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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 어떤 평범한 상실의 시간

  • 23시간 전
  • 7분 분량

최종 수정일: 32분 전


일상의 변화


올해 초, 아빠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자연스런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온몸으로 전이된 암의 증상이었다. 나는 암 중에서도 예후가 안 좋기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설명을 찾아보는 걸 시작으로, 우리 가족에게 닥친 갑작스런 변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 빼고는 모두 지방에서 사는 덕에,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 위해 아빠는 힘든 몸을 이끌고 여러 차례 서울의 병원을 오갔다. 체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진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들이 서울을 오간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절감했다. 더욱이 서울을 오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 말고는 서울의 지리조차 잘 알지 못하니 자연스레 내가 책임져야 하는 몫이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의사는 환자를 말 그대로 사물로 취급하는 정말 최악의 인간이었고, 나는 의사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화내며 들이박고 싶은 충동을 부단히 삼켜야 했다.


그렇게 내 일상도 달라졌다. 지금 아빠는 여러 번의 진단을 받고 고향 근처 병원에 다니며 항암치료를 받는다. 오랫동안 가족과의 관계를 포기하고 지냈던 나는 놀랍게도 종종 연락을 하고 안부를 묻는다.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고향을 찾는다. 몇 년간 거의 관계를 단절하다시피 했던 내게는 이 일상이 여전히 낯설다. 그러면서 신기하게도 ‘갓생’을 사는 중이다. 매일 아침 무언가를 해 먹으며 건강한 식단을 찾고 영양제를 한 움큼 챙겨 먹는다. 유년 시절부터 자기 돌봄을 의식적으로 피하며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해왔던 내가 나를 돌본다. 이 역시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 중 하나라는 걸, 주변의 지인들이 건네준 사연을 들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60대인 아빠는 요즘 같은 고령화 시대에 나름 일찍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가, 아빠랑 같은 연령의 어른들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다. 이르거나 늦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아빠의 경우가 무척 예외적으로 이른 건 아닌 셈이었다. 결국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일이고 그럴 연세라는 걸 실감했다.


다르게 말하면, 박사논문 집필을 시작하려다 아빠의 암 선고로 잠시 멈춰 선 내 경우도 ‘연구자의 사연’의 일부에 속할 것이다. 삼십 대 후반인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연구자라면 가까운 이의 돌봄에 일상을 할애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마련이겠다. 어쩌다 연구자의 경로를 밟아가는 나 역시 동세대나 선배 연구자들이 겪었거나 겪는 중인 일상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가족의 질병과 노화로 인한 것이든, 새롭게 태어난 아이의 양육에 의한 것이든. 사실 나보다 더 일찍, 그리고 전담하다시피 돌봄을 해야 했을 ‘영 케어러’에 비한다면 내 처지에 딱히 억울함이나 불만을 가질 계제도 아니다. 그저 나는 내게 닥쳐온 변화를 하나하나 헤아리며 남들도 다 겪을 일을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한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가 다시 눈앞에 덩그러니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긴 시간 만나지 않았던 가족들과 자주 보게 되면서, 내가 왜 가족들을 피해 왔는지 그 이유를 새삼 떠올릴 수 있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해 살면서 가족이 일상 바깥에 놓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고 기피하던 모습들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니, 그 이상의 문제가 있다. 어릴 적엔 아이에게 부모란 거대한 ‘갑’이니 화내고 싸우고 반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부모가 보이는 미운 모습에 자동 반사로 화를 내다가 그만, 더 이상 부모가 ‘갑’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어느새 나보다 여리고 약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길을 못 찾아 지도 앱 보는 법을 알려달라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워하는 부모를 보며, 나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서울에 거주하기에 고향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아빠의 주 돌봄자가 아니다. 부모와 같이 지내며 직장을 다니는 동생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주 돌봄자는 엄마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자의 돌봄, 그러니까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상태를 살펴야 한다. 그러려고 연락할 때면 엄마와 아빠 양쪽의 불만을 번갈아 듣고는 한다. 집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진 이상 집에서 두 사람이 항시 부대끼며 지낼 수밖에 없기에, 또 서로가 더 늙고 취약해져 가기에, 언급을 피하며 묵혀 왔던 갈등이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각자 풀지 못한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는 순진한 영화처럼 그 모든 숙제들을 종국에 풀어내어 모두에게 행복한 작별이 이뤄질 거라고 믿지 않는다. 해소할 수 없는 건 영원한 숙제로 놔두는 것 역시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의 하나다.




