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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기] 사회초년생의 ‘자살 충동’ 앞에서


사회초년생 대상의 설문조사를 진행한 일이 있다. 가장 놀라운 결과는 ‘자살 생각’에 관한 항목에서 나왔다. 최근 1년 내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 14.1%나 되었는데, 특히 경력이 1년 미만인 사회초년생으로 한정해서 보면 그 비율이 무려 31.8%까지 올랐다. 우리 연구는 직업 경력이 5년 미만인 경우를 연구대상으로 한정하여 조사했는데, 이 비율은 연차에 따라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1년차 31.8%, 2년차 15.4%, 3년차 7.1%, 4년차 6.1%, 5년차 3.0%). 조사 방법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2020년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로 보면 1년 내 자살 충동을 경험한 응답자 비율은 5.2%였다.


막 직업 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에게서 자살 고민 수준이 충격적으로 높게 나타난 이유를 명확히 밝히긴 어렵다. 다만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과 사회초년생과 직접 면접한 결과들을 종합하여 보면 두 가지의 가설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는, 청년들이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자리가 고용안정성 면에서 사회초년생들의 삶을 취약하게 한다는 점이다.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2020년 8월)를 보면, 임금근로자 중 20대의 정규직 비율은 62.3%로 전체 평균인 63.7%에 비해 크게 낮지는 않다. 그런데 청년층 부가조사(2020년 5월)를 보면, 청년층의 첫 일자리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은 계속 근무 가능한 일자리(정규직)인 경우는 56.1%에 그친다. 우리 연구에서도 경력 1년 미만의 사회초년생의 정규직 비율은 40.0%로, 연구참여자 전체 평균인 57.9%에 크게 못 미쳤다. 특히 우리 연구의 조사 시기는 코로나19, 즉 불안정 노동자의 취약성이 더욱 상승한 시기와 맞물려 조사된 결과이기도 했다.


둘째로, 사회에 막 진입한 이 시기에 자신의 직업 생활에 대해 그려왔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가장 극심해지는 듯하다. 한국에서 교육으로부터 고용 상태로의 이행은 여러 단계에 걸친 도전 과제를 깨면서 이루어지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그러나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에 걸맞은 일자리는 극소수에게만 해당하고, 대다수는 ‘이러려고 공부했나’ 하는 허무한 상태에 이른다. 사회초년생들은 야근, 주말 출근을 포함한 고된 노동강도는 물론, 부당한 사내 조직문화나 성차별, 제대로 된 일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 근무환경 등에 만족하지 못하며, 고민이 심해지면 더러 퇴사하기도 한다.


막연하던 미래계획이 숫자로 계산되기 시작하면서 불안감이 더해지기도 한다. 평생 벌 수 있는 근로소득이 이 정도이겠구나, 그렇다면 어떤 정도의 삶은 가능하고 그 이상은 어려울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자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가족이든, 친밀한 사람들끼리 만드는 대안적인 가족이든 경제적 문제로 새로운 가족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을 사회초년생 다수가 겪는다. 한 달 근로소득과 필수 소비의 차액은 느리게 쌓이지만, 매매든 전세든 집값, 즉 독립에 필요한 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 가장 확실한 불안의 출처다.


실상 이러한 관찰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대 여성의 실제 자살 건수가 급증하였을 때도, 그들의 고용 불안정성 및 불투명한 미래 전망, 성취한 지위에 대한 실망감 등이 가능한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청년의 삶의 취약성이 일자리와 주거 위기로부터 온다는 것은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청년들의 고통이 증언된 지 오래되었으나 모습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재생산하는 정책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개수가 아니라 그 일자리들이 청년에게 미래를 감당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단기성의 공공일자리 등으로 땜질을 계속하면서 오히려 노동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연령상의 청년에게 일회성의 혜택을 주는 정책사업은 많아지는데, 정작 우리 사회를 청년이 살만한, 혹은 죽지 않을 만한 곳으로 변화시키는 큰 그림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청년 문제라 불리는 상황은 과거와 미래를 모두 잇는 복합적인 시간성 위에서 구성된 것이다. 고등교육과 산업 구조의 괴리, 대학 입시를 중심으로 조직된 경쟁 위주의 기초교육을 해결하지 못한 결과 현재의 ‘청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청년 문제의 과거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자라나는 다음 세대 또한 같은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청년들이 현재 갖고 있는 희망의 정도는, 당장의 일자리 상황뿐만 아니라 그들이 장년기나 노년기에 마주하게 될 고용 및 주거 시장과 사회복지 체제를 포함한 사회 안전망에 대한 상상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따라서 청년 문제의 미래를 개선하는 시도를 통해 현재 ‘자살 생각’을 심각하게 하는 청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단기성 정책사업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일단 단기적인 성과지표를 달성하기가 쉽고, 예산도 ‘사회 혁신’에 비해 훨씬 덜 드는 편이다. 전 생애주기에 걸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거나 교육 체계를 손봄으로써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보다 인과성도 명확한 듯 보인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당장은 좀 더 확실해 보이는 방향만을 고수하다가, 우리 사회는 지금의 청년에게 닥친 위기를 더욱 장기간 겪어내며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자살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실행으로까지 옮기는 오늘날의 사회초년생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한국사회 자체를 재설계하는 청년 문제 대책이 몹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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