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형] 유튜브 비평 5 - <가짜 사나이>와 지식 구성의 메커니즘

11월 23일 업데이트됨


초등학교 시절, 내가 속했던 학년 전체가 해병대 캠프라는 것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취지는 간단했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몸, 그리고 집단 생활을 잘 해낼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함. 1박 2일의 행사 내내 나와 친구들은 유격 훈련 비슷한 것들을 해내고 국가와 사회, 부모와 동료들의 자장 안에 내가 살아가고 있음에 대해 가르침을 받으며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었다.

“남자가 그것 밖에 못해!”, “너를 키워주신 부모님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너 때문에 동료들 힘든거 안보여!”, “한 톨도 남기지마, 다 너희 부모님이랑 농민들이 피 땀 흘려 마련한거야!”


빨간 모자를 쓴 교관들은 위와 같은 말들로 어린 우리를 몰아 세웠다. 그러나 사실 이런 말들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남자가 왜?’ ‘레펠을 못 뛰는게 왜 부모님께 부끄러운거지?‘, ‘처음부터 동료들이 힘들었던 건 이 캠프 때문이 아닌가?’, ‘부모님까진 알겠는데, 농민들도 돈 받고 이 쌀을 판거잖아?’


그러나 이렇게 떠오른 반문들은 해병대 캠프의 분위기 속에서 금새 사그라들었다. 높은 곳에 선 교관의 쩌렁한 목소리와 단호한 표정, 그와 대비되는 흙투성이 우리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남자답게 뛰어내렸고, 얼굴도 보지 못한 농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물론 이후에도 비슷한 행사들에 참여했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 공익근무요원으로 배치되기 전 실제 군사 훈련까지도 경험했지만, 초등학생으로서 경험했던 해병대 캠프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없었다. 아니면 오히려, 해병대 캠프를 통해 바뀐 내가 더 쉽게 나머지에 적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이미 예비군 훈련까지 마친 지 수 년이 흐른 차에, 오랜만에 이러한 향수(?)를 자극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만났다. 바로 ‘피지컬 갤러리’ 채널의 <가짜 사나이>. 정신과 신체의 개조를 모토로 내세워 혹독한 UDT 훈련을 유튜버 등 유명인들이 수행한다는 간결하고도 매력적인 콘텐츠에 온 사회가 떠들석해졌다. 그러나 호재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즌 1이 큰 화제 속에서 마무리되고 시즌 2가 진행되던 중 시즌 1의 교육대장이었던 이근 대위가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콘텐츠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었고, 콘텐츠 자체도 가학성 논란에 휘말리며 조기 종영했다. 결국 기존의 콘텐츠들도 비공개처리가 되었다.


여러가지 비판, 옹호 담론들이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핵심은 이 콘텐츠가 권력/지식이라는 것의 생산과 유통 메커니즘, 그리고 통치의 달성 과정에 대해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자기 스스로를 규율하고 관리하여 통치에 적절히 응하고 결합할 수 있게 만드는 주체화 작업은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 핵심에는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있다. 권력은 사회적 사실들에 대한, 혹은 무엇이 사실인가에 대한 지식을 생산함으로써 그 지식에 예속된 주체들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 지식과 관련하여 통치되는 사회를 달성한다. 그러나 지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논리적으로 무결한 일련의 지식 연쇄를 통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논리들의 연쇄가 어느정도 이루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끊어져버린다.


‘피지컬 갤러리’의 운동 콘텐츠들이 만드는 지식을 예로 들어보자.

• 데드리프트를 할 때는 둔근을 잘 사용해야하며, 허리에 많은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해야한다.

• 그래야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부상 없이 근육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부상 없이 근육을 키워야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건강한 신체를 얻고, 잘 가꾸어진 몸이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높여주기 때문이다.

• 높은 생산성과 자존감을 얻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그것이 우리의 목적 그 자체인 이유는, 그것이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논리가 끊어지는 지점에 권력/지식은 정서라는 무기를 도입한다. 이러한 지식이 전달되는 순간의 분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은 논리 연쇄의 단절을 오히려 그것과 나를 일체화하는 지점으로 느끼게 만든다. 높은 생산성과 자존감을 얻은 나의 모습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희열은, 다음 논리 연쇄가 어떻게 이어지는가와 관계 없이, 데드리프트를 수행하며 둔근을 잘 써야한다는 지식의 고리로 나를 돌아가게 만든다.


시즌 1은 스트리머 공혁준의 ‘나태한 생활 습관’을 고치기 위해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의 주도 하에 <우리 아이가 말라졌어요>라는 합숙/다이어트 콘텐츠를 하던 와중에 기획, 실현된 콘텐츠였다. 결국 공혁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저조한 신체 상태나 의지를 개선하는 것을 중심으로 콘텐츠가 짜여졌다. 이 과정에서 교관들의 교육생을 향한 가학적이고 모욕적인 발언들은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교육생들을 신체/정신적으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식으로 수용되었다.

• <가짜 사나이>의 가학성은 불가피한 도구이다.

• 그것이 불가피한 이유는 공혁준을 비롯한 교육생들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저조한 상태에 있으며, 가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그것이 극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육생들이 더 나은 신체/정신적 상태를 통해 더 성숙하고, 더 생산력있는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 그 자체가 목적인 이유는 그것이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 연쇄 구조 속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교육생들을 향한 가학적 행위들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졌다. 공혁준 등 출연자가 보이는 ‘나태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처벌되고 점차 개선되기도 하는 과정 속에서 지식 연쇄의 단절은 오히려 나태함에 대한 분노나 뭉클함과 같은 감정으로 봉합되었다.


그러나 시즌 2에서는 다른 일들이 벌어졌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강인하다고 평가할만한 교육생들이(운동 유튜버, 체육 엘리트 등) 대거 포진했고,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더 실제와 유사한 훈련들을 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받았던 시즌 2는 예상과는 달리 훨씬 더 많은 비판을 받으며 조기 종영하고 말았다. 물론 더 강한 가학성이 더 강한 비판을 불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식 연쇄의 고리가 흔들렸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 <가짜 사나이>의 가학성은 불가피한 도구이다.

• 그것이 불가피한 이유는 교육생들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저조한 상태에 있으며, 가학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극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 그것이 극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교육생들이 더 나은 신체/정신적 상태를 통해 더 성숙하고, 더 생산력있는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런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 그 자체가 목적인 이유는 그것이 목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즌 1과 유사하게 구성된 것으로 보이는 시즌 2의 지식의 연쇄 고리는 두 번째 고리에서 균열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국가대표를 역임했던 체육 엘리트들(김병지, 곽윤기 등)과, 잠을 줄여가며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유튜버(운지기) 등 이미 신체/정신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교육생들은 두 번째 고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이때 ’가학적인 방식의 훈련을 통한 인간 개조의 정당함’이라는 논리 구조는 지식으로서 성립하지 못하고 오히려 콘텐츠가 전면적인 비판에 직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시즌 1과 2의 이러한 대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으면서도 또 논리적인, 대중의 지식 수용 방식이다. 지식 연쇄의 마지막 고리에서 정서적인 동요가 일어나, 결국 전체적인 논리가 결여를 극복하고 수용되기 위해서는, 마지막 직전까지의 고리들이 무결하게 결합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이해 끝에 생기는 고민은 다음과 같다. 정치적인 구호들 속에서 우리가 세심히 살펴야할 것은 무엇인가? 지식의 연쇄 고리들을 무결하게 잇는 작업에 몰두할 것인가? 아니면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봉합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지식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을 수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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