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오던 밤에, 허겁지겁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읽고 있던 것은 인류학의 시간성(temporality)에 대한 글이었다. 저자들은 여태껏 인류학의 시간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그로부터 이어진 ‘현재’에 국한되어 왔음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미래’에 대한 관념이나 태도가 ‘현재’를 정향함을 주장한다. 요컨대 우리는 ‘미래’라는 하나의 축을 더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추상적이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묘하게 마음을 동하게 하는 주장이구나 하면서, 그렇다면 실제로 미래를 연구하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란 말인가 따위의 메모를 적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타임라인의 많은 이들이 공유한 기사를 읽었다. 서울극장이 8월에 문을 닫는다는 기사였는데, 코로나 때문이겠지 싶어 놀랍지는 않았지만 나는 급격히 울적해졌다. 관객이었다가 일을 했다가 하면서 10년을 드나들었던 작은 극장이 서울극장 안에 세를 들어 있다.
서울극장 안에 세를 들어있는 별개의 극장들은 서울극장이 문을 닫아도 당분간 상영을 계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정해진 미래는 오히려 그 기약 때문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기로는, 서울극장에 소규모 영화관들이 자리를 잡은 것에는 저렴한 월세라는 요인이 크다. 삶을 살아가는 내내 깊은 곳에서 따라붙는 세계에 대한 우울함과 울적함은, 이런 일들을 마주한 순간에 미래를 곧 사라짐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실을 왜 하필이면 지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알게 되었을까 하면서 반은 그럴듯하고 반은 억지인 의미부여를 했다. 머릿속에서 미래, 사라짐, 상실감의 연쇄가 펼쳐졌다. 한편에선 그 공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여왔던 과거의 다양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인간에게 과거, 현재, 미래라는 관념이 선형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하는 둥 마는 둥 세미나 준비를 끝내고 나서는 삼일 간 계속 잠만 잤다.
옛날에, 나는 보지 못했는데 극장의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두세 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던 작은 극장이 문을 닫는 즈음의 이야기를 담은 외국 다큐멘터리였는데, 각각 다른 사람들로부터 몇 번씩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마치 그 영화를 내가 본 것 같아서, 머릿속으로 그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나는 왜 다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장면을 비슷한 풍으로, 비슷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건지 궁금했다. 영화표를 끊어주다가 영화 시작 시간엔 안으로 들어가서 영사를 하는 늙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나, 아니면 몇 십 년을 그 매표소에서 일한 늙은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나 기억이 희미하다. 다만 반복적으로 들었기에 지금도 머릿속에서 또렷한 것은 매표소에 앉아있는 늙은 여인의 모습이다. 어느 날에 나는 거기에 내 모습을 잠시 대입해 보기도 했다. 나름 흡족한 인생이리라고. 그러나 이제는 그런 미래를 잠깐 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문득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비슷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사라짐에 저항하기,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해뒀던 제목은 이것이다. 절반 정도 쓰다보면 묘안이 떠올라 울적하기보단 희망적이게 글을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7년 전이었나, 한 차례 찾아왔던 위기의 순간에 극장에 대해 쓴 글을 찾아봤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이 글을 맺고 있었다. “지난날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지를 준다는 사실이 아주 신기하다.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시 그들만의 지도를 갖게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게 우리의 지도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한, 이 극장은 튼튼할 것이다.” 당시의 의지와 지금의 울적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엇이 변했고 또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 반쯤은 농담으로, 내가 넷플릭스를 구독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반쯤은 농담이다. 다만 반쯤만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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