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 유튜브 비평 9 : 인생을 유튜브로 배웠어요 - 유튜브의 현실효과



요새 인생 사는 법을 유튜브로 배우고 있다. 현실 속 직업과 삶에 대한 유튜브 채널들 이야기다. 이런 채널들은 포맷이나 특성이 다들 제각각이지만, ‘장삼이사'의 삶들을 초단거리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유사하다. 채널들을 크게 인터뷰 채널과 자영업 관련 채널, 두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겠다. 직업 인터뷰 채널은 각종 직업 혹은 특정 집단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를 인터뷰로 풀어내는 포맷을 택한다. 80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직업의 모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유사한 채널로는 <까레라이스 TV>, <잼뱅 TV>, 그리고 <휴먼스토리> 등이 있다. 텔레비전에선 만나기 힘든 여러 인간 군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인데, 택시기사, ‘노총각’, 전직 걸그룹 멤버, 심지어 전직 ‘성매매업자’ 등이 등장해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직업 속사정'을 풀어낸다.


자영업 관련 유튜브들은 자영업 소개나 컨설팅(특히 요식업)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다. 56만 구독자를 보유한 <장사의 신>이 대표적인데, 이외에도 <30대 자영업자 이야기>, <장사의 여신>(장사의 신에서 파생된 채널이다) 등이 있다. <장사의 신>의 주인공은 어려운 조건을 딛고 치킨 프랜차이즈(‘후라이드 참 잘하는 집’으로 알려졌다)를 창업해 200억대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진 사업가 은현장씨다. 이 채널은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을 찾아다니며 컨설팅을 해주고, 방송을 통해 홍보도 해준다. 스스로 표방하는 것처럼, 이 채널의 지향은 유튜브판 혹은 매운맛 <골목식당>이다. 출연자들의 어려운 사정과 정서적 상태는 고시원, 단칸방, 눈물 등으로 표상되고, 은현장씨는 욕설과 반말을 섞어가며 다그치듯 컨설팅을 이어나간다.


사실 이런 부류의 콘텐츠는 텔레비전의 전유물이었다. <생활의 달인>, <생생정보통>, <VJ 특공대>와 같은, 이른바 ‘생활정보형 프로그램’이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과 직업적 실천을 담아내며 인기를 얻어왔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 포맷, 백종원이라는 캐릭터와 만나며 만들어진 SBS의 <골목식당>이 ‘자영업 컨설팅 예능’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직업 유튜브들은 이런 텔레비전 콘텐츠에 ‘생생함'을 한 꼬집 첨가한다. 유튜브 콘텐츠들의 편집과 영상 미학이 갖는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은 이미 잘 알려진 특징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비속어 사용과 브랜드 노출이 우선 그렇다. 나아가 컷 전환에 사용되는 형형색색의 화면조정 이미지나 굴림체, 명조체 등 텔레비전 콘텐츠에서는 가급적 사용 않는 서체들로 화면 곳곳에 배치되는 자막들도 이런 ‘생생함’을 배가한다.


이것이 텔레비전 콘텐츠에 비해 덜 정형화되어 있고 덜 꾸며진, 즉 덜 편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튜브 콘텐츠의 미학적 특성이다. 이런 미학적 특성은 직업과 삶을 다루는 콘텐츠에서는 ‘진정성’이 된다. 인터뷰 콘텐츠들은 텔레비전에서는 다루기 힘든 것처럼 보이는 ‘뒷 이야기'들을 대담 형식으로 풀어낸다. 직업 종사자의 허심탄회한 진술은 곧 사실이 된다. 자영업 콘텐츠들에서는 은현장씨의 분석과 조언, 출연자들의 눈물이 사실성을 더한다.


그러나 생생한 가르침들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직업 인터뷰 채널들은 점차 ‘잘 팔리는’ 연애·결혼 관련 콘텐츠로 수렴해가고 있는듯 보이는데, 그 양상이 사뭇 의미심장하다. ‘결혼 시장’에서 30대 여성이 얼마나 ‘몰염치한지’를 폭로하며 ‘20대 여성과 연애하세요!’라고 외치는 모자이크된 얼굴을 한 남성의 ‘경험’은 자연스레 이를 거드는 진행자와의 호흡 속에서 결혼과 여성에 대한 편협한 진실을 생산해내고야 만다. ‘객관적인 분석’을 해주겠노라 출연한 결혼정보회사의 여성 대표는 ‘언니’의 위치를 잡고 서서 ‘여자들 정신 차려야한다’고 쏘아 붙인다.


