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우리는 아카~데미에서 왔어
-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 3일 전
- 4분 분량

5주 간의 세미나였다. 사실 몇 주든 계속한다면 계속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5주의 커리큘럼을 짠 것은 불안정-학술노동을 다루는 선행문헌들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였다. 세미나의 주제 자체도 사실상 타겟 집단이 명확하다(대학원생!) 해도 과언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폐강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했고, 그래, 아무도 안 오면 우리끼리 오붓하게 공부하자, 하며 두 이끔이는 소심하게 의기투합했다.
게다가… 만약 이 세미나가 신세 한탄이나 자기연민만 털어놓다가 끝나면 어떡하지? 대학원생들의 ‘요즘 이야기’라는 게 으레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끔이 포함, 총 6명의 세미나원들은 기발하고 참신한 상상력과 함께 “우리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걸 해볼까요?”라며 제법 긍정적인 기대감을 얻고 나름의 미래를 기약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끝과 예상하지 못했던 시작을 맞았다.

1. 너 요즘 근황은 어때?
나는 불안정노동이라는 주제로 공부도 하고 석사논문도 썼지만, 그 연구에 ‘내 이야기는 없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학계의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학계의 불안정노동자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조교 업무도 별다를 것 없는 사무일 같네, 하며 넘겨짚었고,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 ‘노동’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시간 없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주문받아 해결하면 되는 잡다한 업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다만 그런 일들이 생활에 틈입하는 시간 단위는 다분히 유동적이고 자잘했다(돌아보면 그렇다). 나의 경우 이동을 하다 말고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펴야 하는 일도 있었고, 한밤중에 전화를 받거나 10분짜리 업무를 하려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리기도 했다. 어쩌다 연루된(?!) 학회와 학회 행사를 굴리기 위해 저급(低給)으로 차출되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동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씹는다. 그때 짜증이 났고, 어이가 없었고, 그래서 장학금은 얼마나 돼? 한 학기 등록금은 당연히 안 되지. “하여튼 그랬어...” 쯤으로 마무리되는 한숨 같은 말들이다. 신기하게도(사실 신기하지 않다) 대학원생 중 대부분이 이런 일을 겪은 바 있는데, 이제서야 생각하면 묘한 건, 그게 정말 씹을 거리가 되긴 했지만...우리들이 제일 잘하는 게 비판critique이었음에도 이러한 살갗의 경험들까지(혹은 그런 경험들이라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는(못했다는) 점이다. 그냥 대학원생의 신변잡기쯤 되는 거지...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 ‘연구문제’까지는 아니지 않아?
이건 학술활동이 ‘노동으로서’ 학술장에서 공론화되지 못한 결과이자 원인이었다. 어떤, 그러나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그러하듯이. 다들 그러고 살아야 하는, 이 ‘당연한 고난’이 왜 지속되고 재생산되는지, 지금 이 판이 ‘왜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논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원생들 사이의 아주 공공연한 화두이면서도, 그 경험치가 너무 다양해서 차마 다 공유되지 못함으로 인해 비밀 아닌 비밀로 남아버리는 것. 그래서 종래에는 이것이 대학원생‘들’의 자기이해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은 미처 시야에 포착되지 못했고, 그러므로 가장 ‘학술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으로 언어화되는 작업으로는 이어지지 못했고… 이렇게 꼬리를 물리다 보면 특별한 것 같으면서도 지난하기 그지없는 회의(懷擬)들만 줄줄 따라 나왔다.
“야, 이런 건 다 경험이고 수련 과정이야.” 그래,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학계의 견고한 멘탈리티가 끊임없이 수혈하는 ‘너는 과정생’의 마음가짐으로 단련되고 있는 건지도.

