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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까저건] 부동산 커뮤 탐방기 (2): ‘집값’이라는 말의 뒤편들



앞서, 지난 호 발간된 신진의 <부동산 커뮤 탐방기 (1)>에서 한국 사회 내 주거가 소유권에 기인한 개인주의와 더불어, 투자상품으로서의 ‘부동산’으로 환원됨에 따라 ‘집’은 ‘소유되어야 할 상품’으로 인식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내 부동산 담론 역시, 주거와 관련한 권리의 문제보다 철저하게 ‘가격’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주거의 관점에서 거주자의 비용 상승과 관련되어 있다. 이때, 비용 상승에는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보유세 증가, 대출이자 지출, (대출을 낀 임대사업자의 경우) 이들의 늘어난 이자 비용이 세입자로 전가되는 현상 등의 요인이 존재한다. 그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님비, 핌피와 같은 사회적 갈등,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 정상 생애 과정에서 이탈하는 이들의 박탈감 등 사회적 비용의 증가 또한 야기한다. 나아가 부동산 가치의 상승은 통화량 증가, 국민 국가 내 경제 성장에 따른 부동 자산 가치의 상승 등 다양한 요소들과 복잡다단한 관계를 구성하고 있기에 그로 인한 담론의 양상 또한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금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한 담론은 늘 자산 가치와 투자의 측면으로 치환되곤 한다. 부동산 커뮤니티는 ‘투자재로서의 부동산’으로 모든 것을 환원시켜 논의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이곳에서 떠도는 부동산에 대한 말들은 모두 ‘집값’으로 환원되고, 이는 실거주, 투자용을 막론하고 모두 부동산 가치 상승이라는 욕망 하에서 구성된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나 “가즈아”를 외치며, 때로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집값 전망을 비현실적으로 계측하곤 한다. 가령 부동산 카페의 한 지역 커뮤니티 탭 - 심지어 이곳은 비강남 지역이다 - 에서는 “서울 00의 집값은 30억이 정상이죠. 그리고 50억도 거뜬히 찍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지금 집을 사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가서 부동산 한다고 하면 안돼요”와 같은 댓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부동산을 둘러싼 ‘말들’이 투자재로서의 부동산 투자로 수렴하는 것 의 의미와 효과는 무엇일까?


생존과 지위 상승의 어드메 


부동산 커뮤니티는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논의를 부동산 가격으로 환원시킨다. 이들에게 주거권은 부동산 구매를 통한 자산 가치 확보로 귀결되고, 주택 소유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시민권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택 구매, 아니 부동산 투자는 개인의 재산과 부를 증가시키는 것을 넘어, “내가 나 답게 살 수 있는” 유일무이한 테크닉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에 한국 사회 전반의 발전주의적 심성이 결합해, 극단적인 상승에 대한 욕망의 말들을 자아낸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사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책 기조다. 부동산 커뮤니티 전반에는 정부 개입에 대한 극렬한 적개심이 있으며, 따라서 “규제 철폐”가 공리처럼 정책의 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즉, 주택 시장에서만큼은 정부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도시의 난개발, 임대주택 공급을 통한 주거 안정과 같은 것들은 언제나 관심사 밖이다. ‘집값’ 상승과 관련이 없다면, ‘주거 환경 개선’이나 ‘타인의 주거권’과 같은 논의는 언제나 주거를 구성하는 담론의 테이블에서 밀려난다. 이때 이와 같은 말과 정책은 (실제로 부동산 시장 규제와 관련이 없는데도) 항상 “정부 규제”로 치부되며 “규제 철폐”라는 부적에 의해 그 힘을 잃게 된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부동산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모두 “집값 상승”이라는 올무에 묶여, 자신의 경제적 계층 상승만을 추구하는 이들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 사회 내 ‘집값”은 자신의 경제적 계층 상승이라는 지위 상승 욕구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물론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집값 상승”이라는 덕목만을 목놓아 부르짖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측면도 어느 정도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집값 상승”의 뒤편을 살펴보면, 상승 욕구보다도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하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강하게 감각된다. 한국 사회의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계층/계급 하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매김하고 있고, 이것이 소유적 개인주의와 결합해 각자도생이라는 삶의 규범을 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닌 안전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라는 인식틀은 자신과 부모 세대가 체득해왔던 장기적 부동산 가치 상승이라는 국면 속에서, 거주라는 사용가치와 임대 소득 또는 거래 차익이라는 수익을 창출해왔던 자산이라는 경험에 의거한다. 이러한 신념들이 모여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담론을 형성해왔다. 이들에게 부동산은 주식과 같은 투자재로 인식되고 있지만, 부동산이라는 ‘의제 자본’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여타 투자재와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에게 부동산이란 변동성이 강하고 ‘상장 폐지’를 통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주식, 코인과는 달리, 일시적인 등락이 있을지언정 결코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장기적인 가치 그래프에서 우상향만 있는 자산이자 투자처로 인식된다. 이러한 믿음은 언제나 주택이라는 물리적 대상의 감가상각을 상쇄한다. 