슬픔의 언어들 


나는 상투적인 언어들, 가족주의의 문법이나 가족애 같은 단어로 지금의 나를 설명하지 않는다. 전혀 맞지 않는 옷이므로. 다만 ‘책임’이라는 단어로 설명해 본다. 가족을 딱히 사랑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상호 의존과 연결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단한 효심도 없고 사랑도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책임의 몫을 다한다는 정도의 마음이다. 주 돌봄자가 아니라 계속 옆에 붙어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계속 함께 힘듦을 나누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 돌봄자가 ‘독박’을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함께 그 책임을 나누어지려 노력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시한부라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건강하게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빠에게, 생의 종결점이 아주 분명하게 정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심리학 개념을 빌리자면, 이 상황은 예기된 애도(anticipatory grief)에 속한다. (비록 ‘산 자’의 입장에서의 서술이지만) 갑작스런 상실에 비하면 상실을 직면할 준비 기간을 일종의 심리적 완충지대로 가질 수 있는 경우다. 상실의 충격을 미리 점진적으로 체험하며, 상실 이후의 상태를 미리 상상함으로써 일상과 마음을 재조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는 적어도 갑작스런 상실에 의한 외상적 사별/애도(traumatic bereavement)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것일 테다. 콜린 머레이 파크스(Colin Murray Parkes)는 그런 경우를 두고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익숙했던 세계(assumptive world)가 산산조각 나는 고통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애도가 불가능한 상실들도 있다. 예컨대 치매와 같이 신체적으로는 남아 있지만 정신적으로 부재하는 상황을 두고 모호한 상실(ambiguous loss)이라 부른다. 이는 국가폭력을 겪었으나 삶과 죽음 어느 쪽도 확인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의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이나 한국의 의문사 같은 사례를 포괄한다. 이와 관련해 진은영은 칠레 피노체트 정권에서 강제실종된 아들을 둔 아버지에 대해 쓴 아리엘 도르프만의 시를 인용하면서, “부모가 자식이 어디선가 비명을 지르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 … 참혹한 희망”이라고 썼다(진은영,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마음산책, 2024.).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거다. / 놈들이 / 그놈들이 아직도 / 제 자식을 / 고문하고 있다는 걸 / 알게 되는 게 / 어떻게 해서 / 한 아비의 / 기쁨이자 / 한 어미의 / 기쁨이 / 되는지 말이다. / 그건 / 그 애가 잡혀간 지 다섯 달 될 때까지는 / 아직 살아 있었다는 뜻이고, / 우리의 최대 / 희망은 / 놈들이 그 애를 고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 내년에 / 듣게 되는 것이다. / 여덟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또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실은 박탈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를 낳는다. 내가 연구하는 사례로 치자면, 애도의 '제도화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실된 대상에 충분히 애도할 수 없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지인이나 친구들이 있다. 이성애 관계가 아니거나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그 슬픔들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제주도 조천읍 북촌리는 제주 4.3사건에서 단일 마을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났던 곳으로, 1954년 마을 사람들은 학살이 일어난 북촌초등학교 앞에서 ‘아이고 아이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이장 등 마을 사람 몇몇이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다시는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풀려났다. 이른바 ‘아이고 사건’이다.


아빠가 진단받은 병명은 담관암 또는 담도암이라 불린다. 자료를 찾아보다가, 서구 사회에 비해 한국에서 담도암이 더 많이 발병하며 특히 담도암이 제조업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에게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확인했다. 많지는 않으나 국내에서도 역학조사나 산재 신청 사례가 있다. 아빠는 생산직 노동자로 한 세월을 일했다. 그러다 은퇴를 앞두고 처음으로 노동조합에서 간부가 되어 활동을 했다. 공교롭게도 조합원의 산재 신청 승인을 받기 위해 회사와 협상하는 역할이었다. 당시 아빠는 나에게 본인이 상담했던 사례들에 관해 얘기하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자살한 조합원의 아내 분이 카톡 내용까지 하나하나 캡처한 뒤 울면서 찾아와 우울증으로 산재 인정을 받고 싶다고 부탁했다던 사연이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정작 담도암 진단을 받은 건 아빠가 은퇴한 지 시간이 꽤 지난 후였고, 또 체력이 크게 떨어진 당사자가 지난한 산재 인정의 과정을 원할 것 같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곁을 지키는 공기


그런데 정작 상실에 대한 공적인 또는 사회적인 설명이 상실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가령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오랫동안 길에서 싸우며 공적인 인정과 (아직도 온전히 이뤄지지 못한)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그럴수록 사적인 관계와 일상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애도가 후순위로 미뤄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애도 작업은 지연될 수 있어도 우회할 수는 없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개인이 자기 세계 속에서 거쳐 가야 할 애도의 시간이라는 게 있다. 그 시간에는 세상이 공유하는 언어가 통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언어를 쌓으며 걸어가야 한다.


