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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성애는 정말 비극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제인 워드의 『이성애의 비극』을 읽고

  • 4시간 전
  • 5분 분량

이성애자 남성은 지루하다고 일침을 놓으면서 이성애자 여성을 적극적으로 걱정해주는 레즈비언 사회학자 교수라니. 이 콘셉팅 기획력 하나만으로도 내한한 제인 워드를 보러 갈 이유는 충분했다.


제인 워드는 여성혐오로 범벅된 이 구조 내에서 남성이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며, 이성애자 여성은 이러한 비극을 견디면서 살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제인 워드는 이성애의 발명 역사를 살펴보고, 픽업 아티스트 산업에 남성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와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대안으로 내세운 ‘깊은 이성애’란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설명한다.


이성애의 비극을 오래전부터 생생하게 겪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제인 워드의 사유를 경유하여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되 나의 관점에서 이성애의 비극이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느끼는지 고민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다. (제인 워드의 비판적 이성애 연구와는 조금 다른 나의 경험과 고민이 등장하는데 이해를 바라며 이런 삶도 있구나 수용해주면 좋겠다.)


일단 나에게 이성애의 비극이란 다양하고 복잡한 불행을 선사하는 무엇이다. 연애 각본부터 부담스럽다. 요즘 내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는 한국식 연애를 비판하는 프랑스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은 입을 모아 한국식 연애가 징그럽다고 말한다. 하나둘셋, 우리 사귀자! 선언하면 곧바로 연인이 되며 어제까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으나 오늘부터는 연애 규칙을 충실히 따라야 하며 각자의 남성성/여성성 수행에 소홀히 하지도 않아야 한다. 각 연인의 각본은 미끄러지듯 조정될 수 있으나 완전히 그것의 규범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임금은 적고 노동시간은 길며, 부동산은 너무 비싸서 하이닉스에 다니지 않는다면 신혼부부 대출이라는 제도를 활용하여 저 멀리 위치한 낡고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꼭 그렇게 남들처럼 살아야 해?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 불만이 많아? 그리고 이성애에 그렇게 매몰되어야 해? 네가 원하는 길을 찾고 좀 다르게 살면 안 돼?


나도 현재 그렇게 안 살고 있긴 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못 살고 있는 것에 더 가깝다. 규범적인 이성애를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 작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1인 출판사를 차리려고 준비 중이어서 이미 나는 보통의 이성애 연애 시장에서 최하위 매물로 여겨지고 있다. 나도 ‘보통’의 (대학-연애-결혼-출산의) 삶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 외의 삶에 대한 대안적 상상력이 부재한 것도 크긴 하다. 이성애 연애-결혼 말고 다른 삶은 무엇이 있을까? (비혼주의를 폄하하거나 이성애 결혼이 옳다는 뜻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나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왜냐하면 일단 친구들이 점점 내 인생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유년 시절부터 남성 무리에 속해본 적이 없고 여자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서른이 넘으면서 점점 친구들이 유부녀가 되며 관계가 자연스럽게 끊겼다. 유부녀가 되어도 종종 만나고 친구로 지내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두 명 있는데 그들은 모두 연구자다) 그래서 요즘 나는 여자인 친구를 사귈 때 (이렇게 말하면 슬프지만) 결혼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연구자나 활동가 또는 이성애 규범에서 이탈된 사유를 지닌 사람들과만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남자인 친구도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애기라도 생긴다면 그 친구는 단톡방에서조차 답장을 못할 정도로 바빠진다. 애가 초등학교는 들어가야 친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 그때가 되면 그 친구는 부부동반 모임을 오가며 애까지 껴서 그곳에서 함께 놀지 날 찾진 않을 것이다.


나는 활동가-대학원-편집자의 세계를 넘나들며 살아왔고, 그리하여 제인 워드의 북토크에도 참여해 이성애의 비극을 고민하는 사람으로 컸지만, 보통의 직장인들은 월-금 9 to 6의 삶을 살며 이데올로기와 규범이 내준 숙제인 결혼을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 (마치 중력처럼 이성애에 이끌릴 수밖에) 그러니까 대안 가족 공동체는 비규범적이고 유지하기가 어렵다. 서른이 됐을 무렵 주변 친구들과 모여 대안적 친구/가족 공동체를 만들자고 약속했으면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 웃으며 청모를 열고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럴 때면 배신감에 치를 떨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나부터도 결혼할 기회가 있었다면 저랬을 테니까.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대안적 공동체의 상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상이 존재해서 나에게 레퍼런스를 주면 좋겠는데 이성애 결혼 문화가 너무 거대하고 규범적이어서 다른 상상력이 그 틈에서 발휘되기가 쉽지 않다.



