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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축제가 끝나고,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할 때



세계인의 축제라는 월드컵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월드컵은 북반구의 겨울이라는 기존과는 이질적인 계절에서 치러졌다는 특이성과 함께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그간 축구의 변방으로 불렸던 아시아 축구 연맹에 소속된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국가들의 조별예선 통과와 더불어서, 유럽이나 남미팀에 비해 약체로 평가받던 모로코 국가대표팀의 약진과 전통적 강호였던 독일의 조별 예선 탈락과 같은 이변이 있었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 유독 국가 대항전 트로피와 인연이 없었던 리오넬 메시가 말년에 그의 아르헨티나 동료들과 함께 들어올린 우승컵과 결승전의 ‘최종보스’로 손색이 없었던 신성 킬리안 음바페의 활약까지, 이번 월드컵은 많은 드라마틱한 서사를 남기며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축제의 화려한 불빛이 큰 만큼 그 이면의 그림자 또한 짙게 드리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 월드컵 준비가 한창이던 때,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사용될 경기장 공사 과정에 동원된 이주노동자 중 약 675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카타르 측은 대회 준비 과정에서 가혹 노동이 있었다는 점을 마지못해 인정했지만, 그에 대한 여타 후속 조치 등이 있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공사 과정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출신 국가는 미묘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해당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에서 온 이들로, 이들의 출신 국가들은 대표적인 저발전 국가군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8만 달러 이상의 1인당 명목 GDP를 자랑하는 중동의 산유 부국 카타르의 개발과 건설 산업을 지탱하는 이들은 주변의 개발 도상국들이다. 카타르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지만, 정작 해당 국가의 건설과 각종 산업 현장은 값싼 저발전 국가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력에 의존한다.

그렇다고 이들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권 준수나 관리가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월드컵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사망한 연유는 물론 노동자들의 사망은 한 여름철 기온이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카타르의 기온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후 조건에서 이토록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카타르 당국의 이주 노동자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실제로 다수의 언론은 카타르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중동 산유 부국의 발전된 모습은 대부분 이와 같은 주변 저발전 국가들의 노동력에 의존한 것이다(이는 비단 중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북반구, 서구, 혹은 한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카타르 도하의 카타르 시민권자를 가진 이들이 거주하는 호화 주택과 매우 대조되는 비좁고 열악한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숙소는 자본이 자아내는 국가 간 비대칭성을 적나라하게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그간 우리가 즐겁게 즐겼던 카타르 월드컵은 이러한 노동력을 밑에 깔고 치러진 것이다. 한국의 16강 진출도, 모로코의 4강 신화도, 메시의 월드컵 우승 세레모니도 모두 열악한 노동 환경을 딛고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멀리서 TV를 통해, 또는 현지의 경기장에서 관객으로 위치하며 이를 즐겼지만, 우리의 즐김 이면에는 초국적인 이주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장의 환호성에, 때로는 TV 모니터 앞의 열광적 시청으로 잊혀졌지만, 우리를 관객으로서 오롯이 자리매김하게 한 것은 이와 같은 불균등한 노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축제는 끝났다.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할 때다. 물론 이 이야기는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도, 축제가 한창일 때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어야 했던 이야기다. 혹자는 다같이 즐겼으면서 왜 이제야 까다로운 모습을 보이냐 힐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늦었지만, 우리는 계속 까다로운 관객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더불어서 여기서는 지극히 단편적으로 이주노동자만을 언급했지만 월드컵, 나아가 축구라는 전지구적 이벤트에는 제기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당장 이번 월드컵만해도 노동 이슈 이외에도 성소수자 차별과 관련된 인권 이슈가 존재하고 있고, 유럽축구로 대변되는 일종의 ‘미디어’로서의 ‘해외축구’가 대표적인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하며 자본과 관계 맺는 지점은 여전히 집요하게 케물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축구팬으로서, 그리고 이러한 이벤트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꾸준히 까다로운 관객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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