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
- 6월 25일
- 4분 분량

“우리는 무엇을 더 했어야 했을까.”
작년에 방영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가 남기는 말이다. 동급생을 살해한 13세 남자 아이는 어쩌다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이의 범행을 뒤쫓던 형사, 심리분석가, 아버지 모두 끝내 답을 찾지 못한다. 남성성의 왜곡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는 심리학의 관행도 이 사건 앞에서 무너진다. 무엇을 어떻게 더 했어야 참극을 예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는 그저 잘못만 인정하고 만다. 작품에서 끝내 범행의 동기와 도구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이 공감했다. 그 난감함이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이 처한 처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작품 속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여태 잊지 못한다. 그는 사업이 잘 되어 일이 몰려들던 순간에 기뻤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며 후회한다. 더 잘 벌어야 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더 잘 벌기 위해 아이 곁을 비워야 하는 아이러니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겪어온 곤란함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 아버지가 내게 주지 못했던 친밀함은 채워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공원에서 아들과 캐치볼을 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내 아버지와 한 번도 함께 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무언가 나눈다는 느낌이 들지 않던 관계가 내 기억 속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괴리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아이가 세상에 나온 뒤에 마주한 현실은 내 오만을 매번 시험했다. 아이는 ‘등센서’가 발달한 아기였다. 침대에 내려놓는 때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밤새도록 아이를 안은 채 선잠을 청해야 했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은 아이의 온기에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온전히 행복을 만끽할 수 없었다. 아이를 안고서 두 손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에서도 머릿속은 좀처럼 멈출 수 없었다. 독립연구자의 일이란 책상을 벗어나도 좀처럼 퇴근할 수가 없었다. 풀리지 않는 질문, 완성되지 않은 문단의 흐름, 내년에 다시 신청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의 목록……. 아이를 안고 입으로는 쉬-소리를 쉼 없이 내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부산했다. 아이가 옹알이하며 나를 올려다볼 때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 순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이번 달 생활비가 구멍 나진 않을지, 다음 달에 돌아올 마감은 지킬 수 있을지, 쫓기는 나날들이 이어질수록 일상에서 충만함을 느끼기보단 하루하루를 겨우 때운다는 불만이 쌓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 온종일 아이를 돌봐야 했던 시기가 가장 곤란했다. 아내에게 가장 미안했던 때도 그즈음이었다. 나는 집에 있었지만 온전히 있지 못했다. 마감을 꾸역꾸역 해치우면서도 수입은 간당간당했다. 육아휴직이라는 제도는 내겐 애당초 불가능했다. 멈추면 곧 수입이 끊기는 생활 속에 탁월한 연구자도, 좋은 아빠나 남편도 아니었다. 어정쩡한 위치, 어느 쪽에서도 다른 이들에게 미안한 존재라는 느낌으로 사는 건 몸으로 느끼는 피로보다 더 나를 갉아먹었다.
지금도 아이와 함께 잔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아이가 내게 팔베개를 원할 때면 기쁜 마음으로 손을 뻗는다. 세 가족이 누워서 ‘오늘 하루도 우리 함께할 수 있어 참 감사하다’며 기도를 하는 순간은 여전히 행복하다. 코를 얕게 고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그날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잠에 들 때면 그래도 우리가 잘 살아왔다는 안도감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밤 아이 곁에 누워 눈이 감길 때까지 기다린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써야하는, 쓰지 못한 글들을 생각한다. 잠에 들었던 아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을 때 고민이 잠깐 멎는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이 아이가 내 손을 이렇게 잡는 나날이 얼마나 길게 남았을까.

몇 년 전, 오랫동안 참여해온 연구 사업들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동기는 단순했다. 내 시간을 조율할 수 있고 소득과 양육을 동시에 붙들 수 있다는 기대였다. 그간 공공성을 강조해왔기에 사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일이 모순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간 사람들을 계속 만나왔고 나름의 사정에 맞추어서 설계를 할 수 있다면 지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험 영업을 부업으로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보험 영업은 꼬리가 긴 롱테일 산업이었다. 성과가 높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인 구조 안에서 영업을 부업처럼 여유롭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금방 무너졌다. 나는 요새 평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아이가 잠든 뒤에야 돌아온다. 아내와 상의해서 주말에는 내가 아이를 돌보고 평일 돌봄은 아내가 전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말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객들이 평일에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상담을 하러 나선다. 내 시간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에 맞춰야만 만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소득과 양육 사이에서 줄타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당장 나갈 돈을 마련해야 해서 시간을 그만큼 더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아이와 함께 나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이백충’이니 ‘300따리’니 하며 소득이 낮은 부모가 자식을 낳은 것이 무책임하다는 말들도 돌아다닌다. 그런 말이 철딱서니 없다고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이의 성장에 충분한 자원을 만들어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흔들린다. 조롱은 틀렸어도 두려운 현실이다.
인구가 줄면서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도 빠르게 줄고 있다. 해일이 일면 바닷가부터 잠기듯 독립연구자라는 프리랜서의 자리는 제도권 연구자보다 더 빠르게, 더 조용히 사라진다. 내가 설 자리를 잃은 동시에 양육이라는 과제를 오롯이 두 사람이 감당하는 현실 앞에서 이따금 올라오는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사정이 아니다. 구조가 만들어낸 곤란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귀결시키는 방식에 항의하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실제로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려운 조건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말이라도 해보고 싶다.
<소년의 시간>이 던진 질문이 계속 남는다.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돌봄을 주고받는 데 익숙한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러한 관계 속에서 커가야 한다.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그런 관계 안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개개인이 헌신한다고 채울 수 없는 구조적인 공백을 부모 둘이서 아등바등한들 채울 수 없다.
아이를 키우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도 보낸 적이 있다. 뜻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며 회의도 자주하고 시설 관리도 직접 맡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먼저 다퉜다. 질투하고 반목하고 구별 짓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었다. 아이들은 다투고도 돌아서면 금방 사과하고 어울려서 지냈다. 관계를 맺고 살기 어렵게 만드는 쪽은 오히려 어른들이었다.
나는 탁월한 연구자가 아니고 좋은 아빠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느 쪽에서도 실패지만 그러기에 여전히 기대한다. 무엇을 더 해야 좋을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글. 백승덕(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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