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드라마를 연달아 봤다. <지금 우리 학교는>과 <해피니스>다. 스트리밍 1위 자리를 점하며 인기를 끌었던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요 스토리는 한 과학교사가 만들어낸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좀비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는 이야기다. 이 과학교사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아들에게 반격할 힘을 주기 위해 바이러스를 개발했다고 말한다. 한편 <해피니스>는 현실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면서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포스트 팬데믹의 세계와 주거 문제를 겹쳐놓는다. 코로나19 이후 폐렴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이 광인병을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지고, 이 병이 퍼져나가면서 아파트의 한 동이 통째로 격리되면서 소위 ‘자가 세대’와 ‘임대 세대’ 사이에서 표면화되는 갈등이 드라마의 주요한 축을 이룬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극의 중심이 ‘좀비’, <해피니스>의 중심은 ‘광인병 감염자’로, 드라마 안에서 지칭하는 이름은 다르지만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두 존재는 ‘죽었으나 죽지 않은’ 존재로서 유사성을 갖는다. 감염된 존재들에게 물리거나 긁히는 것으로 전염된다는 설정도 유사하다. 이외에도 한 가지 더 공통점을 추가하고 싶은데, 그건 바로 “썅년”이라는 대사의 등장이다.
먼저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 좀비를 피해 도망치고 있던 체육교사는 한 교실에 학생들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안으로 몸을 피한다. 좀비가 들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 체육교사는 아이들을 시켜 문을 막는데, 한 여학생이 그의 팔에서 좀비로부터 물린 자국을 발견한다. 두려움에 떨며 밖으로 나가달라는 그 학생에게 체육교사는 “지금 저기 밖으로 나가라고?” 반문하면서 “썅년아!”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는 곧 좀비로 변한다. 다음으로 <해피니스>의 한 장면. 광인병 감염자에게 쫓기던 사람들은 아파트 안으로 몸을 숨기려 하지만, 아파트 동 대표는 이들이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며 문을 잡고 열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문이 열리고, 쫓기던 한 남자는 들어서자마자 “이 썅년이!”라는 소리와 함께 문을 잡고 있던 동 대표를 밀어버린다.
두 드라마에서 두 중년 남성이 내뱉는 ‘썅년’이라는 말은 불쾌하다. 왜일까? 단순히 ‘썅년’이라는 말이 욕이기 때문일까? ‘썅년’이라는 욕이 주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왜 ‘개새끼’나 ‘썅놈’, ‘씨발놈’ 같은 단어들을 들었을 때와 또 다른 것일까? ‘썅년’은 단순히 그 욕의 청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등장하게 되는 대사일까? 이 장면들 속에서 청자가 남성으로 바뀐다면, 그 대사는 ‘썅년’이 아니라 ‘썅놈’이라는 욕으로 바뀔 수 있을까?
먼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극한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썅년’이라는 ‘여성화된 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썅년’이라는 욕은 불쾌하다. 극한의 상황에 대한 표현이 ‘썅년’이라는 욕으로 대체될 때, 드라마가 그리고자 했던 이 상황은 잠재적인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하는 단순화된 언어로 상상되고 만다. 드라마가 제시하는 상황은 ‘타자’와 ‘나’에 대한 강력한 구분을 바탕으로 하고, 이때 ‘썅년’이라는 언어는 타자를 나의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혐오적 존재로 상상하게 하며 이 타자는 결국 ‘-년’의 형태를 갖게 된다.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두려움, 생명을 부지하고 싶다는 절박함 등 이 상황이 주는 감정의 결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을 테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는 언어가 욕이라는 점이, 그리고 그 욕이 ‘썅년’이라는 것이 상황의 풍부함을 삭제한다.
다음으로 ‘썅년’이 단순히 청자의 성별을 표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에 ‘썅년’이라는 욕은 불쾌하다. 오히려 이 장면들은 욕의 청자를 여성으로 설정함으로서 여성화된 욕이 갖는 문제를 묘하게 비켜 간다. 따라서 해당 장면들에서 욕의 청자가 단순히 성별을 반전하여 설정될 수 있었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장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여성화된 욕’ 혹은 ‘욕의 여성화’가 갖는 모멸적인 ‘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남성에게 ‘-년’이라는 여성화된 욕을 사용함으로써 소위 ‘정상적 남성성’이 갖는 헤게모니를 박탈하고 청자를 ‘열등한’ 여성의 자리에 위치하게 한다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다. 호모소셜(homosocial)한 세계는 어쩌면 ‘-년’이라는 욕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여성화된 욕은 더 큰 모욕을 의미한다. 이 ‘더 큰 모욕’을 필요로 했다는 점에서 앞선 장면들의 불쾌감이 설명된다.
나도 욕을 종종 쓴다. 욕이 주는 때때로 정확한 쾌감과 욕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느끼는 묘한 친밀감을 나도 자주 즐긴다. 그러나 내가 느낀 이 쾌감과 친밀감이 어쩌면 호모소셜한 세계의 작동원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썅년’이 단순히 ‘상스러운 여자’만을 뜻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올바르고 즐겁게 욕을 할 수 있을까. 남은 질문은 이상하게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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