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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의 안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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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관계라는 건 어렵다지만,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역시나 어렵다. 교수 개인의 인성과는 별개로, 지도교수와 지도제자 간 위계라는 건 언제나 존재하니까. 교수의 말 한 마디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같기도 하다. 때로는 그 의중을 단번에 알 수 없어 해석이 필요해서 힘들고, 때로는 해석 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직설적인 표현이라 힘들다. 공부, 연구 그리고 행정 일은 서로 다른 영역의 일이지만 다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학생이자 제자로서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대학원 생활이 원래 다 그렇지, 라고 넘기게 되기도 하지만 문득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다른 대학원생들도 다 지도교수와 이런 관계를 맺으며 이런 생활을 하는 걸까?


답답한 심정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이야기하다보니, 〈지도교수-지도제자 관계론〉과 같은 일반론적인 이야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이른바 교수와의 안전 거리가 중요하다고 할 때 각자의 몸과 마음도 다르고 교수도 다르며 내가 감각하는 안전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차이로 인하여 나의 경험을 다른 이와 나누는 일은 더욱 의미를 갖게 된다.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많은 차이를 알게 되고, 그건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관계와 경험에 대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야 각자 지도교수에게 더 편하게 한 마디!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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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소개:


두호 박사 졸업. 지도교수 3명(석사 2명, 박사 1명)을 경험했고, 박사 때는 많이 시달렸다. 현재는 ‘독립 지향’ 상태


화분 박사 수료. 석사-박사 지도교수가 다르다. 지도교수에게 바라는 게 없다. 리터럴리.


양산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같다. 교수님의 조카가 되고 싶었으나 적당히 된 듯하여 적당한 거리의 필요성 느끼는 중.


곰탕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다른데 사실 바뀐 게 아니라 두 명이 된 걸지도 모른다.


매실 박사과정. 석박 지도교수가 같다. 애증을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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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원래 그런 분이니까


매실 우리 교수님은 말씀하실 때 엄청 쿠션을 많이 깔아. 그러다 보니 제자들끼리도 교수님이 이런 걸 얘기하신신 게 맞을까? 토론을 벌여. 또 누구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의중을 모르겠으니까 교수님 번역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나누곤 했어.


두호 우리 교수님은 되게 직설적이셨어. 지도 받으러 가면 ‘나한테 기분이 상한 건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되는 거야.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라는 식으로. 근데 그런 직설적인 표현들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였더라. 졸업하고 나서 언제인가 교수님이 꿈에 나와서 엄청 뭐라고 하시는 거야. 그때 그 직설적인 표현들을 사용해서. 울면서 깨고는 느꼈어.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면서 잊어버렸던 것들이 사실 내 속에 많이 쌓였구나 하는 거.


매실 각자 교수님 화법이 어때?


곰탕 직설적인 편이긴 해. 나도 논문을 처음 들고 갔을 때 이건 논문이 아니고 보고서라는 얘기를 들었었어. 네가 공부한 걸 잘 정리한 건 논문이 아니라면서. 근데 그렇게 막 혼내다, 병 주고 약 주기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자기가 너무 세게 말했나 싶었는지, “진심 아닌 거 알지?” 라고 되묻고. 


화분 교수님 화법? 쿠션을 많이 깔고 말하셔. 직설적인 피드백은 한 번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아. 오히려 마음껏 헤매고 오렴, 이런 느낌이 있었어. ‘네가 헤매고 와라, 나는 거기에 대한 답을 절대 내려주지 않을 거야.’ 당장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라, 이게 부족하니까 이걸 더 채워서 와, 이런 식으로 직설적이고 직선적인 피드백을 원하는 사람은 잘 안 맞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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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상사 사이


매실 나는 요새 그런 생각을 했어. 박사 들어가려고 하니까, 뭐든지 교수님과 상의하는 자세가 필요한 건가? 전에 교수님이 “이번에 어디 학회 간 것도 말 안 했더라?”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나는 내 기준에 재미있어 보여서 참여한 거 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교수님께서 자기한테 꼭 저자세로 대하는 건 아니더라도 뭔가 상의하고 자기 바운더리에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더라고.


두호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선생님한테 모든 것은 아니어도 연구와 관련된 거는 얘기하는 편이었어. 일부러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도교수도 지도제자에 대한 본인의 자세가 있잖아. 나에게도 지도제자로서의 자세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


양산 우리 교수님은 커리어에 관련된 거는 기대를 주지 않으려고 하셔. 나는 너를 책임질 수 없다고. 선생님의 제자들을 봤을 때 수료 상태로 오래 있거나 단체에서 일하거나 이런 사람들이 많거든. 그런 것에 대해 터치를 별로 안 하고 그냥 그렇게 사는 삶도 있다 이렇게 여기셔. 워낙 이쪽 판에 자리가 많지 않고 활동하는 것도 좋다고 여기시니까. 넌 꼭 교수가 되어야 한다, 같은 커리어에 대한 상 자체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책임을 안 지겠다, 이런 느낌인데 그만큼 간섭도 안 해.


