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네이버가 운영중인 한정판 신발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은 국내 최대규모의 스니커즈 커뮤니티 ‘나이키 매니아’를 80억에 인수했다. ‘나이키매니아’의 회원들은 분노했다. 회원들이 일군 커뮤니티를 어떻게 기업에 팔 수 있냐는 성토가 이어졌다. 크림이 카페를 인수한 뒤, 친목활동과 신발의 정보 공유를 위한 게시판에서 크림을 제외한 신발거래 플랫폼들이 금지어로 설정됐다는 의심이 불거졌다. ‘우리가 만든 자생적 커뮤니티’가 굴지의 대기업에게 매각되어 활동의 자율성이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는 해당 카페가 단지 ‘신발 직거래 플랫폼’이 아닌, 그들 나름의 스니커문화를 실천하는 공간임 점을 전제했다. 기업과 커뮤니티, 돈과 문화라는 익숙한 이항대립 하에서 이 갈등은 서사되었다. 갈등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진정성의 위기였다. 위협의 대상이 되는 건 ‘애착의 대상으로서 신발’이라는 스니커헤드(Sneaker Head)들의 불문율이었다.
스니커헤드란 신발을 수집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1980년대 중반 미국의 농구선수 마이클조던과 그를 위한 시그니쳐 농구화(AirJordan)의 선풍적인 인기와 힙합문화의 부상 속에서 등장한 신발수집문화의 주인공이다. 이때 신발수집문화를 적극적으로 매개한 것은1980년대 이후 스니커즈 시장을 선도했던 나이키가 행했던 하위문화 속 ‘하입’(Hype)을 유지하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소비사회학 연구자 이안 데니Iain Denny는 2020년 발표된 그의 논문(“The sneaker – marketplace icon”)에서 나이키가 1980년대 전례없는 흥행을 거둔 에어포스1의 성공과 해당 신발의 품귀현상을 목격하며, 하위문화 내에서 특정 신발에 부여되는 상징가치 - 이를 스니커씬에서는 하입(hype)이라 한다-를 유지하는 마케팅의 효과를 체감했다고 이야기한다. 이후 나이키의 스니커즈 마케팅이란 희소성과 셀러브리티의 동원의 병행이라는 일반적인 한정판 전략과는 달리, 미국과 일본 등의 지역 편집숍이나 소매 부티크와 협업을 통한 소량출시로 ‘소매점 앞에서 밤을 새워 캠핑하는 문화’를 양산했다고 이안 데니는 주장한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나이키 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스니커즈 브랜드들이 이 같은 마케팅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리셀마켓은 이 같은 ‘신발 품귀현상’ 속에서 등장한 신발의 2차 시장이다. '한정판 스니커즈'의 품귀현상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한 욕망은 웃돈을 붙여 스니커즈를 사도록 이끌고, 브랜드는 생산을 조절하거나 출시정보를 유출하며 2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육성한다. 매일마다 초국적으로 거래가 체결되고 또 공시되는 이 공간은 브랜드가 스니커즈의 상징가치를 확인하고 조율할 수 있는 토대가된다. 초국적 리셀 시장의 형성과 고도화를 거치며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스니커즈 리셀이 2030의 일탈적 투기나 ‘기이한 재태크’로서 조명된 바 있다. 한정판 신발의 경우 발매가의 몇 배를 상회하는 리셀가로 거래되기에, 구매에 성공한다면 ‘한탕을 칠 수 있는’ 청년세대의 투기나 재테크 -리셀테크- 라는 게다. 이때 리셀이란 비트코인보다 경쟁력 있는 투기대상으로 소개된다. 스니커즈는 적은 자본 –신발 값- 으로, 비트코인 보다 높은 이율 –‘비트코인이이 따상(더블상한가)이라면 리셀은 떡상(더블상한가 이상의 상승)이다’- 을 취할 수 있는 투자상품으로 언급된다. 실제로 스탁엑스나 크림 등의 국내외의 리셀 플랫폼에서는 스니커즈 리셀가의 오르내림을 차트화해 그래프로 보여주고, 스니커 커뮤니티에는 재발매, 셀러브리티의 착용 등의 신발의 리셀가의 고저를 결정하는 정보들이 빠르게 전파된다. 그리하여 스니커헤드와는 다른 고점과 저점, 투기와 투자 문화의 주체로 리셀러가 등장한다.
