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기] IRB와 청년의 불쉿 일자리



IRB(기관 생명윤리위원회)의 연구윤리 심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단했다. 채워 넣어야 할 서류의 가지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20여 개가 넘는 항목으로 조각조각 나 있는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심층인터뷰를 계획 중인데, 연구참여자 모집 방법이나 질문지의 내용은 물론, 연구의 효과와 안정성 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 및 방법에 관해서 작성해야 하는 등 20개가 넘는 항목을 고민해야만 해서 골이 아팠다. 한참 번아웃이 와 있던 내게 이 업무는 너무 어려운 작업으로 여겨졌고, 연구계획서를 해치우는데 장장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참고문헌까지 포함해 연구계획서의 총 분량은 17장이 나왔는데, 나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간 1,300만원을 연구자에게 지원하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 사업에 지원할 때도 요구받았던 연구계획서의 총 분량이 10장이 안 되었던 걸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질적 연구자로서의 고충도 있었다. 예상 연구참여자의 숫자를 정확하게 보고하라는데, 내가 배운 질적 연구의 패러다임에서 연구를 진행하기 이전에 그것을 완전히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좋은 연구자세라고 볼 수도 없었다.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가 가진 문제의식과 연구문제가 새롭게 다듬어질 수도 있고, 추가로 인터뷰해야 할 연구참여자가 언제든지 더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IRB 서류에서는 무려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적정한 연구참여자의 숫자를 확정하라고 요구했으며, 이후 연구윤리와 관련한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때 실제 연구에서 이 숫자가 달라졌을 경우 사전에 IRB 변경심의 서류를 제출해 승인받거나 ‘사유서’를 작성해야만 한다고 한다.

자료분석 방법은 또 어떠한가. 연구계획서 양식에는 아예 회색 글씨로 질적연구자에게 한정되는 경고사항이 붙어 있었다. “질적연구의 경우, 피상적으로만 기술하는 경우가 있음.” 정말 ‘죄송하게도’ 질적연구자로서 내가 배워온 질적연구에서 자료분석 방법을 미리 확정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질적연구 패러다임에서는 연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출현하는 분석틀(emerging analytic framework)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A4 용지 3~4장에 걸쳐 상세하게 자료분석을 이렇게 할 것이라는 계획과 방법적 성찰을 적어서 제출했다. 내가 본 그 어떤 국내/국외 학술지에서도 이런 식으로 자세한 자료분석 방법의 서술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계획서 양식에서부터 질적연구를 저격해 놓은 것이 어쩐지 괘씸해서라도,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게 쓰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또, 이런 계기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겠지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먹으려 애썼다.

