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 가정, 사랑, 병원

7월 30일 업데이트됨



김희애를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로서 김희애가 맡았던 어떤 역할들의 궤적 때문도 아니고, 얼굴의 생김새나 말투의 리듬이 엄마와 닮았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김희애로부터 엄마를 떠올리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언젠가 티브이를 보다가 엄마는 말했다. “김희애가 엄마랑 동갑이잖아.” 그 한마디 때문에 ‘꽃보다 누나’를 보면서도, ‘밀회’를 보면서도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이렇게 멋진 배우와 동갑이라니. 엄마와 동갑인 이 배우는 여느 중년여성이 맡았던 제한된 역할들의 너머로 다른 작품들을 선택하고, 그 역할들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이렇게 새로이 생겨난 네러티브들은 중년 여성들에게서 선택적으로 사용될 자원이기도 했다. 최근 종영한 <부부의 세계>에서도 김희애는 중년여성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허락되지 않은 어떤 서사들을 그녀만의 특별한 톤으로 연기했다. 바야흐로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열풍의 시대였던 지난 두 달 동안의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의 우리 집에서는 티브이 속의 그리고 소파 위의 두 67년생 간의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고, 나는 두 인물을 관찰하면서도 이따금씩 배를 긁으며 거실로 나오는 아빠가 이들의 회담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원작 ‘닥터 포스터’는 한국에서 방영되면서 그 제목이 <부부의 세계>로 변경 되었다. ‘부부’가 살고 있는 ‘세계’에 관한 제목은 서사가 진행됨에 따라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조건 속에서 인접한 문화적 스크립트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암시하며, 가치중립적 외양을 벗기 시작했다. 서사의 전반부 속에서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은 직장 내의 친구에서 부터 자주 함께 어울렸던 맞은편의 부부까지, 모두 ‘지선우를 위한다’며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의 불륜 사실을 눈감아주거나, 속으로는 지선우가 지쳐서 고산시를 떠나길 기대한다. ‘부부의 세계’라는 제목도, 고산시 라는 서사의 배경도 기실 하나의 넓은 ‘시월드’와 다르지 않다.


이때 이 드라마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은 부러 굽혀지지 않는 지선우의 허리다. 청탁이나 사과를 하는 순간에도 척추는 꼿꼿하게 펼 수 있는 지선우의 담대함은 여태껏 한국 드라마에서 발견된 적 없는 전문직 여성의 인물상이다. 또한 그 명민함, 지역 국회의원부터 유지까지, 회계사부터 병원장까지. 고산시 속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들을 정확하게 굽어보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접시킨다. 이런 것은 ‘어릴 적 부모를 잃은’ 지선우라는 인물의 설정에 기인한 생존감각이면서, 동시에 ‘전문직에서 여성으로서 살아남은 중년의 여성’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육화된 지식, 삶의 지난한 굴곡들 속에서 생성된 아비투스이기도 하다. 공짜로 베풀어지는 호의는 없으며, 세계는 ‘성공한 여성’보다는 ‘성공한 여성의 추락’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시원하고 통쾌한 복수극과는 거리가 멀다. 의사인 지선우가 근무 중인 병원의 이름 ‘고산가정사랑병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친밀성과 통치의 소단위인 가족과(가정) 이들을 묶어주는 감정적 매개(사랑)에 관한 문제는 후기근대가 앓고 있는 고질적인 질병(병원)이기도 하다. <부부의 세계>는 이 질병에 관한 상상적 해결을 택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질병이 현상하는 방식을 사실주의적으로 탐구하는 드라마로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순간순간의 서스펜스를 위해 등장한 폭력들은 ‘에로스화된’ 방식으로 굴절되어 있지만, 드라마가 종영하는 순간까지 본격적으로 갈무리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후반부 부터 아들인 ‘준영’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태오를 비롯한 ‘고산의 남자들’의 문제는 범박한 수준으로 남아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던 것은 서사적 성취 ‘따위’가 아니라, 엄마와 드라마를 보며 함께 숨죽이거나, 놀라거나, 소리를 질렀던 모든 시간들이었다. 가끔은 드라마를 보면서 멋대로의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소파 위의 67년생 엄마는 TV 속의 67년생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일을 시작했던 엄마는 고등학교 1학년에 데뷔한 저 하이틴 스타와 어떻게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견뎌왔을까. 드라마 속 고산이라는 시월드를 엄마는 어떻게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을까. ‘그녀’라는 이유로 가혹했던 삶에서 어떤 생존감각과 명민함을 키워왔을까. 꽃집직원, 배달기사, 급식 조리원으로 일해온 그녀는, 의사 지선우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법을 알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이렇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난 순간 착각에 빠진다. 드라마를 보다가 ‘고산시는 왜 이렇게 다 개차반 뿐인지’ 물었다. “개차반인 놈 아닌 놈 따로있는 줄 알아? 개차반 되기 싫으면 잘해.” 가끔 이렇게 칼 같은 엄마는 은연중에도 내가 ‘같은 편’인양 구는 것을 깨닫고 밀쳐낸다. 엄마는 내가 잊어버린 질문의 자리를 상기시킨다.

엄마를 통해 무언가를 생각하는 일은 편안하다. 나를 사랑했고, 모를 일이지만 미래에도 날 사랑할 것이라는 두터운 믿음은 그녀를 내게 취약하고 또 가장 인용하기 쉬운 타자로 만든다. <부부의 세계>에는 내 자리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부의 세계’에서 엄마를 상상하는 일은 엄마에 대한 물신화와 모성신화, 엄마를 납작하게 만드는 세계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싸움이 될 것이며 그 결과물은 언제나 저 모든 것들의 뒤범벅일 것이다. 모든 만남이 서로 다른 텍스트와 언어를 번역하고 인용하는 과정이라면, 요즘 나의 고민은 엄마를 잘 번역하는 사람이 되는 일, 이 지난한 ‘부부의 세계’ 속 내 위치가 만드는 필연적인 오역을 상정하는 일이다. 서로의 곁에 필요한 인력과 척력을 능숙하게 고민하는 일, ‘부부의 세계’ 속에서도 가능한 ‘서로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 드라마 놓친 장면을 설명해주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 엄마는 아마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가정’과 ‘사랑’이라는 질병이 태어나고 치료되길 반복하는 우리집, 이 ‘병원’에서 힘을 내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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