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구실을 구하러 발품을 팔 때, 중개사에게 엘리베이터가 꼭 있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달았다. 휠체어 접근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지어진 깔끔한 고층 건물들은 예산에 맞지 않았고, 신촌의 오래된 상가 건물들은 대체로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하는 구조였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은 그걸 이유로 월세 수준이 훅 뛰었다. 거의 한 달 간의 발품 끝에 지금의 공간을 만났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공간 대비 임대료가 적당했다. 구조가 네모 반듯해서 용도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기에도, 휠체어가 지나다니기에도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목표와는 달리, 현재로서 우리 공간에는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엘리베이터 한 대 있다고 해서 접근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실제 공간을 운영하면서 보니, 장애인의 통행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너무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공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초보 자영업자는, 이 사실을 너무 뒤늦게 배우고 말았다.
우리 건물은 코로나19 시기에 꽤 오래 공실이었다. 건물주는 조금이나마 임대차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바닥 몰탈 공사와 화장실 공사를 계획했다. 임차인으로서 공사비가 몇 백은 세이브되는 일이니 ‘이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건물주가 화장실을 공사한 위치에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네모반듯평평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화장실 앞에는 수도 배관이 지나는 꽤 높은 턱이 있었다. 정수기 등 설치를 위해 수도 배관을 화장실로부터 끌어오고, 대안이 없어 겨우 찾아낸 에어컨 실외기 위치까지 잡고 나니, 휠체어경사로를 만들 방법이 아예 사라졌다.
2.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화장실은 근처 공공 장애인화장실을 안내하면 아쉽지만 공간 자체에 대한 접근성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공간에는 입구 문에서 넘 어야 하는 문턱이 있다. 그나마 이 부분은 충분히 경사로를 마련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 각했다.
3. 가장 뒤통수를 맞은듯이 놀란 사건은 공사를 시작한지 2주쯤 지나서야 겪었다. 처음 부 동산을 통해 공간을 방문했던 때부터 시작하면 거의 한 달 반동안, 뻔질나게 그곳을 드 나들면서도 자각하지 못했던 세 개의 계단을 발견한 것이다. 그 계단은 건물 입구와 엘 리베이터 사이에 있다. 휠체어가 진입하려면 일단 그 계단 앞에 멈추게 될 게 너무 자명 했다. 그런데도 나는, 또 나와 함께 공간을 보러 왔던 동료들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홀 로, 혹은 보조인과 함께 이용하기에 엘리베이터 크기와 구조가 충분한가’ 따위의 문제만 생각하고 이야기해왔다. 이 사실에 너무 놀라 신촌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건물 입구들을 관찰해보았다. 엘리베이터 유무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건물이 ‘계단 세 개’로 시작하고 있었다. 보행에 큰 불편함이 없는 나에게는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계단들이 낯설게 인식되었다. 해당 계단은 내가 임차한 면적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는 공사를 마 음대로 할 수 없다. 실내 인테리어 과정에서 공사와 시설 구비를 위한 예산도 너무 많이 써버린 상황이고, 몇몇 번 있었던 건물주와의 실랑이로 너무 지쳐 있기도 하다. 그래서 다소 찌질 혹은 비겁하게, 일단은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4. 건물주는 건물 앞 대지에 외부인이 주차할 수 없도록 철판으로 된 문턱을 건물 테두리에 설치해두었다. 이 문턱 또한 휠체어의 접근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물론 비상시 차량 한 대 정도가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턱을 따라 차량들이 줄줄이 주 차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난감해질 것이다. 신촌과 같이 주차난이 심한 유흥지구에 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비장애인 보행자 또한 어느 차량과 어느 차량 사이에 지나 갈 수 있는 틈이 있는지를 골라가며 통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사이공간은 사라진다.
5. 우리 공간은 신촌역 유플렉스 출구로부터 도보 2분 거리에 있다. 그러나 신촌역에 휠체 어가 탑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4번출구 근처에 딱 한 대뿐이다. 휠체어 기준으로는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도보 기준으로도 7-8분 정도로 멀어진다. 버스든, 자차로든 복잡한 신촌 골목까지 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나는 휠체어 접근성을 고작 엘리베이터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 인식과 지식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좀 더 막막한 것은 문제를 지각했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는데도, 그걸 당장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최대한 비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장기적으로는 꼭 노력하겠지만) 휠체어 접근성을 실현하려면 일단 추가 공사를 할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할 것이고, 설득하기의 레벨이 꽤 높은 건물주를 상대해야만 하고, 건물 앞에 주차한 차주들과 매번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것이다. (이사를 가야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다시 공간을 구하고 공사를 한다 해도, 완벽하게 배리어 프리를 구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 또한 없다. 접근성이 좋은 매물은 대체로 임대료가 비싸다는 것을 뜻한다. 대체로 인테리어 업자들은 배리어-프리를 고려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으며 관련한 전문 지식 또한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이미 너무 오랫동안 폭넓게 장애인들의 통행권에 제한을 주는 ‘배리어’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이 도시를 바꾸기 위해서는 좀 더 포괄적이고 대규모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얼마전 화제가 된 한 여론조사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수준에 대한 만족도’를 질문하여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또는 ‘만족할 것 같다’로 응답을 수집하였다. 사람들은 20대 남성 코호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것 같다’는 위악적 응답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주로 떠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장애인의 경험을 추측해서 ‘만족할 것 같다’고 응답하는 일도 우습지만, 리서치 회사가 마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경험을 객관화하여 알 수 있다는 듯이 그러한 질문을 던진 것 자체가 비판받을 일이다. 의도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비장애인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면 오히려 예컨대 내 경험에서와 같이 비장애인이 가질 개연성이 높은 객관적인 무지(“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면 장애인의 출입은 용이하다”)를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질문의 층위를 조정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의 문제는,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분명히 보기 어려운 시야에서 발생한다. 휠체어의 관점 스스로가 말할 수 있도록 담론 장의 발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보편적인 관점에 충분히 통합될 수 있도록 휠체어의 언어가 자꾸만 말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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