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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몇 년 전, <단속사회>라는 책의 서문에서 “곁이 있는 글”이라는 말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었다. 과연 이 '곁' 이란 무엇이고 '곁이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이 화두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막막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는 아마 내가 그간 써왔던 글들에 대해 스스로 어떠한 확신도 서지 않다는 것에 기인할 것이다.


공부를 계속 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공부를 하는 삶은 글을 쓰는 삶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과 자연스레 맞물려서, '지식'과 '앎'의 괴리와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과 ' 실천 양식'과의 괴리에 대한 문제를 안기 시작했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또한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기에 이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으려했고, 여러 탁월한 선생들의 글과 행동들을 보며 나름의 답을 내리려 했었다. 그리고 내가 쓰는 글에 대해서 이것이 단순히 '나를 과시하려는 글', 또는 '나를 내세우기 위한 글'이 아닌, 철저히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을 단순히 설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공감을 일구어내는, 앎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관계를 매개할 수 있는 글을 지향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내가 쌓아온 지식과 그것을 매개로 한 글에 대해 생각하니, 글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업으로 삼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나 치밀한 분석을 통한 깔끔하고 논리정연한 글쓰기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 봤을 때, 과연 '깔끔하고 논리정연한 글'은 누구를 위해 쓰는 것 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제아무리 배움이나 연구를 업으로 삼는 영역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사회를 말하고 사람을 위하는 글에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없다면 그 글은 어떠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도 따라온다. 예전 논문 작업을 하는 동료들과 우스갯소리로 "우리의 글을 누가 볼까?"라는 주제로 짤막한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 때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아무도 읽지 않는다"라는 말에 우리는 모두 자조하며 고개를 주억 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써야만 하고 쓰는 것일까.


짤막하지만 자조적인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것은 회의감이 전부였다. 우리가 쓴 글을 누구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 가정된다면 굳이 글을 써야할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사회와 사람을 말하면 어쩌랴. 그 사회와 사람이 그 글을 보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제아무리 치밀하고 논리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글에 '인간'이 없으면, 그리고 그 인간이 몸담고 살아가는 '생활세계'가 없으면. 아니 '인간'과 '생활세계'가 있더라도 그러한 것들이 '단순한 분석의 대상'으로 밖에 녹아있지 않는다면. 그 글이 사람과 생활세계를 위한 글이 될 수 있을까? 단순히 글을 쓰는 저자의 지적자위내지는 지적 위계강화를 위한 기제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지금은 '총체적 말의 시대'다. 우리 주변을 돌아볼 때, 수많은 '말'들이 떠다니고 그러한 말을 포획한 글들이 범람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어도,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을 함이라는 것은 들어주는 이가 있을 때 그 가치를 부여받는 것일진대, 서로 자신의 말만 늘어놓고 듣지 않는다는 것은 내뱉어지는 말들이 상대에 대한 이해과 공감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비단 글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싸질러지는 글들은 많지만 아무도 그 글을 보지 않는다할 때, 그것은 그 글을 접하는 이들의 문제일까, 글쓴이의 문제일까. 물론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글을 제대로 잡지 못하게끔 하는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읽는 이들을 상정하고, 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봤을 때,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글이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글을 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글에서 '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그래서 다시금 ‘곁’이 무엇이고, ‘곁이 있는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곁’이라는 것은 누구의 곁이며, ‘곁이 있는 글’이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글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겐 과연 어떠한 ‘곁’이 있으며, 그리고 그 ‘곁’에 위치할 수 있는 글이란 과연 어떤 글일까? 그리고 글에 ‘곁’이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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