그렇다면 이때, 이들의 현 위치는 과연 어디이며, 어떠한 위치에서 탈각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 내 상당수는 자신을 중산층이라는 계급 위치에 놓곤 한다. 여기에는 자신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보통의 사람’이라는 의미, 자신의 경제적 실천이나 관점이 여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믿음이 내재해 있다. 보통의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는 부동산 투자라는 테크닉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상정하는 중산층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이 인식하는 중산층은 서울/수도권의 입지 좋은 곳에 자가 소유의 아파트 - 이때 나홀로 아파트나 중소 건설사의 이름이 걸린 아파트는 해당되지 않는다 - 를 소유한 이들이다. 부채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대략 10억 이상의 자산 가치를 지닌 계층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은행·금감원·통계청의 <2024 가계금융복지 조사결과>에서, 10억 이상의 자산 보유자는 10.9%인 반면 전체 가구의 56.9%가 3억 미만의 순자산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소위 상위중산층upper-middle class 내지는 상류층에 속하는 자산 수준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보통의 삶을 영유한다 생각할 수도 있다. 자산의 대부분이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에 묶여있는 한국 사회 내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에게 집값 하락은 자신의 자산 가치 하락과 현재의 삶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들에게 집값은 자신의 계층을 식별하는 증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양식의 수준을 담보하는 계급 울타리로서의 자산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감각이 희박하고, 주거를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원활한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맞이한 저성장 국면 속에서 집값 상승을 통한 자산 가치 상승은 각자 도생하는 삶의 궤적에서 나름의 안전망 구축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부동산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앞다투어 집값 상승을 주문처럼 외우는 작금의 현실은 이들이 자산 증식을 통해 계급 상승의 욕망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의 이념 속의 중산층의 삶에 진입하거나 그로부터 이탈하지 않고자 하는 두려움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이들이 한국 사회의 양극화 심화를 강하게 감각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허나 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언제든 저편으로 떨어져 내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에는 관심이 없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과 관련한 논의들은 언제나 “내집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규제”와 관련되어 있고, “내가 사는 주거지의 급지를 하락시키는 혐오시설”을 들어서게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지니고 있기에.


“집값”이라는 말의 뒤편들


그렇기에 이들은 늘 “집값 상승”에 저해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요인들에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때 “집값”이라는 말의 뒤편에 달라붙는 것은 인종, 지역, 정체성 등 문화적 층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가령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행사가 있을 시, 부동산 커뮤니티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이들이 “내집” 옆에 거주하는 이웃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이와 연관지어서, 부동산 카페의 지역 탭 중 ‘마포구’ 탭에서는 한동안 “동마포” “서마포”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동마포와 서마포 논쟁은 대흥역을 기점으로 공덕 방향을 동마포, 홍대 방향을 서마포로 구획짓고, “마포(구)가 다 같은 마포가 아니기에 마포를 나눠서 말해야 한다”에서 불거진 논쟁이다. 이들에게 “서마포”는 “퀴어 퍼레이드 같은 것에 참여하는 이들이 거주하는 급지 떨어지는 곳”으로 여겨지기에, “동마포”와 “같은 급지로” 묶여서는 안 되는 곳이다. 여기서 말하는 급지는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해당 지역의 평균 주택 가격이기도 하지만, 특정 지역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정체성과 집값 사이의 가상의 인과관계가 부여된 거주지의 등급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거주자의 정체성, 또는 지역의 정체성과 집값이 어떤 인과가 있는지 이들은 말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관념 하에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을 집값과 연결시켜 반대할 뿐이다. 이때 이들이 일생의 신조처럼 떠받드는 집값은 부차적인 요소다. 오히려 커뮤니티 내 구성원들이 집값에 목을 매고 있기에 자신이 반대하는 문화적, 정치적 지향에 동조를 구하기 위해 집값이라는 말을 동원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부동산 커뮤니티 내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항상 성공을 가져온다. 집값이 규범이 되어버린 작은 사회 내에서 그에 위협이 된다 가정되는 요소들은 항상 “몰아내야 할” 것들로 치부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들에게 주거권은 “퀴어같은 변태들”을 “마음놓고 살게 해주는” 요소가 되며, “건실하게 살아가는” 본인들에게 “역차별”을 가져오는 악법의 구성요건이 된다. 그러한 악법은 자신의 자산 가치를 하락시키고자 하는 정부 규제와 다를바 없는 것이다. 이때, 어떠한 사실 관계도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스스로의 기호에 따라 자신의 관점 바깥의 것들을 부동산 가치 하락과 연결시켜 집값이라는 말로 덮어버릴 뿐이다. 


