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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영
2019년 6월 01일
In 신문연 칼럼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 소셜 미디어를 떠도는 많고 많은 대학원생 밈(meme) 중에 가장 최근작이다. 그러게, 우리는 무슨 죄를 지어서 여기에 오게 된 것일까? (애니메이션 심슨의) 마지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라던데. 우리는 정말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게 죄가 되는 것일까? 밈은 씁쓸하게나마 웃음이라도 주지, 주변에서 듣는 걱정과 충고는 정말로 상처가 될 때가 많다. 최근에 만나게 된 초면의 선배들은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잘 팔리는 전공으로 바꿔야 한다며” 농담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을 굳이 굳이 내게 들려주었다. 사회운동을 어떻게 막을지, 노조를 어떻게 파괴할지 연구해야 잘 팔릴 테니 노동을 공부하고 운동을 공부해도 그런 쪽으로 연구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표정 관리를 하기 힘들었다. 농담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의 경험과 상처를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비난할 수도 없다. 나에게 회의가 없냐고 묻는다면 나도 사실 할 말은 없다. 매일 불안과 싸우고 있으니까. 게다가 불안하다고, 힘이 든다고 소리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서 저자를 무너뜨렸던 것은 “자네는 그래도 살만했지?”라는 태평한 질문이었다고 했다. ‘네가 선택한 길이잖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하는 순응보다는 분노가 세상을 바꾸는 데 더 유용하다. 단지 이 분노를 자조나 회의로 돌리는 게 아니라 에너지로 바꿔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책임하게 긍정하지도, 답 없이 부정하지도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가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불안함’이었다. 과정 중에 주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면 뭐할거냐고 물을 때마다 “일단 잘 마치는 게 목표야”라는 말로 둘러댔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정말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살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학교 밖에서 사회운동을 주제로 연구할 수 있는 연구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졸업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할 때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졸업 그 자체도 두려웠다.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불안함이 싫어서 더이상 공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사 졸업 후 일년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는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살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해보고 싶은 연구가 많다. 운이 좋게 좋은 선배들을 만났다. 대학원 이후에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사람들이었다. ‘아, 저런 삶의 경로가 있구나. 나도 따라 걸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내 뒤에서 이 길을 걷게 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동료 연구자들을 만나고 싶고 사람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책임하게 끌어들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버티면서 남에게는 올 곳이 못 되니 오지 말라며 말리기만 하는 사람, 그 어느 쪽도 아닌 응원 하고 격려하고 돕는, 함께 걷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신문연도 그래서 한다. 나의 동료를 찾고 누군가의 동료가 되고 싶어서. 결국 같이 신문연 해보자는 말이었다. 여전히 불안하겠지만 불행하지는 않은 삶을 함께 꿈꾸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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