두호 곰탕은 아까 교수님이 제자가 교수가 되는 걸 상정하고 있다고 그랬잖아. 그거에 대해서 책임져준다거나 그런 걸 해줘? 교수가 되도록 널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곰탕 음… 교수가 될 생각도 없지만 교수가 되더라도 그건 내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닐까? 근데 그만큼 본인이 어느 정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나도 지도제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거야. 


두호 그게 어떤 책임이야?


곰탕 일 잘하는 거. 근데 업무를 잘하는 것도 있지만 충직할 것.


화분 충직함의 의미는?


곰탕 시키면 묵묵히 잘하기, 라고 나는 받아들였어. 행정 업무를 하기도 하고, 지도를 받고, 식사도 같이 하고. 그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해. 그래서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다 힘들다 이러면서도 포기하면 안 돼, 이런 느낌으로 계속 했었어. 나도 내가 신뢰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던 것도 있었어. 인정받고 싶었던 건데 쉽진 않더라고…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너한테 너무 기대가 컸던 것 같아’ 이런 얘기 들은 적이 있었어. 논문 쓰던 때에. 


양산 너무 끔찍해.


곰탕 그니까. 끔찍한 얘기였어. 멘탈 한 번 흔들렸다가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돌아오긴 했었어. 나는 ‘저 논문 잘 쓸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지도교수님도 그렇고 다른 학과 교수님도 그렇고 쟤는 알아서 잘하겠지 이런 게 있었어. 그래서 내가 ‘나 진짜 모르겠는데요!’ 이러면 ‘그래도 잘하겠지’ 이렇게 되는 거야. 근데 정작 결과물이 안 좋으면 기대가 컸구나… 이러고. 물론 지도를 잘해주시긴 했지. 그런데 그런 식으로 멘탈이 막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는 거야. 그럴 때마다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 이 이상 많이 엮이는 게 좋지는 않다. 그래서 학교를 옮겨야 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있었어. 싫어서라기보다는 너무 오래 되어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두호 그래서 나 박사과정 다닐 때, 텔레그램으로 선생님이랑 소통을 했었거든? 그러다가 텔레그램을 삭제한 적이 있었어. 나한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주변에 ‘진짜 웃긴 애다’, ‘기가 찬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더라고. 근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 내가 너무 일이 많아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거야. 근데 선생님까지 보태니까 폭발해서 그냥 텔레그램을 삭제해버렸어.


화분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거야?


두호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셨던 것 같아. 스터디도 해야 하고, 수업 과제도 해야 하고, 세미나도 해야 하고 학회 발표도 해야 하고… 몸은 하나인데 할 일이 너무 많았어.


화분 텔레그램은 얼마나 지웠었어?


두호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바로 복구했겠지. 


양산 오래 버틸 수는 없었을까. 지도교수님과 업무적으로 엮이는 건 힘든 일인 것 같아.


두호 교수가 상사가 되는 건 확실히 힘들지.


화분 우리 학과에서도 어떤 교수님들은 프로젝트를 따와. 사람들이 거기서 연구보조원을 하고 돈을 받고 그래. 근데 우리 지도교수님은 사업 자체를 안 해. 다른 제자들이 그런 답답함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 대학원 등록금도 너무 비싸고, 장학금도 없고. 확실히 본인 정체성이 사업을 따와서 애들을 돈으로 먹여 살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커리어를 지원하고 연구자나 직업인으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건 있지만.. 


매실 나는 오히려 없어서 더 좋은 것 같아. 내가 이 사람에게 온전히 지도자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근데 상사와 맺는 관계는 또 다르잖아. 동시에 두 종류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건 되게 힘들 것 같아.


화분 연구 사업은 없더라도 각종 학회일 때문에 지도교수님도 제자들에게 일을 시키는 일이 생기긴 해. 주변에서 들어보니 생각보다 교수님이 일을 빡세게 시킨다고 하더라고. 근데 사업까지 했으면…? 엄청 더 힘들었겠다 싶어. 아무튼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프로젝트가 없으니 지도제자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돈 벌어. 각자도생하는 거지.


곰탕 우리 교수님은 완전 사업가야. 그러다보니 연구적으로는 지도를 많이 받지는 않았어. 이를 테면 학술대회에 나가서 발표를 해라, 학술지 논문 한 편이라도 써봐라 이런 얘기는 없었고 보통은 다 일 얘기. 물론 그런 일들도 나름의 커리어가 되기는 할 텐데, 또 학술장에서의 경험들은 너무 일천한 거야. 주변에서 학술지 논문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런 걸 못하는 건 조금 아쉽군, 이런 생각은 했었어. 학계에서 학술을 한다기보다는 일을 하는 느낌?


