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홉수’를 세게 겪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사회 내 연령감각으로는 20대나 30대나 크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30대에 접어들며 생각하던 모종의 막막함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은 아마도 생의 다음 라운드로 의미화되는 연령코호트를 앞둔 내가, 참조 가능한 준거점으로서 ‘30대 이상 여성’의 삶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20대를 보내는 내내, 내가 윗 세대 여성의 삶을 참조할 수 있었던 매체는 오직 미디어였다. 그리고 미디어에서의 여성 재현에 관한 많은 연구가 보여주고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듯이, 오랜 기간 동안 매체에서의 여성은 과소 재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30대 여성이란, 마치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처럼 소박하고 고요하게 저물어 가거나(경력단절된 후 어머니화되는 여성) 혹은 ‘늦게까지’ 당당하게 피는(골드미스, 커리어 우먼) 양자의 선택지 이상으로 독해될 수 없었다. 30대 이상의 여성을 구성하는 말들과 이미지 속에 나를 차곡차곡 배열시키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곧 나의 그 범주 자체를 지워내는 것만이 차선이었다. 그 결과 ‘저 나이의 여성’인 나는 뭘 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나 상상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서른을 앞둔 나에게 정말 두려웠던 것은 존재하지 않던 참조점 사이로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게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 내 몸뚱이와 정서라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리하여 유야무야 30대가 되었고, 지금은 여러 네트워크에서 글을 쓰거나 활동하는 여성들을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참조점 없던 시기를 스스로 살아가고 있다. 최소한 지난 10년간,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주관적으로 체감하는 변화 중 하나는, 이리저리 뒤져 본다면 이 나이대의 내가 추구하거나 시도해 수 있는 다양한 삶에 대한 모델들이 과거보다는 좀더 수월하게 찾아진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주거 및 생활공동체이든, 일상적인 모임이든,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재현물이든,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시도하는 여성과 비-남성, 비-청년들의 이야기가 ‘가능한 하나의 시나리오’로서는 주어지는 단계가 되었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다른 삶들이 저기에 있다는 것은 분명히 확인했는데, 나의 구체적인 일상과 노동, 연구의 공간에서는 어떤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되었던 배경은, 돌이켜 보면 내가 비정규직/여성/연구자로 학교나 학문 공간에서 동료 세대집단 외의 여성 연구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던 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문득 느꼈기 때문이다. 이 전공을 공부하며, 정교원을 제외하고 학교생활을 같이 하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배 여성 연구자’들과 관계를 맺은 적이 손에 꼽는다. 정확히 그들은 거의 증발한 것처럼 보였다. 내 곁에 남아 있었던 선배 연구자들 중 남성들은 (지금도 정말) 많지만, 여성의 사례는 찾기 힘들었다. 간혹 남아서 연구활동을 하는 여성들은 이미 졸업하여 현역으로 활동하는, 연령상으로 따지면 십수 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연구자들이었다.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 역시 상대적으로 학교보다는 운동의 영역이나 정부기관 등으로, 일상적으로 자주 만나서 친밀함을 구성하기는 힘든 거리에 있었다.
내 주변에 직접적으로 관계를 구성하며 참조할 수 있는 여성-선배의 부재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런 ‘참조점 없음’에는 분명히 개인적이거나 특수한 맥락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입학했던 그 시기의 그 학교에 유독 여성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실은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는 재생산 자체에 난점을 겪는 문화연구를 포함한 인문사회계열 전반의 문제일 수도 있다(이공계의 경우 아마 더할 것으로 생각된다). 석사과정을 시작할 때, 학교에는 같이 공부를 시작하거나 몇 학기 정도 먼저 공부를 시작한 여성 과정생들이 분명히 많이 있었다. 박사로 가면 그 중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 남았다. 일부 여성 연구자들은 차라리 해외로 유학하는 방법을 택했고, 박사 졸업 이후에는 또 각자의 진로에 따라 갈라졌다. 분명히 아주 오래 전에, 그렇게 가깝지만은 않은 위치에 ‘언니들’이 있긴 했다. 언니들은 교수님이 시덥잖은 농을 던져도 웃어 넘어가며 거의 슈퍼맨처럼 일을 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사라졌다.
왜 그런가? 나는 ‘여성 선배 없음’의 감각에 대해서, 학문 장 재생산의 문제라는 렌즈에 젠더의 렌즈를 더해 껴서 이 공백을 읽어보고 추적해 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던 두 명의 연구자들이 여성/페미니스트 대학원생으로서 자기 학제와 연구실 공간에서 복합적인 배제와 억압을 겪게 되고, 졸업 후 그 전공의 학계를 떠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경험들*은 학문 공간에서의 젠더 문제가 지금 여기에 여전히 실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모 전공은 원고 공모를 받으면 페미니즘 연구들이 반 이상을 차지할 지경’이라고 말해지는 지금조차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 연구문화는 각각의 학문 공간의 특성에 따라 일상의 영역에서 ‘강건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교수 대 학생간의 위계적 질서를 차치하고라도, 좀더 친밀함을 발휘할 수 있는 선후배나 동료들 사이에서조차 ‘호모소셜한 관계’가 여전히 평범성을 띠는 위상은 이런 문제들을 잘 드러낸다.