지금 나는 남성으로서의 고민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여성의 입장을 추가한다면 제인 워드가 말한 것처럼 이성애의 불행은 더욱 가중된다.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골딘의 말처럼 한국은 독박육아와 여성의 낮은 인권으로 출산율이 낮아지는 특이한 현상을 겪고 있고, 임신-출산은 여성의 커리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남성의 돌봄노동은 처참해서 결혼하느니 비혼으로 남는 게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SNS식 농담은 정말로 사실처럼 느껴진다. 꾸밈노동과 감정노동, 원치 않는 불쾌한 섹스들과 임금 격차 및 젠더 기반 폭력들까지. 열거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 불행 속에서 이성애자 여성들은 살고 있다. (내가 한 고민에 젠더 문제까지 추가한다면? 제인 워드가 이성애자 여성을 연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꾸만 관성처럼 이성애 연애-결혼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안을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인 워드의 말처럼 페미니즘이 답일까? 페미니즘이 당연히 해답이지만 이 총체적인 비극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만약에 이성애 남성이 진정으로 여성을 사랑하고, 돌봄노동에 열과 성을 다하며, 친절하고 자상한 페미니스트로 변모하고, 여성의 고충을 이해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까. 일단 그것만이라도 잘하면 좋겠다고 제인 워드는 말하는 것 같긴 하다. 그렇게만 되어도 ‘깊은 이성애’의 실천은 가능하며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뭘까. 아무래도 이성애의 비극이 촘촘하게 (연애 각본, 임금노동, 부동산 등) 여러 문제와 엮여서 그런 것이겠지. 이성애 연구가 지금 시대에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이제 글을 마칠 때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이성애의 비극에 굴복한 글인 것 같아 민망하지만, 나의 위치에서 (나름 치열하게) 고민한 사유로 읽어주면 좋겠다. 정말로 이성애자들의 삶이 행복해지는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 (이성애 문제는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도 이런 서적이 많이 출간되어 기존의 관점을 더 넓게 확장할 수 있길 바란다. 제인 워드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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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제인 워드 선생님에게,


솔직히 선생님에게 동의 안 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마치 퀴어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하다는 전제가 좀 그랬어요. 선생님은 솔직히 인문사회예술 문화자본이 가득한, 자신을 믿어주는 안전한 퀴어 공동체를 가진,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한 미국인 정교수 학자이시잖아요. 제 퀴어 친구들은 거의 다 멘헤라예요. 심지어 연구자 정체성을 가진 이라면 불안한 미래 때문에 점점 애들이 이상해지는 걸 몸소 체감할 정도예요. 사회성도 떨어져서 제가 다 걱정이 되고요. 연애를 해도 실패하고 어플 말고는 어디서 상대를 만나야 할지도 몰라 해요.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정말 못된 퀴어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퀴어의 삶이 선하고 다채롭다는 뉘앙스를 전제해서 오히려 논의가 조금 단선적으로 된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보통의 이성애자 남성’을 상정한 부분도 불만이 많아요. 선생님은 그렇게 다채로운 삶을 사는 안정적인 교수이면서, 이성애자 남성 대표로는 마치 학부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한 (지루하고 여성혐오적인) 가부장제에 찌든 공대생 같은 사람을 가정하다니요. 그러면 체급이 안 맞잖아요. 물론 픽업 아티스트 산업에 잠입해서 분석했으니 (그런 사람들만 보이고) 그랬을 테지만 반대로 페미니즘에 친화적인 인문사회예술 이성애자 남성은 어떨지도 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물론 연구 대상이 따로 있으니 그런 것이었지만요!)


뭐랄까, 또 하나 덧붙이자면 남성이 페미니즘을 접하면 인기가 많을 거라고 북토크에서 농담으로 말씀하셨는데 그 말에 대해서 저는 반만 동의해요.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지만 너무 많이 읽으면 오히려 연구자가 되어버려서 불행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인문사회예술연구자활동가어쩌구 등) 바닥에서야 페미니스트 남성이 인기일 수 있지만 (저도 그런 혜택을 많이 받긴 했어요.) 조금만 밖으로 나가 ‘일반 직장인 구역’을 경험하면 오히려 거기서는 페미니스트 남성은 인기가 없어요. 이준석이나 트럼프를 지지하고 뭐 이러지만 않는다면 페미니스트 남성보다는 적당히 다정한 게 더 인기가 있더라고요. (페미니즘 말고 다른 요인이 매력에 영향을 끼칠 때가 많고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연구 대상과 제가 생각하는 이성애자 남성과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달라서 제가 조금 반발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이성애의 비극을 고민한다면 더 깊은 논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추가로 남겨요. 여기까지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든 건 결국 선생님 덕이 큽니다. 시차 적응 조심하시고 다음 책 출간도 기대할게요.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박종수 (신문연 회원)

편집.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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