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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 학교를 다시 생각하는 일




내게 학교란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벗어날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지나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까지 학교는 일종의 디폴트였다. 하교 후 학원에 가고, 주말에도 공부하며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수능이라는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가는 삶. 어쩌면 나는 그 디폴트 안에서도 ‘사회학과’라는 비교적 분명한 목표를 가졌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목적이 있으니 의미도 있다는 식으로. 그런 나에게 학교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첫 계기는 대학에 와서 들었던 한 교양 수업이었다. 


‘사회학을 전공하려면 문화인류학도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름만큼은 다소 익숙했던 ‘문화인류학의 이해’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의외로 그 수업은 나에게 가장 낯선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그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건 ‘대안학교’를 주제로 한 조모임의 필드워크 발표였다. 대안학교는 꿈을 강요하지 않는 학교였다. 선생님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 자체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사회학과’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그 꿈이야말로 나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꿈이 없다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꿈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발표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사회학과에서 계급과 불평등을 다루는 수업을 수강하며 나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평등하게 꿈을 꿀 수 없다. 오히려 학교는 모두에게 똑같은 꿈을 주입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누구도 삶의 조건에 관해 묻지 않는 체계. 그 체계 안에서 나는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라고 해서 늘 고분고분한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잡지에 '수능 바꾸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제목의 글을 실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조악한 내용이었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는 학생을 등급으로 나누는 시스템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 글을 본 엄마는 “전교 1등이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귀담아듣겠지만, 너 같은 애가 하면 질투로밖에 안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말 안에도 수많은 현실이 들어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냥 ‘이제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제도의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학교 제도에 대해 고민을 이어가던 중에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진행된 ‘비판적 청소년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이 세미나를 듣게 된 건, 오늘날 유독 문제시되는 청(소)년 남성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관심은 점차 ‘학교 안팎’을 살아가는 다양한 청소년들의 삶으로 옮겨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교육을 고민해 온 이들이었고, 그들의 말은 어느 하나도 평면적이지 않았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는 문득 오늘날의 학교를 우리는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교사 인권의 위기, 학부모와의 긴장, 청소년 문해력 논란 같은 뉴스들이 반복되는 지금, 학교란 어떤 공간이어야 하고 어떤 관계를 다시 상상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학교의 가능성’이라는 세션을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의 성소수자 지우기, 퀴어 교사의 생존 전략, 대안학교에서 퀴어 청소년들이 만들어낸 변화의 실천까지. 세션에서 다뤄진 이야기들은 학술적이면서도 현장이 살아 있는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발표자들 대부분이 교육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사람들,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또래'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학교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학생으로서 학교를 경험해 온 나에게 이제는 '어떤 교육을 상상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낯설게 다가왔다. 어릴 적 내가 겪었던 학교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구체적인 언어와 실천으로 학교를 다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른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그 세션 이후로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학교를 떠올리게 되었다. 단지 비판하거나 벗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어떤 배움의 장면이 가능할 것인가’를 다시 묻고 상상해 보는 장소.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어떤 교육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장소. 그런 장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이제는 나 역시 그 가능성의 일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교육을 받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박사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받을 예정이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체계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다른 상상을 해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질문으로 서로를 배움의 주체로 초대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학교 안팎을 다시 사유한다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일이 아닐까.



글. 서우빈

편집.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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