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에서 2023년 초까지, 이런 천재일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변화들이 생겼다. 첫 번째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한 학기가 지나자마자 다른 학교의 같은 학과에, 더 좋은 조건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고, 두 번째로는 이와 맞아떨어지는 시기에, 또 더 좋은 조건으로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가지 다 다행인 동시에 너무나도 기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특히 청년테마주택 일원으로 선발되어 새 집(그리고 저렴한 값에)에 입주하게 된 것이기에 ‘지금이 아닌’ 더 좋은 시점을 기다리는 게 별다르게 의미가 없을 정도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다분한 축하와 응원을 받으면서 2023년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나는 이제 ‘정신’만 차리고 변화들을 맞이하기만 하면 되는 연말연시였다.
하지만 난 이 기회들을 마냥 웃으며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부담’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신상의 변화가 다소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과 규모로 다가오면 필시 따라붙는 것이 지난날에 대한 회고와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한 고민일 터인데, 두 방향 모두 썩 긍정적으로 생각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이 ‘일’들을 준비하기보다는 후회와 걱정에 휩싸여-누운 채로 짧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오고 있다. 구구절절 사담을 늘어놓았지만, 결국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박사과정’이 ‘때늦은 독립’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사실 학계에서 석박사를 한다면 모르는 이가 없겠으나, 석사/박사라는 타이틀이 각기 가지는 무게의 차이는 꽤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세미나에 참여할 때도 왠지 ‘박사다워야’ 할 것 같고, 말 한 마디마다 그동안 내가 석사과정을 거쳐 오면서 듣고 이해하고 소화한 많은 지식들을 농축시켜 정제된 방식으로 제시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덮쳐오기 때문이다. 나의 석사과정을 이끌어주셨던 지도교수님께서는 석사과정이 학계에 적응하기 위한 트레이닝의 시간이라면, 박사과정은 그 트레이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내가 내 연구주제를 가장 잘 알고 있고 따라서 그에 관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한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해주셨다. 나는 과연 학위의 단계로 표현되는 성장을 그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방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끊임없이 ‘나(의 관심사, 연구주제, 이론적 배경, 지식...)’를 증명해야 하는 지식장의 특성상 타인과의 비교는 멈춰지지 않고, 제 능력의 한계를 수시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은 연구자라면 으레 가지고 있을 법한 정신적 타격의 축적을 수반한다. ‘박사학위 논문’(작품!)으로 이어지는 그 도정에서 ‘연구성과’(보고서, 소논문...)는 성실하게 쌓여야 할 것이고 최소 3명의 끄덕임을 이끌어내야 한다. 연구자의 깨달음 내지 이해는 마치 돈오처럼 습격한다고들 하지만, 성과는 하나씩 이력(履歷)으로 들어찬다.
다만 그 증명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꾸준히 주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보상되지도 않는다는 점은 연구자들이 심리적/물리적으로 가장 어렵게 견뎌내야 하는 무엇일 것이다. 연구성과는 오랜 기간의 학술적이고 기술적인 ‘수련’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즉각적이지도 정기적이지도 않으며 과연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할 수 없으니 불안정하다. 이 불안정함은 연구자의 ‘생활’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기실 박사과정까지 왔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진로가 급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꺾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고, 살 길은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쳐야 도모될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앞서 한탄에 가깝게 이야기한 성과나 자기증명은 얼마만큼, 어떻게 쌓여야 ‘살 길’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해질까? 모든 연구자가 여유 있는 계급계층적 배경을 등에 업고 연구를 지속할 수 없는 바에야, 생활의 안정은 연구를 흥미 위주의 ‘공부’가 아닌 직업이고 일이라 생각해야만 유지되는 것이고,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다른 분야의 누구에게도 너무나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독립과 박사과정에의 진학을 공교롭게도 동시에 마주하면서 이 ‘직업의 세계’를 깨달았으며, 게다가 나는 아직 나를 어필할 수 있을 만한 어떤 것도 증명해낸 적이 없는 무명(?!)이기에 쉽지 않은 (마음) 자립의 시간을 거치고 있음일 뿐이다.
정권에 따라서 일거리가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주제나 분과 자체가 ‘인기’가 없기도 하고, 연구 방법이 용역과제와 맞지 않기도 하고...결국 과제를 수주받는 ‘을’이지만 또 그렇다고 누구나 을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럼에도 연구를 하겠다고 결심한 박사과정-신진연구자들이 이 한국에서 ‘자립’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만큼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사실은 아직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모든 연구자들이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공부해도 되는 사람인가?’ 등등의 습관적인 의구심을 품고 산다지만, 이것이 생계와 결부될 때, 그리고 결부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의 마음가짐은? 그 도전들이 수없이 좌절되고 결국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해야 할 때의 그 머뭇거림은?
이 모든 것이 물론 지나치게 시간을 앞질러 나간 걱정이고, 지금의 나는 어쩌면 너무 ‘혼자’에 매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립이니 독립이니, ‘자책’이나 ‘책임’ 등 파편의 용어로 표현되었던 모종의 시대정신으로서의 강령이 현실직시의 시기를 거치면서 부쩍 눈앞에 들이닥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의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공동체에 내가 속해 있고, 더 넓은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으며 또 형성 중에 있다. 이것이 만연해 있는 성과주의나 정치의 변덕을 극복시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조금씩이나마 꿈틀거리는 연대의 시도가 ‘살 길’과 연구를 연결시킬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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