나 역시 여성 선배 연구자와의 관계는 매우 의식적으로 찾아야 했던 반면, 호모소셜에 기반한 남성 선배 연구자와의 관계는 어렵지 않게 맞닥뜨릴 수 있었다. 과거 가까이에 이런 형식의 관계가 다수 존재하던 시기에는 부지불식간 소외되는 감각들로 오랜 기간 힘듦을 겪어야 했다. 함께 그 상황을 마주했던 남성 동료는 “에이, 형”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관계에 끼어들고 녹아들어갔던 반면, 나는 결코 그러할 수 없었다. 여성 연구자는 조심스럽고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며, ‘남성이자 선배인 내가’ 언제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애초에 친밀함을 구성해서는 안 된다. 이런 윤리적인 척 하는 명분으로 학문 공동체의 네트워크에서 여성을 은연중에 배제하는 것은 남성 선배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아주 전형적인 문화였다.
또 다른 경험을 예를 들면, 나는 다른 여러 주제들과 함께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 연구자라는 이유로, 관련 연구를 직접 수행하지도 않았는데 남성 교수 및 동료들의 일상의 대화에서 '젠더 연구자' '페미니스트 연구자'로 부단히 호출되어, 수업과 토론에서 '고견을 들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관심사의 분리와 명명은 남성 연구자 자신이 페미니즘 문제의식에 몰이해적이지 않다는 면죄부로 이용되는 동시에 잘 모르고 자신의 관심사도 영원히 아닐 문제에 대한 일종의 떠맡김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작동했다. 이 또한 '존중하는 척 하며 분리하기'였다. 이 문제의식에 대한 관심 자체가 그들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방식이었으며 나에게 '존재할 영역을 할당하는' 구획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연구자로서 살아가며 보고 마주하는 그런 젠더화된 관계들은 보편명사 ‘후배’가 아닌 특수명사 ‘여성-후배’로 매순간 나를 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다. (더불어 느꼈던 점은 친밀함의 관계에서 배제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평가나 대상화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내용물이 더 이상 과거처럼 노골적으로 ‘여성 비하’를 경유하는 방식이 아닐 뿐 이런 관계는 드물지 않게 보인다. 나는 그런 관계들이 아직도 산재하는 것을 볼 때마다, 곧 그런 관계들이 앞으로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맺어야 하는 관계들 중 ‘가능한 하나의 선택지’로 제시될 때마다 사실은 턱 막혀 들어가는 감각을 느끼고는 한다.
다른 종류의 관계는 없을까. 다른 형식의 친밀함은 없을까. 특수화되지 않고 내가 나로서 공부하고 존재할 수 있는 평범한 공간은 어디인가. 그런 경험들은 늘 대안적인 관계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만나고 있는 다양한 동료들과도 천천히 그러한 관계를 구축하고 실험하고 있지만, 어디선가 다른 시간대에 연구와 노동 공간에서 같은 억압이나 배제적 경험의 궤적을 가졌을 법한 그 여성들, 그 미시적인 상황들을 비슷하게 겪으며 어떤 땐 웃어 넘기고 어떤 때는 따지고 어떤 때는 탈출하면서 살아남았던 여성들은 지금 어디로 갔고 어디에 있을까. 어떤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근래 여성 연구자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되면서, 동료들과 나의 주변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런 경험들을 차곡차곡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여성-선배’로 자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험을 더 많이 쌓았다는 입장에 서서 후배를 돌보는 위치를 갖는다기보다는, 공부하는 여성으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런 방식으로도 가능하다는 ‘참조점’을 만드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여성으로서의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 방식이든, 여성 내부의 차이를 감각하게 하는 방식이든 말이다.
‘여성 연구자’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여성 연구자’라는 명사에 박제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범주는 호출과 재맥락화를 위해 다소간은 전략적으로 선택되어야 하는 범주이지만, 나중에는 굳이 어떠한 범주로 라벨링하지 않더라도, 굳이 그렇게 정의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여성 연구자들의 삶을 언제든지 숨쉬듯 참조할 수 있을 정도로 일상의 관계망들이 넓어졌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들이 여러 방식으로 고려가능한 참조점이 되면서도 그 사이에서 또한 우리는 완전히 동질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게 되는, 그리하여 같음과 차이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경험의 기반이 생겼으면 좋겠다.
* 정희성·조규혜 (2020). 지리학계에 보내는 편지: 지리학과를 떠난 두 여성 연구자의 이야기. <공간과 사회>, 72,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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