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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 석사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석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파이팅이 넘쳤는데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량이 30장이 넘어가니 한 번 쓴 문장은 다시 보기가 싫고 고칠 여력도 없어지더군요. 여기를 고쳤다 싶으면 저기가 마음에 안 들고 저기를 고쳤다 싶으면 문맥이 미묘하게 어긋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지도교수님은 우스갯소리로 세상에는 석사논문 쓴 사람과 안 쓴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연구자에게 석사논문이라는 통과의례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죠. 그래서인지 논문을 쓰고 있으면 이미 석사논문을 써서 졸업했거나 박사과정이신 분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입니다. 그분들에게 너무 대단하다고 제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나누면 하핫, 아니에요. 저도 그런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다 쓰게 되더라고요. 잘 쓰실 수 있을 거예요, 라며 겸손이 섞인 응원을 해주시곤 합니다. 그 겸손까지 괜히 대단해 보이면서도 이미 쓴 사람만이 가진 그 여유가 괜히 부럽곤 합니다.


그래도 주변에서 준 도움 덕분에 얼개가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도움은 신문연의 리서치톡G였습니다. 리서치톡G에서 7장 분량의 짧은 초록(?) 느낌의 글을 발표했었는데, 그때 여러 동료 연구원분들과 참여해주신 분들의 조언 덕분에 이번 학기 논문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조언으로 제 연구목적이 빈약한 것을 깨달았고, 제가 특별한 설명 없이 이런저런 개념들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지도교수님조차 비슷한 조언을 주시니 왠지 리서치톡G에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리서치톡G의 장점은 마감이었습니다. 마감이 글을 쓴다는 말이 있듯이, 저 역시 혼자서는 아무 글도 쓰지 못합니다. 신문연 칼럼도 마감 없이 아무 때나 쓰라고 한다면 과연 저는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리서치톡G를 신청하고 마감이 생기자 저는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많은 학생을 지도하며 이런 상황을 자주 목격했기 때문일까요. 지도교수님은 자주 마감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게 공식적인 마감이 아니라 지도교수님과의 사적인 약속이니 저는 자꾸만 마감을 어기곤 합니다.

선행연구 검토 제외한 연구목적, 연구대상, 방법론이 포함된 1장을 3월 1일까지 써와라. 저는 마감 일주일이 지난 3월 8일에 다 써서 제출했습니다. 예심 전까지 60% 이상을 3월 31일까지 써와라. 저는 4월 10일이 지나고도 원고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지도교수님은 답답하셨는지 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예심 날짜도 정해졌는데 얼른 보내야지? 네, 선생님. 내일까지 꼭 보내겠습니다. 거짓말쟁이인 저는 결국 그로부터 이틀 후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선생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논문만을 들여다보는 이 고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겠죠. 요즘 모든 게 다 거슬립니다. 저는 무척 예민한 상태죠. 매일 연구실을 가는데 버스비가 편도 2,800원입니다. 왕복이면 5,600원이죠. 4월 15일 현재 이미 이번 달 교통비 누적금액이 9만 원이 넘었더군요. 코로나 이후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바뀌고 버스비는 4만 원을 넘지 않았는데, 9만 원이라니. 이런 혼란한 마음을 다스리고자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니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제법 관리가 되더군요. 그런데 웬걸. 얼마 전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가 허리가 삐끗했습니다. 매번 발목을 다쳐서 발목에만 집중했는데 허리라니. 허리라니. 다음 주가 예심이고 오늘은 칼럼을 쓰고 주말에는 예심용 발표문을 써야 하는데. 서둘러 물리치료를 받고 한의원을 다니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이 생활이 익숙해지니 여기에도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습니다. 뭐랄까. 연구실에 자주 가서 친해진 선후배? 갑자기 논문이 잘 써질 때? 논문을 쓰다가 스트레스 받아서 먹는 간식들? 오늘은 논문 쓸 기분이 아니다 싶어 책을 덮고 후다닥 술을 마시러 가는 날들? 문득 써놓고 보니 불안함이 커서 즐거움을 더 찾으려고 하지 않았나 싶네요. 요즘 불안하긴 합니다. 논문을 완성할 수 있을지, 나중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럴 때마다 불교의 말을 되새기고는 합니다. 모든 감정은 파도와 같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흘려보내야 건강하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불안할 때면 이를 파도로 여기고 흘려보내곤 합니다. 즐거움도 역시 흘려보냅니다. 괜히 이 즐거움을 오래도록 잡고 있으면 다른 감정을 누릴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계속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다 끝나있지 않을까요? 이 글이 갑자기 끝나는 것처럼, 고된 시간은 언젠가는 다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지금 석사논문을 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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