리셀러는 스니커즈 애호가로서 ‘스니커헤드’의 위기이며, 스니커시장의 팽창 앞에서 스니커즈 애호가로서 자신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울이다. 이는 다수의 서브컬쳐 씬에서 그렇듯 특정한 하위문화가 주류문화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거나 구성되곤하는 대립구조다. 스니커헤드는 신발을 ‘돈’으로만 보는 리셀러와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 일종의 반경제적 신실함을 보인다. 스니커헤드의 문화적 실천 중 하나인 ‘실착러 인증’은 한정판 신발을 실제 착용하고 생활하는 사진을 올리는 문화인데, 한정판 신발을 되팔기 위해 그저 신발을 모셔두는 리셀러와는 다른 자신의 스니커헤드로서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 스니커헤드는 리셀러가 되는 걸 견딜 수 없다. 스니커헤드는 신발을 그저 ‘사는’사람이 아니다. 이들의 신발 애호 ‘취향’이란 주체성기획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스니커헤드와 스니커씬이란 90년대 태동했다. 강북의 복고와 강남의 힙합이라는, 90년대를 문화지리로 구별하는 고루한 구도 속에서 스니커문화는 후자에 속했다, 넓은 통의 청바지에 에어포스원, 팀버랜드 그리고 에어조던. 학술 장에서는 이는 90년대의 ‘압구정 외계인’이라는 홍대 라이브클럽 문화의 연극적 진정성과는 다른 힐난의 대상이었다. 코제브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들은 인간의 욕망 보다는 자연적 욕구를 추구하는 ‘동물화된 인간’의 한 조류로 논해졌지만, 실상 스니커즈문화에는 명품로고가 덕지덕지 붙은 90년대식의 하입비스트(Hypebeast)를 힐난하는 ‘스니커즈애호가(Sneakerheads)’의 조류가, 스노비즘의 또 다른 조류가 있었다. 스니커즈란 힙합이라는 ‘패션/음악/스타일’의 헐거운 계열체가 한국사회에서 계층적으로 굴절되어(‘강남’) 안착할 때,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하여, 옷과 신발은, 걸음걸이와 말투와 연결되어 있었고, 이 취향이란 동물의 욕구가 아닌 스놉의 욕망의 이름이었다. 모든 것의 스노비즘 시절의 또 다른 스노비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90년대적 스노비즘의 정치성이란 여전히 낙관과 비관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문제는 ‘모든 것의 금융화’인 오늘날에 이르러서 스니커헤드와 리셀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매일 마다 갱신되는 리셀가 그래프와 차트는 스니커즈 담론과 욕망을 리셀가 중심으로 이끌고, 스니커헤드는 한정판 마케팅 속에서 당첨되어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확률싸움 속에서 틈틈히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브랜드의 ‘발매알림’을 확인하고 적게는 몇건 많게는 몇 십 건을 응모한 뒤에도, 간헐적으로 있을 오프라인 응모에 대비해 커뮤니티를 떠나지 않는다. 응모는 ‘공짜’이고, 손놓고 가만히 있는 행위는 손실이 된다는 정서가 삶의 모든 에너지와 정동을 식민화하는 이 마케팅을 지탱한다. 탐색, 응모, 탈락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 신발과 투기대상, 스니커헤드와 리셀러의 구분은 불가능해지는데 당첨이 될 경우엔 보다 혼란스럽다. 매분 매초 갱신되는 직거래체결가의 오르내림 앞에서도 온전한 스니커헤드가 되기위해서 당신은 초연해져야 한다.
하여 오늘날 신발 애호가들은 리셀러와 스니커 헤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이들의 진정성 기획은 실패하기 일쑤다. 물론, 언제든 리셀을 통해 신발을 구하는 데에 부담이 없는 이들 또한 있다. 내 삶의 정동이나 에너지를 응모에 쏟지 않아도 스니커헤드로 남을 수 있는 계급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셀러와 스니커헤드를 진동한다. ‘스니커문화’를 모르는 리셀러를 질타하고 그 대척으로 스스로를 구성하다가도, 다시 재테크의 주체가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과는 달리 이는 세대적인 현상 보다는, 동시대 한국사회 속 주체들의 집단적 진자운동에 가깝다. 동물화된 인간을 힐난하지만 결국 스노비즘을 추구하는 데 실패하는 다수의 사람들 말이다. 스노비즘에서 조차 굴러떨어져 동물이 되어야만하는 사람들과 이를 관망하는 진짜 스놉들, ‘스니커헤드의 위기’란 한국사회에 대한 지독한 제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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