인간대상 연구의 정규심의 기간은 최소 2주 이상이 걸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출한 바로 다음날 IRB로부터 문자 안내가 왔다. 심의결과가 통보되었으니 홈페이지에서 결과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속도에 놀라며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기대를 품었으나, 심의결과는 나를 약간은 폭발하게 했다. 일단 정말 친절하게 어떤 서류의 어떤 항목이 잘못 기술되었는지를 조목조목 집어놓은 부분은 좋았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인 자료수집 방법과 관련해서 “수집된 자료분석 방법에 대해서만 기술 바랍니다.”, “피상적인 내용이 아닌,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작성 바랍니다.” 라는 코멘트가 날아왔다. 우리 기관 IRB의 눈에 질적연구는 그냥 그것 그대로 다 ‘피상적’으로만 보이는가? 화가 났다. 연구방법과 관련해서도 황당한 코멘트가 있었다. 나는 당연히 인터뷰를 탄력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반구조화된(semi-structured) 질문지를 구상하였고, 그에 따라 굉장히 의례적으로 연구방법 기술에 사용하는 그 문장을 적었을 뿐이다. “즉석에서 질문의 순서를 바꾸거나, 삭제하거나, 새로 추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말이다. 아니, 세상에나. 지도교수도, 심사위원도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며 연구자의 자율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화난 마음은 다음 날 조금 가라앉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서였기도 했지만, 나에게 날아온 심의 결과통보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였다. 단 하루만에, 이렇게 꼼꼼하게 연구계획서를 검토해서, 아주 건조한 문체로 수정 요구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툭 까놓고 말하자면, 질적 연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일까? 확인해 본 바는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반대로 양적 연구에 대한 전문가이기는 할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IRB에 심의신청 서류가 얼마나 많이 몰려올지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신속하고 기계적인 결과통보는 아마도 AI가, 아니 사실은 AI처럼 쓰이는 젊은 노동자가 했을 것 같다. 머리에 눈앞에 쌓인 몇 백 개의 IRB 서류를 쳐 내면서 영혼 없이 결과보고서를 서버에 탑재하는 젊은 노동자의 모습이 그려지자, 화는 약간의 애잔함으로 변했다. 그 애잔한 마음을 한 켠에 두고, 솟아나는 화를 억누르며 항목별로 그 노동자의 조언을 받아들이며 연구계획서 및 다른 서류들을 수정해서 재신청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 <불쉿 잡>이 생각났다. 그는 일자리를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괜찮은 일자리. 다른 하나는 “꼭 수행되어야 하고 명백히 사회에 유익한 작업”이지만 “보수와 처우가 나쁜” “그저 힘든 직업”(50쪽)인 쉿 잡(shit job), 그리고 “너무나 철저하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하고 해로워서, 그 직업의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33쪽)인 불쉿 잡(bullshit job)이다. 불쉿 잡에는 제복 입은 하인(flunkies), 깡패(goons), 임시 땜질꾼(duct tapers),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box-tickers), 작업반장(taskmasters) 등의 유형이 있는데, 특히 관료제의 자가증식이나 실업난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일자리의 방식으로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의 수가 특히 증가하고 있다. IRB 서류를 처리하는 가장 말단의 젊은 노동자는 그 작업이 중요하다는 자기 암시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저 제출된 서류가 체크리스트에 적혀 있는 기준과 일치하는지 아닌지만을 확인하는 반복적인 업무를 하며 스스로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레이버는 불쉿 잡은 쉿 잡에 비해 대개 보수와 작업 여건 면에서는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한국 대학 비정규직 교직원 내지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인건비 수준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그럴까? 어쩌면 그것은 불쉿 잡이면서 동시에 쉿 잡인 일자리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업무상 소통하는 대학 행정직원들은 자꾸만 퇴사를 해서 사라지곤 한다.)

한데, 어디 불쉿 잡이자 쉿 잡에 있는 자가 그 젊은 노동자뿐이겠어요? 젊은 연구자인 나도 불쉿 잡러이자 쉿 잡러였다. 나에게 돈 한 푼 주지 않을 이를 위해, 또 사실 어쩌면 연구윤리와 관련한 관료제적 책임회피 절차의 기능을 하기도 하는 기관 심의를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하느라, 시간도 쓰고, 마음도 쓰고, 자존감까지 낮아졌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쉽사리 발견할 수 없어서, 이 작업은 내게 더욱 힘들었다. 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box-tickers)이었다. 게다가 주인의 가오를 살려주기 위해 일해야 하는 제복 입은 하인(flunkies)이기도 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추기 위해 윗분들이 수입하여 연구자 공동체에서의 충분한 토론 없이 일단 제도로 퍼지고 있는 IRB를 완성 시켜주기 위한 가장 말단의 작업을 하는 말단의 지식노동자였다. (이것은 내가 실은 연구자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젊은 불쉿 잡러들은 주로 개인적인 해결책을 찾아 헤맨다. 앞서 언급한 노동자들은 그나마 불쉿 잡이 아닌 일자리를 찾아서 퇴직과 이직 준비를 반복한다. 연구자들, 심지어 비판적인 연구를 한다는 젊은 연구자들이라고 크게 다를까? IRB 하기가 짜증나니까 심의면제가 되는 연구 주제를 찾겠다는 ‘슬픈’ 우스갯소리가 이 동네 사람들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걸로 무언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한 번도 IRB 심의 기준을 함께 만든 적 없고, 그 심의 절차에 동의한 적도 없지만, 이번 경험을 시작으로 아마도 나는 평생 사람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 열받는 절차를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일방적IRB에반대하는연구자네트워크’, ‘일반넷’을 당장이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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