양산 근데 나도 곰탕과 같은 시기에 석사에 들어갔는데 정말 생활이 다르다고 느꼈어. 우리 교수님은 일을 전혀 안 하는 사람이거든. 전에 다른 대학교의 사업단에서 반 년 정도 일했는데, 연구책임자 교수님의 감정 기복에 따라 연구소 분위기가 결정되는 곳이었어. 진짜 가부장이었고 또 챙겨주기도 하는? 그러면서도 연구교수들 엄청 갈구고. 한 번은 나한테 그 사업단에서 수집한 자료를 써서 석사논문을 쓰라고 하는 거야. 나는 지도제자도 아닌데 말이야. 분명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 주제도 자료도 한 큐에 정해지니까. 그래서 보통 용역을 많이 하는 애들은 일을 통해서 자료를 취득해서 그걸로 논문을 써서 빨리 졸업한다는 걸 느꼈어. 곰탕의 경우엔 좀 분리가 되어 있었던 것 같지만. 보통은 분리되지 않고 랩실처럼 쭉 가는 구나, 했지.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니까 부러운 면이 너무너무 있는데 동시에 내가 원하는 연구라는 게 확실하다면 그걸 못할 수도 있다는 게 좀 그랬어. 또 일을 많이 한 친구들은 논문을 잘 쓴 경우도 있었지만 잘 쓰지 못한 채로 졸업한 사람도 많았어. 뒤에서는 저게 다 일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 거라고 말이 돌더라. 그런데 돈은 많이 버니까. 석사인데.


곰탕 그러면 그런 사람들은 석사만 끝내는 느낌이야?


양산 응. 유학을 가거나 해. 석사논문 잘 쓰는 거에 큰 비중을 안 두는 거지. 프로젝트도 많이 했고 경력이 있으니까. 


매실 그렇구나. 그런 건 우리가 논문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아서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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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맥락이 깊은 관계들, 이야기들


곰탕 요즘 생각을 했던 게, 요즘 지도교수와 지도제자 관계 자체가 지적을 많이 받잖아. 특히 이공계에서 무척 심하다고 하고. 최근에도 사건이 있었고. 이런 문제에서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매실 텔레그램 지우기?


곰탕 근데 그건 너무 개인화된 대응이니까… 단순히 탈출하기 말고?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게 도제식이니까 스승-제자 관계가 있는 거지만 학부에는 또 그런 건 없잖아. 또 사람들마다 편차가 큰데, 이걸 조정할 수는 없을까? 예전에 다른 탁상공론에서 나온 얘기이긴 한데 어떤 일반화된 매뉴얼 같은 걸로로 경험의 편차들을 잘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화분 맞아. 지도교수 한 명의 영향력이 너무 크긴 해.


두호 근데 그런다고 2명, 3명이 되면 그만큼 더 영향력이 커지거나 아무도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만 학교 다니는 상태. 지도교수가 없는 상태가 되고.


화분 응, 원자화된 개인으로만 남는 것도 진짜 어려운 것 같아. 선후배 관계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위계 나쁘다고 하니까 갑자기 모두가 원자가 되어서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 거야. 나는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따라가는 그런 게 주는 이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리스크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단순히 위계를 없애는 척하면 아무도 관계를 맺지 않게 되고.


두호 그래서 매뉴얼화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화분 굉장히 관계들이 맥락화되어 있으니까. 근데 우리가 매번 말하는 거지만, 이런 걸 말할 수 있는 자리는 많아야 하는 것 같아. 익명이 아니면 어디 가서 얘기하기 어렵잖아. 최근에 SNS에서  ‘지도교수가 나를 지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조질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글을 봤어. 지도교수 본인이 그렇게 말했대. ‘난 너의 인생을 조질 수 있는 사람이야.’


두호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지.


화분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워낙 관계가 맥락적이니까 일반화된 걸 말하기는 어렵잖아. 교수의 성향, 제자의 성향, 학과의 성향, 학교의 성향, 학과 내의 규범 같은 것들이 다 다르니까. 예전에 다른 분야 연구실에 보조원으로 들어갔을 때, 이공계는 정말 경제적으로나 연구로나 너무 종속되어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었어. 실험을 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혼자서는 예산을 감당할 수 없는 거야. 그 랩실의 연구사업에 참여해야만 학위논문을 쓸 수 있는 거고. 거기서 학생들이 어떤 모멸을 견뎌야 하는지도 옆에서 볼 수밖에 없었고. 포닥들도 교수의 폭언을 피할 수 없었지. 오히려 나한테는 안 했어. 나는 외부 사람이니까. 지도교수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다는 건 내 개인적인 경제 상황을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간접적으로 겪고 나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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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에게 한 마디


매실 탁상공론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게 있어. 교수님에게 한 마디!


두호 전화하지 마세요.


화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없어. 통상적인 것밖에. 나는 교수님한테 더 바라는 게 없고 내가 더 해드릴 것도 없다고 생각해. 서로 잘 내버려두고 있지 않나. 그냥 내 연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만족스러워.


양산 저를 제발 조교로 계속 써주세요.


곰탕 거리두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양산 돈은 중요하니까… (웃음) 


곰탕 이제 지도교수가 바뀌는데, 괜찮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잘 다녀야지…


매실 보여줄 게 완전히 달라진 나(feat. 에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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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화분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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