야마시타 토모코의 『위국일기』는 그것을 ‘고독’이라고 일컫는다. 『위국일기』는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타쿠미 아사와, 그에게 동거를 제안한 이모 코다이 마키오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다. 마키오는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아사에게 “네 감정은 너만의 것이고 그 누구도 책망할 권리는 없어”라고 위로하지만, 그 위로는 마키오가 강조하는 절대적인 ‘고독’의 영역에 대한 존중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서늘하다. 타인이 책망할 수 없다는 것은, 동시에 타인이 이해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는 오롯한 ‘고독’의 영역에 대한 존중을 뜻한다. 그래서 마키오는 조카 아사가 쉬운 (상투적인) 위로를 요구해도 거절하고, 반대로 아사가 마키오의 과거에 대해 묻자 “내 슬픔은 나만의 것”이고 “누구하고도 나눌 생각 없어”라고 답한다. 아사는 자신도 마키오도 모두 ‘사막’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고 말한다. 사막은 고독을 형상화한 풍경이다.


요즘 아빠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무의미’를 느낀다. 설령 아무리 생이 찬란하고 의미로 가득 찬 것일지라도, 반드시 다가올 죽음은 그 모든 의미와의 절대적인 단절과 같다. 저 경계 너머로는 아무것도 없기에, 결국엔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다. 더욱이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질 수 있더라도 몸 밖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은퇴 이후의 삶을 펼쳐가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통을 겪는 몸뚱어리로 그 세계가 급격하게 쪼그라든 아빠에게 남아 있는 생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저 가족이 있다거나 그래도 ‘살아갔다는 흔적’이 남았다는 것으로 다가올 절대적인 무의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식의 위안은 차라리 ‘살아남을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부여하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의미가 텅 비어버린, 절대적인 무의미. 사실 유년 시절부터 오랫동안 고도 우울증을 겪어왔기에, 내게는 그 무의미의 감각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것은 마키오가 말하듯 오롯이 “나만의 것”인 슬픔이자 공허이며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나누고 싶지도 않다. 슬픔을 나누지 않는 것, 내게는 그것이 슬픔과 무의미에 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나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암은 터부시되는 질병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겪는 것이고, 그래서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다. 암을 겪는 가족을 둔 나의 슬픔은 어렵지 않게 주변의 존중을 받는다. 물론 그것이 ‘고독’의 순간을 대신해 주거나 경감시켜 주지 않으며, 또 깊은 우울 속에 빠질 때 타인의 목소리는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옆의 누군가에게 아빠의 얘기를 꺼내면, 슬픔이 스며든 공기를 함께 숨 쉬며 그 속에서 침묵이나 말의 소리가 퍼져나가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때로는 잔소리 같은 조언으로, 때로는 두런두런한 음정의 소리들로 내게 남아 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통해 슬픔이 삶의 필연적 일부라는 것을, 다만 결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죽어가는 아빠의 곁에서, 황망한 얼굴로 울음을 삼키던 엄마 곁에서, 아마 내가 다해야 할 ‘책임’이란 것도 그런 순간을 함께 통과하는 것일 게다. 나아가 나 역시 슬퍼하는 누군가의 곁에서 세상을 향해 요구했던 ‘사회적 지지’라는 것이 바로 그런 감각 아닐까. 


마키오는 아사의 ‘곁’을 지키면서 아사가 슬픔과 고독의 순간을 거쳐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한다. 그것은 천애고아가 될 뻔한 아사를 받아들인 어른의 ‘책임’이다. 고독의 영역 안으로 다가갈 수 없다 하여도 서로의 곁이 되어주는 일은 가능하다. 이윽고 아사는 고등학교 밴드부에 들어가 자신의 ‘사막’으로부터 타인의 ‘사막’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슬픔의 경험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건네는 선물 같은 마음을 심어놓기도 할 것이다.




글. 최성용

편집. 권오경






사단법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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