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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 아버지란 존재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 이 글에는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내용이 조금 담겨있습니다. 글을 읽기 전에 소설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엄마는 생각만 해도 울컥하는 애틋한 사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복잡하다. 아버지는 삼 남매 중 장녀도 아니고 아들도 아닌 나를 이상하리만큼 유독 예뻐하지만, 아버지가 미움 없이 나를 사랑하는 데 반해 나는 가부장적인 노년 남성인 아버지를 미움 없이 사랑하기 너무나 어렵다. 그런데도 이 소설의 제목이 나를 이끈 것을 보면, 역시 아버지는 어렵고 복잡한 존재인가 보다.


소설은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무심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빨갱이’였던 아버지는 그 모진 세월에도 살아남았지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시종일관 덤덤한 말투를 유지하는 고상욱의 딸 고아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로 아버지의 삶을 복기한다. 아흔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입산을 해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기간은 고작 4년이라지만, 아버지의 4년은 아버지의 인생을, 또 아버지와 연결된 모두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빨치산의 딸, 빨치산의 조카, 빨치산의 동생은 자신의 꿈을 다 펼치지도 못하고 꺾여야 했다. 아버지의 탓은 아닐지라도 세상이 그러했으니 그를 원망할 만한 이유가 너무나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식장에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넘쳤다. 아버지 고상욱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형이었고, 삼촌임과 함께 누군가의 스승이자 제자이자 동지였으며,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작가가 이야기하듯 아버지는 “오죽하믄”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애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 때문인지 그 역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딸은 일평생 아버지의 ‘오죽하믄’이라는 말이 사무치게 미웠지만, 아버지의 조문객들의 기억으로 아버지의 삶을 되살리며 비로소 빨치산 아버지가 아닌, 딸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던 그리운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나의 삶이 복잡하다고 말하면 코웃음을 칠 만큼 나의 아버지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만나는 사람들의 입으로 듣는 아버지의 삶은 어떤 모양일까.


아버지는 평생을 가까이 지내온 친구가 없다. 망해버린 집안에서 중학교 때부터 직접 만화책 도매를 하며 형제들 학비를 대느라 아버지는 형제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는데도 대학에 제때 가지 못했다. 공부를 잘했던 아빠의 고등학교 동창들은 다 ‘사’자 달린 전문직이라 했는데 아버지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깊은 아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아버지는 늘, 자기가 못 이룬 것들을 내가 이루어야 한다고, 남들 앞에 서는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진짜 아들 대신 나를 아들이라 믿기로 한 듯 했다.


아빠는 그게 왜 자기 탓이냐고 하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큰 딸보다 잘나서, 아들보다도 잘나서, 누구보다 잘나서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애썼던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삶이 아름답게만 기억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을 좇았다.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까지도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배치표에서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와 유망하다는 전공을 지원했다. 사춘기랄 것도 없는 유순한 삶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못다 한 방황을 대학을 졸업할 때쯤 대차게 겪었다. 운 좋게 하고싶은 일을 찾아왔지만, 흔들릴 때마다 아버지를 탓했던 것 같다.



고아리가 아버지의 고고한 신념을 미워했던 것과 달리 나는 모순투성이인 아버지의 인간적 면모를 미워했다. 명절 때마다 소주에 물을 타 마시며, 독하게 살아왔던 과거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내 놓을 때면 나는 아버지가 짠하면서도 왜인지 너무 따분해 누가 아빠를 과거로 보냈냐고 외치며 귀를 틀어막았다. 형제들을 대학에 보낸 것이 유일한 자부심이었던 소년은, 이제는 동창들이 다 퇴직했는데도 여전히 자기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긴다. 돈 벌어서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좋아하는 게 없는 아버지는 사업이 잘될 땐 허세를 부리고 사업이 안 풀릴 땐 가족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며 성을 냈다. 평생을 일만 해온 아버지는 멋들어진 취미도 가질 여유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유튜브 영상들을 보며 쉬는 시간을 보낸다. 이러다 정말로 은퇴하면 ‘생계부양자’라는 자신의 가장 큰 정체성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마주할 자신이 나는 아직 없다. 이만하면 충분한 듯싶어 더한 흉을 보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제는 그 시절을 살아온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온 것일 뿐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조금 알게 되었다는 게 나의 하찮은 변명이다.

“K-현대인 중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문제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을 볼 때도 얼마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는지나 부모와 얼마나 이상적인 관계를 맺어왔는지가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지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인 내가, 한국을 살아가는 30대 비혼 여성인 내가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해부터는 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으며 이것저것 보채는 조카를 대하듯 원하는 대로 행동해주는 것이 싸우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다툼은 줄었지만, 어쩌면 아버지와 치열하게 말씨름하던 그때에 아버지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그많은 인연들처럼 우리 각자의 삶은 여러 겹의 관계가 복잡하게 켜켜이 쌓여있다. 아버지의 삶에도 여러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을 테고 아버지가 나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듯, 아버지의 진짜 속내도 내가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어느새 아버지와 함께해온 시간이 앞으로 함께 할 시간보다 길어졌다. 오늘은 아버지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전화나 한번 해봐야겠다고 식상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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