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 유튜브 비평 2 - '사람들은 왜 먹방을 볼까?'라는 문제틀을 넘어서기





'먹방'이 처음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 2009년경이라고 하는데, 2020년 현재에도 그 인기가 여전하다. 아프리카 플랫폼에서 방송하던 '먹방 BJ'들은 이제 유튜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에서도 'food porn'이라는 명칭으로 한국의 먹방이 소개되다가 이제는 'Mukbang'이라는 말이 고유명사로 자리잡았고, 해외 먹방 유튜버들도 늘어나고 있다.


먹방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사회적 현상을 처음 마주하며 떠올리게 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다. '사람들은 왜 먹방을 볼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던졌고, 몇 가지 답을 내놓기도 했다. 가장 일반적인 답들을 '1인 가구의 증가와 고독한 식사의 탄생, 그리고 먹방을 통한 대리만족' 혹은 '사적인 것의 공적 확산과 디지털 민주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명료해보인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텍스트의 의미가 텍스트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수용과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산된다고 말한다. 이 관점에서 질문을 바꾸어보자. '대중이 먹방을 보면서 만들어내는 의미는 무엇인가?'


두 주 전 신문연 칼럼의 필자였던 종수는 웹툰 수용자의 댓글을 통해 만들어지는 공동체에 대해서 논한 바 있다. 그의 논의에서처럼 댓글은 간략하게나마 대중이 디지털 콘텐츠 수용 과정에서 어떤 공동체가 되는지, 또 어떤 담론을 경유하고 또 형성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때 먹방은 '먹는다는 것', 나아가 '사적인 것' 혹은 '친밀한 것' 그리고 개인 주체에 대한 대중적 의미가 교류하는 장이 된다. 그러나 의미의 생산은 단지 의미들의 나열이 아니라 규범의 생산이기도 하다. 먹방을 통한 의미의 생산은 사적인 것, 친밀한 것, 개인성 등에 대한 규범들을 확인하고 강화하며 규범과 규범 바깥을 명확히 구획하는 과정이다. 가깝게는 '먹는다는 것'에 대한 규범들이 확인되고 재생산된다. 즉, '바르게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깨끗하게 먹어달라', '입 안에 음식물이 보이지 않게 해달라', '너무 쩝쩝 소리가 난다' 등의 댓글을 통해 대중들은 '먹기'의 규범을 서로 확인하고 일깨운다. 나아가 먹는다는 행위를 넘어선 사적인 것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먹방 유튜버 '흥삼'과 '쯔양'을 통한 대중적 의미의 생산을 살펴보자. 우선 흥삼은 기존에는 고시원 옥탑에서 홀로 먹방을 하던 BJ였다가 현재는 부모님과 전원주택에 살며 함께 먹방을 하는 유튜브 채널에 주력하고 있다. 방송 내내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출연자 세 명(흥삼, 어머니, 아버지)이 별다른 멘트 없이 먹방을 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때문인지 외국인 시청자(특히 동유럽, 중앙아시아 지역)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유튜브 콘텐츠에 달리는 댓글의 내용은 국적을 불문하고 일관적이다. 세 가족이 한데 모여 요리하고 식사하는 '목가적 풍경'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댓글들이 앞서고, 곧 이어 과묵하지만 자상한 면모가 있는 아버지, 요리 솜씨가 훌륭하고 가족들에게 헌신하는 어머니에 대한 찬사와 부모님에 대한 배려없이 '그저 많이 먹는 데 몰두하는' 아들에 대한 질책이 이어진다. 대중들은 흥삼의 콘텐츠를 통해 가족적인 모습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안온함을 찬미하며 '정상 가족'의 형상을 그려낸다. 또한 그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각각 취해야할 바람직한 역할과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규범을 확인한다. '실제 가족의 식사'라는 대단히 사적인 내용을 담은 흥삼의 콘텐츠가 가족이라는 것의 정상성을 재생산하는 대중적 담론의 장이 되는 것이다.


또 한 명의 먹방 유튜버인 쯔양은 '작은 체구로 많이 먹는' 컨셉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댓글 은 그의 젠더를 중심으로 의미를 생산한다. 한 영상에서는 '(쯔양은) 시집은 다갔다'라는 댓글과 그것의 여성 혐오적 함의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꽤나 쉽게 여성 혐오를 읽어낼 수 있었던 댓글이었던 탓에 반박에 동조하는 쪽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직설적이지 않게 여성에 대한 특정한 형상을 그리는 댓글들이 더 다수다. 이를 테면, '부모님은 쯔양을 어떻게 키웠을까?'라며 그가 먹는 양과 식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댓글은 남성 먹방 유튜버들의 콘텐츠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먹을 것을 조달 받아야하는, '양육과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쯔양에게 '건강을 챙겨라', '건강 검진을 공약으로 삼아라'라는 등의 '걱정'을 내용으로 하는 댓글들도, 물론 남성 유튜버의 콘텐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쯔양의 경우 훨씬 그 빈도 잦고 좋아요 수도 많은 편이다. '걱정해주고 챙겨줘야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 '먹는다는 것'과 같은 사적인 것이 유통되는 과정은, 인간의 공동체적 특성이 디지털 공간에서 발현되는 일이거나, 특유한 사적 개인들이 별다른 게이트키퍼를 거치지 않고 공적으로 확산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를 두고 혹자는 공동체를 다시 확인하거나, 배제되거나 억압되어왔던 사적인 것들이 디지털 회로를 통해 만개하는 순간이라고 평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것들은 대중적 수용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이때의 수용을 통한 공적 의미의 생산이, 사적인 것들을 특정하게 배치(assemblage)해왔던 관습대로 이루어진다면, 그와 같은 논평들은 공허한 것이거나 섣부른 것일 테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먹방을 볼까?'라는 질문을 넘어서서 그 수용 방식이 매 순간 어떤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동반하는가를 포착하는 일이다. 대중에 의해 동원된 담론과 이데올로기들이 다시 한번 대중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되먹임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먹방에 대해 '사람들은 왜 먹방을 보는가?'나 '먹방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의 철학적 질문들로부터 비켜서서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먹방을 보면서 무엇이 되는가?'



*지난 번 이준형의 칼럼 <유튜브 비평 - 몰래카메라 코미디의 문화정치학>에 대한 독자 의견이 있어 늦게나마 보강합니다. '몰래카메라'라는 단어는 일종의 코미디 포맷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주로 여성에 대한) '불법 촬영물'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련된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나 대중적 의미 유통 과정에서 '몰래카메라'라는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을 '불법 촬영물'이라는 표현으로 바꾸기 위한 페미니즘 진영의 투쟁이 있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앞선 칼럼에서는 이러한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에 뒤늦게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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