적이 있었어. 선생님하고 둘이 걷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선생님에게 ‘교수라는 게 그리 보람찬 직업은 아니죠?’라고 물었어. 선생님은 그때 ‘그렇죠’라고 얘기했던 것 같아. 어쨌든 계속 0으로 만드는 일이니까. 왔다가 나가 버리잖아. 뭔가 얘랑 계속 관계를 맺지만 내가 끝까지 케어하는 게 아니고 지도 제자들은 왔다 갔다 하니까. 누구는 아예 연구판에서 떠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지도교수라는 인간을 조금 이해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었어. 여전히 지도교수는 지도교수라 힘들었지. 또 한편으로는 졸업 이후에도 교수님을 자주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 멀리 도망가야겠다 싶었어. “두호씨, 오늘 오후에 뭐해요?” 이렇게 할 수 없게 멀리 떠나야 한다. 지도교수로부터의 독립, 중요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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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는 어떤 제자가 되어야 하나요?


양산 근데 곰탕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실제로 돈을 벌게 해주는 게 지도교수의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해.


화분 되게 양가적일 것 같긴 해. 우리는 과 내에서 돈이 안 도니까. BK도 없고. 


두호 그거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화분 안 해봤어. 우리는 다 알아서 하게 되니까. 대신 등록금만 좀 깎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정도. 하지만 교수님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 근데 주변 얘기 들어보면, 지도제자들 간의 인정 투쟁 같은 게 있더라고. 돈이 도는 학과는 누가 월급을 얼마나 받나, 이 프로젝트에 합류하나 안 하나 이런 게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감정 싸움 같은 것도 있었어. 누가 진짜 제자고, 누가 가짜 제자고.


매실 뭔가 교수님이 관심을 주는가, 자주 안부를 묻는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다들 생각이 많고.


화분 그런 게 나는 좀 당황스러웠어. ‘이 제자의 연구는 더 인정해준다’, ‘얘랑 더 연구 관심사가 잘 맞는다’ 이런 식으로 가는 걸 봤거든. 근데 두호는 어땠어? 주변 사람들에게 진짜 제자 취급 받은 거 아니야?


두호 맞아. 진짜 제자였지. 우리끼리는 그런 인정투쟁은 없었고, 또 선배도 없었고. 내가 유일한 1호 제자였고. 근데 나 스스로 그런 건 있었어. 선생님이 원하는 수준까지 연구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거? 학회도 많이 다니고 발표도 자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는 그런 강박. 내가 이 사람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게 있었어. 오히려 교수님이 그런 걸 요구하시진 않았는데, 내가 맞춰야 한다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


매실 내가 느끼기에 내 지도교수님은 학자 마인드가 강해서 내 제자도 학자여야 한다는 구분선이 있었던 것 같아. 학자다운 애는 진짜 제자가 되고, 덜 그러면 좀 가짜 제자 이렇게 분류되는 거고.


두호 연구할 학생에게 좀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화분 근데 그런 진짜 제자, 가짜 제자 같은 말들을 들을 때 좀 당황스러운게, 교수님에게 뭘 바라는 거지? 그냥 지도만 잘해주면 되지. 그 이상으로 뭔가 다들 바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교수님이 이 학생한테 뭘 더 해줘서 진짜 제자라고 하는 거지? 관심이라는 게 뭘까? 교수님한테 바라는 게 뭘까?


곰탕 나는 대학원생 수 자체가 적은 곳에 다녀서 그런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람이 많은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두호 나는 그런 건 있었어. 다른 교수님이 우리 교수님을 별로 안 좋아해서, 지도교수님이 제자인 나도 약간 경계했어. 나는 어쨌든 대학원생이니까 누구 선생님 제자든간에 친하게 지낼 수 있잖아. 근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 쟤네 무슨 얘기하고 있지? 이런 인상을 받긴 했었어. 오히려 교수님들이 서로 견제하는?


화분 그런 것도 확실히 있지. 교수님들 간 세력 다툼 같은 게 있어서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되고. 다른 제자들이랑 잘 지냈지만 그런 세력 다툼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어


(8월 23일,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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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곰탕

편집.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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