2.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노동’일까?
그렇지만 우리가 했던 ‘일’들을 ‘노동’이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꽤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당화의 과정이 필요했다. 학술활동은 명백히 일반적인 노동시장의 직원 노동과는 다르다. 학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노동시간으로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앞서도 이야기했듯 노동으로 명명되지 않음으로써 더더욱 연구의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어떤 노동’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노동연구 영역에서도 본격적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그러니 생산노동인지 비생산노동인지, 정보 자본주의니 디지털 노동이니...학술활동이 정말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우리도 일한다고, 그러니까 노동자라고 말하기가 이렇게나 힘든 일인가, 싶을 정도로 대응해야 할 의문들이 많았다. 아카데믹 캐피털리즘이나 대학의 운영 구조를 다루는 비판적 연구들 역시도 우리들이 보기엔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추상적인, 마치 인문사회과학계의 샌드백과 같은 개념을 경유하면서, 우리가 학계에서 어떤 살림을 꾸리고 있는지, 수시로 점멸하는 희망을 어떻게 부여잡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등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르긴 몰라도 대학원 학위는 여전히 사치재라고 여겨진다. 교육은 여전히 미래의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과정’으로 규정되고, 그러니 대학원생은 학계의 과정생이면서 동시에 늘그막에 있는 사회의 과정생이기도 하다.


3. 밖에서 만납시다
학술노동을 사회적인 문제issue로 다루기 위해서는, 어쩌면 ‘일반적인’ 노동의 개념에 그를 포섭시키는 게 가장 쉬운(하지만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학술-노동이었고, 이는 반드시 특정한 관점과 접근방식을 요한다. 그러니까 고유하게 학술노동을 학술노동으로 만들어주는 ‘학술-장’의 특성이 존재함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도달한 질문은, 그렇다면 학계가 이런 모습으로 된 게 모조리 ‘그’ 신자유주의 때문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식구조가 재편되고 위계화되고 산학협력에 기반하여 대학이 기업화되고… 그것도 그런데, 사실 학계의 어떤 부분은 유구하게 이렇게 생겨먹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더 잘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러니 우리의 논의는 외려 ‘학술-장’에 대한 것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 특유의 도제식 시스템, 각자도생에 취해 있는 성과주의, 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인맥, 지도교수와 지도제자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과 노동이 이토록 단절된 데에는 사실 사회적인 것에 마음을 두면서도 ‘숭고한 상아탑’을 고집했던 학계의 모순적인 자만심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전가된 자기반성을 곁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미나의 목표는 ‘학술’과 ‘노동’을 붙이려는 노력이자 시도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인문사회과학계에 몸담은 모두가 소망하고 있으나 좀처럼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세상에 말 걸기’에 부단히 도전하는 패기를 다시 한번 벼르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래서 자기연민이나 개인화된 용법을 넘어서며 학위와 전공의 쓸모 내지는 효용에 관해 논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를 외면했던 두 영역의 조우를 그렸다. 이것은 대학의 안팎을 다시 사유하도록 이끄는 구상력에 뿌리를 둔다. 우리의 곤란과 곤경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이 아니며, 그러니 “우리도 여러분과 연대하고 싶습니다! 연대할 수 있습니다!”라 외치고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학술노동을 실제로 개념화하거나 실천으로 잇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무언가는 역시 ‘교수님’일 텐데…그렇다면 우리는 교수님들과 우리들 사이의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통곡의 벽 역시도 허물어야 하지 않을까? “교수님! 이거 잘하시잖아요! 여기 연구보조원 자리 남았는데 생각 있으세요?” 이런 발칙한 농담은(하지만 반 이상의 진심을 담은) 덤이다. 아무튼!

4. 후속 세미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불안정-학술노동 세미나는 후속을 계획하고 있다. 선행연구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으나,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이제는 이 주제가 불안정-학술노동이라는 검색어의 제한을 극복하고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키워드와 연구질문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속 세미나가 어떤 이름을 가지게 될지, 그 커리큘럼은 불안정-학술노동을 어떤 학제, 어떤 연구와 인연 맺게 할 수 있을지. 지금 우리는 뜻밖의 유쾌한 마음으로 그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글. 홍단비
편집.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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