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매운맛’ 데이팅프로그램의 시대다. TVING오리지널이 제작한 <환승연애>와 카카오TV의 <체인즈 데이즈>는 현재의 연인 또는 지난 시절의 연인이 보는 앞에서 새로운 사람과 데이트하는 참여자들을 그리는 데이팅프로그램이다. <환승연애>가 헤어진 네 쌍의 연인이 함께 생활하며 새로운 사랑의 상대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체인지 데이즈>는 현재 서로다른 이유로 '위기'에 처한 연인들이 다른 사람과의 데이트를 통해 자신의 현재 연애를 비추어보는 과정을 그린다. 지난 연인 또는 현재 연인의 앞에서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게 되고, 데이트 상대의 현재이거나 과거의 연인과 함께 생활한다. 출연자들을 난처함에 빠지게 만드는 설정은 두 프로그램이 “가장 극단적인 프로그램”이라거나, “근본적으로 설정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이라 보기 불편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운맛’ 데이팅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측면은 설정상의 특이점에 의해 갈음되곤하는 서사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과거’라는 시간대를 본격적으로 개입시킨다. 위기에 처한 연인들이 등장하는 <체인지 데이즈>에서 주로 현재 연인이 있음에도 진행되는 ‘새로운 상대’와의 데이트한다는 설정이 서사를 잡아먹는 듯 보이지만, 실상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새로운 만남을 통해 ‘현재 연인과의 지난한 기억들’을 반추하는 과정이 더욱 전경화됨을 알 수 있다. 한편, <환승연애> 역시 ‘연애가 종료된 이후 새로운 연인을 빠르게 찾아 나서는’일을 속칭하는 ‘환승’을 제목의 접두어로 삼지만, 지난 연인과의 정리되지 않은 관계로 인해 괴로워하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매회 등장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형식에서 ‘재빠른 태세전환’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하트시그널> 이후의 다른 데이팅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서사적 차원에서는 ‘진정성 게임’이 주된 요소다.
2017년 이후의 흥행한 대부분의 데이팅프로그램들이 그렇듯, 두 프로그램에서도 일상속에서 사랑을 ‘경영’하는 일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지난 시절의 데이팅프로그램, 그러니까 2010년대 중반까지 sbs를 통해 방영된 <짝>으로 대표되는 데이팅프로그램이 삼시세끼 구애의 계기가 마련하고-도시락선택-, 연애만을 위한 가상의 마을을 꾸렸다면 -애정촌-, 이제 오늘날 데이팅프로그램은 '일상'을 무대로 한다. ‘꿈만 같은’ 한남동과 평창동의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함께 모여 살게되지만, 그들의 일상은 멈추지 않고 참여자들은 퇴근과 출근 사이 또는 공휴일에 만남의 계기들을 마련한다. 또한 몰개성화로부터 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지난 시절의 데이팅프로그램과 구분된다. 지난 시절의 데이팅프로그램인 <짝>은 모든 참여자들에게 같은 옷을 입히고 이름을 번호로 대체하는 몰개성화-1호님!! 2호님!!- 전략을 취했다. 하여, 프로그램 속에서 참여자들은 '속세는 잊고' 피식대학의 ‘05학번 is back’의 길은지와 쿨제이처럼 ‘피튀기는 사랑'-또는ㅍl투lㄱl는 ㅅr랑-의 콜로세움 속 전사가 된다. 난데없이 시작된 선택의 계기들 속에서 참여자들은 고백과 고백과 고백을 거듭하며 성공과 실패를 겪고, 시청자들은 칼부림 속에서 무질서한 환희와 절망의 반복을 본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데이팅프로그램에선 몰개성화가 아닌 개성화가 중요하다. 사회학자 에바일루즈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열풍을 섹슈얼리티에 관한 자기계발과 BDSM산업의 효과로 읽어냈듯, 오늘날 데이팅프로그램은 프로그램 속 등장하는 출연자들이 지닌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다. 베스L베일리가 자본주의적 연애실천으로 ‘데이트’를 정의했다면, 데이팅프로그램은 데이트에 관한 문화적 각본들을 인용하면서 동시에 재생산하는 광고대행사다. 맛집, 옷, 차, 향수, 때로는 스피커의 브랜드는 중요한 문제이고, 각각의 참여자들의 ‘일상’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실천을 통해 상품으로서 ‘데이트’를 광고한다. 때문에 오늘날 데이팅프로그램들은 인스타그램의 셀러브리티 경제와 분리 불가능하다. 그러나 데이팅프로그램은 그 장르적 ‘봉쇄전략’이기도 한 ‘참여자의 진정성’을 담보로 해야하고-”ㅇㅇㅇ참여자 실제로 연애 중인데 여기 나온 것 아니죠?”-, 때문에 2018년 TVN에서 방영했던 데이팅프로그램<선다방>은 참가신청서에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중인지를 묻는 등 ‘셀러브리티가 아닌 진정성 있는 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키도 했다. 데이팅프로그램은 ‘셀러브리티 경제’와 ‘진정성’의 문제가 쟁투하는 과정에서 서사되는 셈이다.
다시 ‘매운맛 데이팅프로그램’이라 평가되곤 하는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로 돌아오자. 현재의 연인 또는 지난 연애라는 ‘과거’를 부각시키는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연애를 새로이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시절에 관해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논한다. 지난 시절,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의 축 속에서 참여자들은 과거를 반추하는 과정을 통해 ‘그때보다 더 나은 나’가 되어야 할 인물로 위치된다. 여기엔 커플이 되는가 아닌가의 ‘당락’으로부터, 지난 시절을 반추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문제로의 이행이 숨겨져 있다. 매운맛 데이팅프로그램이라는 설정과 형식에 집중한 평가와는 달리, 두 프로그램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또는 로망스의 양태를 따른다. ‘진짜 욕망’을 발견하고 이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의 문제 말이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연애란 삶의 경영의 영역에 속할 것이다. 이 경영이란 소위 ‘자기계발주체’에 관한 비관론과 ‘MZ세대의 새로운 연애실천'이란 낙관론 중 어느 하나로는 충분히 갈음되지 않을 주체의 몸짓이다.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으로서 유토피아 사이의 변증법. 지리멸렬한 ‘데이즈’를 ‘체인지’하고 또 다른 곳으로 ‘환승’하고 싶지만 언제나 미끄러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일련의 무대 뒤에 자리한 자본주의 일 수도 가부장제 일 수도 있는 총체성과 부재원인으로서의 역사. 하여, 이름붙일 수 없는 정치적무의식 속에서 나는 <체인즈데이즈>와 <환승연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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