자영업 유튜브들은 한국 자영업의 문제를 신화적으로 해결해낸다.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거나 노하우가 없어 쩔쩔매는 자영업자들은 컨설턴트로 등장한 유튜버의 일갈에 눈물을 보이며 ‘개과천선’한다. 일부러 많은 금액을 결제해 도움을 주려는 유튜버와, 컨설팅 받은 식당들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팔아주려는’ 유튜버 팬덤의 선의는 상징적이다. 이 서사 속에서 실패를 맛보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마음만 고쳐먹으면’, 몇 가지 ‘꿀팁’만 전수 받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게 만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은 이러한 신화적 서사 속에 자리가 없다.


텔레비전이 가장 지배적인 미디어였던 80년대 초반, 미디어 문화연구는 텔레비전이 발휘하는 현실 효과에 주목했다. 텔레비전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담론이 사회적 진실로서 여겨지게 되는 현상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텔레비전은 시청각적인 미디어로서, 사물을 ‘실제 그대로 보여주는’ 능력을 가진,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SA)의 정점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우리가 텔레비전이 말하는 현실을 사회적 현실로서 여기며 지내왔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텔레비전인 유튜브의 현실 효과는 어떠한가. 두 가지 특징을 짚어볼 수 있겠다. 우선 유튜브는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적인 성격을 극대화하고 있다. 텔레비전이 시청각적인 미디어로서의 위력을 뽐내왔다면, 유튜브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앞서 이야기한 ‘생생함’ 혹은 ‘날 것의 느낌’이 그 무기다. 텔레비전이 제공하던 ‘실감성’은 유튜브의 등장 이후로 오히려 ‘꾸며낸 느낌’이 강하게 주는 무언가가 되고 말았다. 최소한의 매개(혹은 편집)로 직접 촬영 현장과 구독자들을 연결하는 유튜브는, 꾸며지지 않았기에 더 실감나는 것, 그렇기에 더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튜브의 사회적 담론은 텔레비전보다 더 강하게 진실로 여겨질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는 제도와 시청자 집단의 문제다. 텔레비전이 시청각적인 매스미디어였다면, 유튜브는 시청각적이면서도 개인화된 미디어다. 매스미디어는 제도적인 영역과의 조우를 통해 작동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를테면 방송국은 스스로 거대한 미디어 제도로서 국가와 정치, 사회 여러 영역의 제도들과 협력하기도, 또 각축하기도 했다. 동시에 국가적인 제도로서 그 시청자를 ‘국민’으로 설정함으로써 대중 일반과의 관계를 맺었다. 그 가운데 스스로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고, 외부의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객관주의, 전문직주의 등의 윤리적 기치들을 내걸기도 했다. 이는 ‘공정’하면서도 ‘대중 일반이 수용가능한’ 담론들을 생산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생활의 달인>에서 노골적으로 여성 혐오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택시기사를 만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튜브는 제도화로부터 비껴나 있다. 법적 규제나 심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뿐 아니라, 시청자로서 대중(mass) 집단을 겨냥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시청자는 구독자(subscribers)다. 구독자가 만족한다면, 대중의 기호나 인식은 아무래도 괜찮다. 게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그 콘텐츠를 추천받는 집단은, 그걸 좋아할만한 이용자들에 가깝다.‘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라는 어느 프랜차이즈의 슬로건처럼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더 쉽게 진실로 여겨진다. 유튜버와 구독자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담론적 진실의 세계가 수없이 많이 열리게 된다.


유튜브 덕에 오늘날 현실은 더 다양해진 것만 같다. 누군가는 진정한 다원주의가 실현되는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다양함은 다른 진실을 믿는 이들에 대한 수용과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 다양함인 것처럼 보인다. 혹은 어떤 교집합도 없는 집합들이 늘어서 있는 벤다이어그램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이를 두고 혹자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교집합, 공유된 가치, 혹은 합의란 너무 낡은 개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합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지배적 집단 혹은 계급의 가치가 반영된 무엇인가라는 역시 오래된 비판에도 여전히 수긍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의 영역은 또한 사회적 쟁투의 장이기도 하다. 샹탈 무페의 말처럼, 우리와 교집합이 없는 상대는 멸절해야할 적대적 존재가 되지만, 최소한의 합의를 공유하는 상대는 경합의 대상이 된다.


유튜브에서 소소한 인생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너무 큰 이야기로 옮아온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생생해서 재미있는 유튜브와 그 현실 효과 속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피드(feed)를 마주하고 있는 저들과 어떻게 경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믿는 진실이 ‘추천된 진실’임을, 당신에게 추천되지 않은 진실들이 넘쳐남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유튜브는 너무 재미있지만, 동시에 너무 큰 문제들을 우리에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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