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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현장 연구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의 어려움

  • 1일 전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시간 전



인류학에서 현장 연구(필드워크)란, 현장에 들어가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인류학 공부를 마음먹은 이유도 현장연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연구자의 몸이 지식 생산의 도구가 된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작년 말 다녀온 짧은 현장연구는 어색하고도 불편한 기운을 온몸으로 견디는 시간이었으며, 견디는 만큼 우연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의 연구 현장은 강화도 북부 민간인 통제구역 내에 위치한 양사면의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땅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 종일 새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조용한 동네다. 북한과 가까운지라 군사 시설이 밀집해 있고, 군인들을 드물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검문 과정을 거쳐 엄중한 경고 문구와 출입 시간이 써진 통행증을 받은 후에야 민간인 통제구역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제약이 있는 양사면을 연구 현장으로 삼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빠가 2020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기에 출입 시간에 제한이 없었고, 거주지가 해결되는 등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편의점 하나를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민간인통제선 밖으로 나와야 하고, 정류장은 있지만 버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동네였다. 길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보이면 무턱대고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걸었다. 주로 동네를 산책하거나 농사를 짓고 계신 어르신들이었는데, 친절하게 답해주는 분도 계셨지만,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을 귀찮아하는 분도 계셨다. 주민들과 말을 트기 위해 애쓰는 동안 밭일도 하고, 밥상 차리기도 돕고, 난생처음 교회 예배도 가보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여러 주민에게 말을 건네면서, 내가 지내는 곳의 마을회관에서 평일이면 주민들이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회관에는 마을 근방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고향을 떠나 양사면으로 시집을 온 뒤로 50년 이상의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온 주민들이 대다수였다. 한동네에서 지내온 세월이 내가 살아온 햇수의 두 배를 넘기려고 하는 이들 사이에 난데없이 젊은 애가 나타났으니, 나에게 가장 먼저 온 질문은 당연히 “누구세요?”였다. 하지만 아빠 덕분에 마을 주민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집 방향을 가리키며 “돈댓골(집이 있는 장소의 이름)에서 온 딸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자, 인류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공부하는, 20대 여자인 나를 최대한 덜 낯설게 만들기 위한 말이었다. 실제로 주민들도 나를 “돈댓골 집 딸”로 부르며 마을 구성원으로 대해주었고,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나와 세대도, 살아온 환경도, 하는 일도 다른 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내가 처음 시도한 일은 우리를 연결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는 일이었다. 마침 내가 유용하게 써볼 수 있었던 방식은 ‘마을 구성원’으로서 이곳에 대해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나름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을을 꾸준히 방문해 온 사람으로서, 나름의 내부자적 정체성을 어필해 본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화를 진행하면서 작은 딜레마를 만들어내는데, 그건 바로 주민들이 자신과 ‘외지인’을 구분한다는 데에 있었다.


‘토박이’ 주민들이 ‘외지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은 비교적 최근에 마을에 들어와 농사를 짓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아빠도 외지인인 셈이다. 외지인은 마을에서 지내긴 하지만, 주민들과 마을의 역사를 함께하지 않았기에 토박이와 외지인 사이의 구분은 뚜렷했다. 그러니까 나는 마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기에,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었지만, 마을회관을 찾아오는 유일하고도 특이한 외지인이었다.


외지인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마을이 허전하지 않으니까 좋다는 의견부터, 젊은 사람들이 별로 안 들어오니까 도움이 안 된다는 불만까지 다양했다. 나의 외지인이라는 지위는 주민들의 생활세계를 한 발 떨어져 낯설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했지만, 한편으로는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솔직한 답변을 주춤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했다. 마을의 ‘새마을 회장’이자 예산을 관리하고 있는 한 주민은 외지인들이 마을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예산이 부족하거나 일손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기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도, 그가 부정적으로 말하는 외지인은 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5~60대 외지인임을 은근히 드러냈다. 외지인에 대한 그의 의견은 결국 나에 대한 평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가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웅덩이에 색색깔의 종이배를 띄우고 있다.

마을회관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인원이 평균 15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완전한 외부자라기엔 연고가 있고, 내부자라기엔 마을 주민들과 세대도, 살아온 배경도 완전히 다른 나의 모호한 위치는 상황에 따라 “돈댓골 집 딸”과 외지인 사이를 왕복했다. 양사면을 연구 현장으로 삼을 수 있게 해준 개인적 배경이 주민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데 정당성을 제공해 주긴 했지만, 주민들이 나를 어떻게 범주화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주민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 지역에 대한 연고를 어필하는 것이 주민들과 라포를 쌓는 지름길이 되진 않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주민들 사이에 소속감의 경계가 어떻게 그어지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긴장감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완전한 외부자였다면 유관 단체나 기관의 도움 없이 ‘주민’들에게 직접 다가가거나, 이런 신호들을 포착할 기회가 적었을 테고, 내부자로 받아들여졌다면 너무 당연하여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나의 정체성의 균형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는 본격적으로 현장에 들어가게 될 나에게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이지만, 작년 경험은 그 과정에서의 걸림돌이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주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현장 연구를 할 때 나의 가장 큰 부침은 여전히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잘 그러안을 수 있길 바라며, 짧은 미래에 진행하게 될 현장 연구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마치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인류학이 지향하는 앎의 방식을 체화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몸으로 감각하고 싶고, 그러한 방식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것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글. 조예진(신문연 회원)

편집. 권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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