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일에 대하여



   정보영 연구원의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만?’이라는 칼럼을 보고 느낀 소회를 이 글에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좋은 글에 불필요하고 개인적인 사연을 덧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기에 조금 망설여지긴 하지만, 부디 이 졸고가 그의 글에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 칼럼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나, 결은 좀 다른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랑’의 사회적 의미가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힐링이나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너무 자주 쓰임으로써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강박을 심어준 것처럼, 사랑이라는 단어도 사람들의 심리를 압박하는, 당위성을 가진 무엇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로 적용되는 범위는 너무 좁은 것 같다.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퀴어로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그것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만약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내가 하는 일, 내가 믿는 신, 혹은 나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멸종위기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인에게는 ‘아주 좋아한다’ 정도의 의미로 축소된다. 또는 그 사랑을 다소 저급하고 유난하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나와 그 대상이 직접적으로 교감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짧게 정리하자면 사랑이 남용되고 있는 것에 반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전에서도 역시 ‘사람이나 존재’라고 말하며 그 대상을 나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용과 과잉공급은 그 단어의 진짜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을 때, 건물이나 지구를 부수고 싶다든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싶다든가, 사랑스러운 점이 오조오억 개라든가 하는 다양한 표현을 떠올리게 됐다. 더 이상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곧 그 단어의 가치가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그런’ 사랑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연애는 유행처럼 번졌다. 연애를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것 같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 비슷한 것이 생겼다. 몇 살까지 연애를 한 번도 못한 사람에게는 어딘가 하자가 있다거나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는 등, 연애하지 못하는 것을 한 인간의 ‘결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로 직접 교감하는 것만이 사랑인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거나,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라고 말하면서 왜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 혹은 나를 알지 못하는 멀리 있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가? 무언가가 유행의 물결을 타고 한 번 두드러지기 시작하면 모든 시선은 그쪽으로 쏠린다. 그 사이에서 외면당하는 것들, 그것들은 단지 외면당할 뿐이지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사랑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외로울 때 하는 것이 사랑일까? 만약에 그런 단순한 정의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순서는 물론이고 방향도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혹은 줄 준비가 되지 않은) 무언가/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으며, 그 대상에 내가 얼마만큼의 정성을 쏟아 붓는지와는 상관없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만큼은, 사랑의 가치가 오로지 쌍방향의 화학작용 속에만 잉태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소위 말하는 덕질도, 외사랑이라고 하는 것도, 그러니까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그것들 역시 ‘나름의’ 에너지가 되고 영감이 되지 않는가. 사실 우리를 더 외로움에 몸부림치게 하는 것은 섣부른 정의(定意)가 아닌지. ‘당사자의 사랑’을 속절없이 잘라내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이 주는 위로를 사랑하고, 콘서트 현장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를 사랑하고, 내 성취감을 사랑하며, 내가 공부에 몰두하고자 할 때 발휘되는 집중력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하는 것을 멈춘 적이 없다. 나 역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해 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무성애자가 아니냐, 사랑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다. 그러나,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조차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만 표현 방식이, 혹은 느끼는 계기가, 사랑하는 존재가 평범하게, 쉽게 떠올리는 것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사랑은 방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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