물론 이들의 도식 - 편견으로 가득차 있긴 하지만 - 은 나름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이들 또한 퀴어를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퀴어는 바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자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정부에게 요구만 하는 존재로만 인식된다. 나아가, 줄어드는 인구 현황 속에서 퀴어와 같은 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인 부동산 시장의 구매자가 줄어들게 만드는 원흉으로 취급된다. 분명히 주택 가격과 거주자들의 정체성을 인과로 연결짓는 이들의 논리는 궁색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통용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기에 이곳에서 말하는 “집값”이라는 말은 다면적이다. 그 이면에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편견과 정치적 지향에서 어긋나는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로 다양한 담론들이 쏟아지니 말이다.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중국인과 ‘다문화’에 대한 거센 반감도 비슷한 맥락에서 얘기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다문화’란 조선족, 동남아인 그리고 서남아인에 국한된, 소위 “토종 한국인”과 서구 백인들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다. 물론 중국인과 다문화 주체들에 대한 커뮤니티 내 담론은 겹쳐지는 측면도 있지만, 사뭇 다른 지점이 있기도 하다. 먼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다문화 주체들과 화교들은 집값 상승을 저해하기 때문에 “이들을 추방해야 한다”라는 담론이 짙게 형성되어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단순히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집값이 낮은 “하급지”이며 이들 중 상당수가 임대주택에 거주한다는 점이 전부다. 물론 화교와 다문화 주체들이 거주하는 곳은 치안이 좋지 않거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해당 지역을 꺼려한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우기는 한다. 이때도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것은 오로지 “집값”일 뿐이다. 앞서 퀴어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집값”이라는 말 뒤편에 다양한 존재들과 정체성, 문화적 요인들을 몰아넣고, 자신들의 기호에서 벗어나는 지점을 “집값 하락”의 요인으로 치부하며 적대할 뿐이다. 


이때 중국인 투자자의 존재는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인 투자자들 역시 적개심의 대상이 되는데, 커뮤니티 구성원의 말들에는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이들은 중국인 투자자들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집값이 과열되었다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욕설을 내뱉는다. 대체 이러한 도식은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선호도 내지는 편견에 기인하고 있을 뿐일까? 물론 여기에는 부동산 커뮤니티 내 구성원들의 편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여기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생각하는 ‘시민’의 형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부동산 커뮤니티 내 구성원들은 주택, 아니 부동산과 관련하여 중산층으로서 삶의 양식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해 부동산 가치의 증식을 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 중산층이란 단순히 특정한 삶의 양식을 지닌 계층이나 계급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이들에게 중산층이란 ‘시민’과 ‘비시민’을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에게 중산층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유할 수 있는 계층이기에, 중산층에서의 이탈은 인간다운 삶에서의 이탈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들이 내세우는 중산층의 기준인 ‘주택 소유’는, 보통의 인식 수준 및 이를 규정짓는 규범적 삶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택 보유자는 한국 사회 내 규범적 삶을 “잘 영유하고” 있는 시민이며,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은 비시민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리고 비시민의 존재는 자신들의 집값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된다. 


여기서 일종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주택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시민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시민이기에 주택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부동산 커뮤니티 내 중국인에 대한 담론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그들에게 중국인이란 비시민이고 즉 집값에 위협이 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비시민인 중국인이 주택을 보유하는 것은 해당 지역의 집값 하락에 일조할 수 있기 때문에 온당치 않다. 다소 이상한 논리이지만 부동산 커뮤니티 내에서는 집값이라는 말 뒤편에 이와 같은 도식이 너무도 손쉽게 결합하곤 한다. 즉, 자신들이 생각하는 규범적 삶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들을 집값을 매개로 배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집값이라는 말로 너무도 손쉽게 정당화 되곤 한다. 이때 주거권이니, 평등이니, 정치적 올바름이니 하는 말들은 집값의 그림자 뒤편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 차라리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면 다행일 수도 있겠다 - 부정적인 요소로 치부되곤 한다. 부동산 소유와 가치 상승에 대한 욕망과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인한 계급 이탈에 대한 두려움, 규범적 삶에 대한 절대화와 타자에 대한 거부감의 기형적 혼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의 “집값”이라는 말 뒤에 상존하고 있는 것들이다.



글. 구승우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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