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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jp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webp)
![[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jp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6f7bb152ce7e4bb7ae56841bd7c267b3~mv2.webp)
[영주먹] 실패한 연구자이기에 더 나은 양육을 기대한다
“우리는 무엇을 더 했어야 했을까.” 작년에 방영했던 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의 시간>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가 남기는 말이다. 동급생을 살해한 13세 남자 아이는 어쩌다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아이의 범행을 뒤쫓던 형사, 심리분석가, 아버지 모두 끝내 답을 찾지 못한다. 남성성의 왜곡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는 심리학의 관행도 이 사건 앞에서 무너진다. 무엇을 어떻게 더 했어야 참극을 예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는 그저 잘못만 인정하고 만다. 작품에서 끝내 범행의 동기와 도구를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작품에 더 깊이 공감했다. 그 난감함이 이 시대 모든 어른들이 처한 처지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작품 속 아버지의 마지막 대사를 여태 잊지 못한다. 그는 사업이 잘 되어 일이 몰려들던 순간에 기뻤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며 후회한다. 더 잘 벌
5분 전
![[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pn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webp)
![[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pn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webp)
[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
알리가 떠났다. 풀네임은 알리 하그파라스트(علی حقپرست, Ali Haghparast). 이란 사람. 서울 우리카드 우리원이라는 배구단에서 24-25시즌부터 2년 동안 활약했다.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히터, 옛날 말로는 레프트다. 늘 그가 더 큰 무대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런 류의 헤어짐은 늘 준비없이 찾아온다. 우리카드 배구단은 언젠가부터, 누군가 떠나면 선수와 스탭이 모두 공항에 모여 따뜻한 이별 장면을 남겨주고는 한다. 알리와 동갑 케미를 자랑했던 세터 한태준 선수와의 수많은 투샷을 남기고, 알리가 떠났다. 나는 왜 알리를 좋아하는가? 알리가 왜 나의 최애가 되었는지를 회상해 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박사학위논문을 마쳐내는 동안 나는 이미 극심한 무기력증과 염세적 마인드에 깊이 침잠해 있었다. 누워서 쓴 논문으로 겨우 학위를 마치고도, 그 학위를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1년은 아무 것도
6월 13일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jpg/v1/fill/w_250,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webp)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jpg/v1/fill/w_296,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webp)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
나는 석사논문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시설에 보낸 어머니들을 인터뷰하여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어떻게 다시 상상해볼 수 있을지를 다루었다. 나는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통제하고 치유하고 시설화한다는 말을 못 견디겠다는 이유로 이 주제를 시작했다. 이 말에 긁혔다는 것이 보여주듯 나는 오랫동안 장애학 논의들을 내 삶에 붙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읽을 때마다 상처를 받았으며, 논문에도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변명하기와 회피하기 땅굴파기 등등을 하며 졸업 후 시간을 보냈다. 이 글은 내가 장애학 책을 읽으면서 또 석사논문을 쓰며 갈등했던 지점들과 그럼에도 관련 몇몇 의제에 대해 할 수 있게 된 말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은 25-1학기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열린 <섹슈얼리티 이론> 수업을 청강하며 작성되었고, 앨리슨 케이퍼의 책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와 김은정의 책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다.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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