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여러 뉴스들을 둘러보면서 종종 ‘인간성’이란 도대체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인류애 충전이나 상실 등으로 주로 표현되는 인간성에 대한 ‘평가’는 결국 어떤 ‘사건’인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매일 만행과 선행을 마주하면서 수시로 인류애를 더했다 뺐다, 결국에는 0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 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컨텐츠다. 이들은 거대 자본의 투자를 등에 업고 있고, 두 작품 모두 시즌2 제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감독은 그보다 더 폭력적인 작품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이야기들은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져 왔다. 공통점을 꼽아보자면 우선 첫 번째로 자극적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제된 상황에서 인간의 폭력성은 어떻게 분출되고 ‘해소’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이것이 결국 인간의 ‘본성’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이렇게 등장하는 인간의 바닥성(?!)은 보통 생존 아니면 죽음으로 내달린다. 이러한 전개는 격렬한 경쟁사회를 비판하고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잔혹함을 ‘불편하게’ 드러내주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더불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 불평등, 일그러진 정의 등은 이와 같은 방식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비극적인 상황을 ‘넘어갈지’에 대한 방법을 찾아낸다. 최선의 결과는 일종의 타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르게 보자면 종내에 드러날 ‘인간성’과 대비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꾸준히 이 ‘장르’가 인기를 끌었던 것을 보건대 아무래도 이렇게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남기는 방식은 퍽 효과적이었던 듯도 하다(물론 ‘멘붕’으로 끝났던 작품들도 수없이 많다).
그로 인한 효과는 이중적이다. 이를테면 대중의 평가는 크게 두 경향으로 나뉘는데, 비극적인 환경에서 나타날 문드러진 인간성의 밑바닥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것, 또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말 그대로의 인간성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것. 이 과정에서 인간성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불현듯 숭고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극중에서 재현되든, 아니면 극장을 나오는 관객의 ‘깨달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든.
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와 같은 ‘고난’을 다루는 대부분의 시나리오의 용법은 비극의 시발점과 이에 뒤따르는 아비규환의 현장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최악’을 ‘최선’을 다해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결말이 어찌 되었든 이들이 다분히 오락을 추구하는 ‘자극적’인 컨텐츠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오락적’ 요소가 결합됨으로써 대중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데 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컨텐츠가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인간성’과 관련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더 광범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휴퍼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모든 것은 빛난다>를 통해 제기했던 의문처럼 “인간의 어리석음, 어두운 시대를...‘그저’ 극화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이어서 “어두운 시대에서 좋은 예술에 대한 정의는, 시대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고 빛을 내는 인간적이고 마법적인 요소들에 대해 심폐소생술을 가해주는 그런 예술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단순히 신파에 기대야 한다거나 ‘인간미’를 제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 것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어쩌면 이는 선명하게 시대를 바라보면서도 일종의 ‘사회적’ 감각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컨텐츠라는 렌즈를 경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그렇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는 인간의 시간을 낙관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에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렇게 ‘쏟아지는’ 냉소와 비관의 사이에서 다소 머뭇댈지라도, 설령 그것이 ‘진짜’라고 할지라도, <다크나이트>에서 끝까지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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