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뒤집힌 정권과 그를 이끌어낸 광화문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의 바람은 지금 어디쯤 있을까? 이번 대선 정국을 바라보며 항상 떠올랐던 생각이다. 그도 그럴것이, 5년 전 광장에 모인 제각각의 바람들은 촛불이라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모였다. 그들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체제의 모순에 분노하며 삼삼오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광장을 메운 많은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 내 축적된 부조리들을 성토했다. 그 움직임은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고, 10여 년간 지속되었던 특정 정당의 집권을 끝냈다.
5년 전 인권변호사 출신의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많은 이들은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 바뀐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당시 많은 이들이 꿈꿨던 사회의 형상은 지금 사회와 비교하여 얼마나 바뀌었을까? 아마 부정적일 것이다.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 촛불로 들어선 정권은 5년 만에 다시 뒤집혔다. 당시 들려오던 사회에 대한 바람들은 5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바람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흐릿해졌다.
사후적으로 생각해보건대 5년 전 정권 교체를 이끌어냈던 주요한 목소리는 오로지 부조리와 모순의 책임자를 가려내 처벌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나 싶다. 광장을 메운 수많은 목소리 중에서 의제화된 것은 거대 담론에 국한된 것 뿐이었고 일상의 영역, 곧 미시적인 것을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는 거대한 의제에 묻혀 흐릿해졌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러한 기미는 당시에도 여실히 드러나긴 했다.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에 “나중에”를 연호하던 이들의 지지정당. 그리고 5년 전 정권 교체 이후에도 지지부진하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의 반영. 그들에게 따라붙던 것은 언제나 “나중에”였고, “나중에”의 선결 조건은 전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책임 소재와 처벌, 그리고 검찰 개혁이라는 힘겨루기 뿐이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집권 정당과 그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문제에 골몰하고 사회 내 권리를 주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지속적으로 묻혀왔으며, 여성, 성소수자, 더불어서 경제적 취약 계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권리들은 지속적으로 유예되어 왔다. 설상가상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혐오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정치공학이라는 명분 아래 ‘이대남’, ‘이대녀’ 등등의 기표들이 난무했고, 그 이면에는 해당 주체들의 삶의 문제나 평등의 문제보다, 어떻게 표를 끌어모을까라는 목적에 기인한 다양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만이 존재했다.
한 편, 도시 공간의 이곳 저곳은 정비되고 세련된 모습을 갖춰가지만, 높아진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는 한 평의 공간도 자기것이라 말할 수 없는 이들은 지난 5년 간 박탈감만 키워왔다. 그 와중에 '보통 시민'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집’이라는 공간과 자산 축적을 위한 자본을 등치시키며, 자산 가치의 하락이라는 명목하에 누군가에겐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 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이러한 움직임은 ‘내 집’ 아니, ‘나의 증식할 수 있는 자산’이 있는 이들의 공간을 넓히고 또한 높여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부의 과시를 위해 하늘을 찌를 정도의 높은 건물들을 짓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러한 건물의 권리를 구입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 권리를 임차하여 그곳에 입주한다. 도시 공간에 들어선 마천루들은 그들의 부를 과시함과 동시에 도시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그리고 넓혀만 간다. 소수의 사람들이 조망권을 획득하기 위해 높게 지은 건물들은 그 이면에 위치한 이들의 하늘을 낮춰만 간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도시 공간을 점유할 권리? 누구나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아야할 권리? 이런 것들이 과연 주어질 수 있을까? 여전히 사회적 모순과 그를 구축한 체제는 여전하다. 공적인 발화의 주체, 아니 공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 바꼈을 뿐, 본질은 여전하다. 이러한 와중에 우리 사회 내 모순을 지적하는 목소리들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납작해져만 간다. 마치 도시 공간을 둘러싼 아스팔트 위에 달라붙은 껌딱지를 보듯이 말이다.
혹자는 대선을 통한 정권 교체를 통해 사회의 상을 바꿀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5년 전의 정권 교체가 그랬었듯이 과연 사회의 모순을 선거로 바꿀 수 있을까? 지금의 체제 하에서는 어떠한 모순도 해결되지 않는다. 더불어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즉 판을 뒤집을 동력이 될 만한 축적도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란 고작해야 선거 혁명 뿐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 여당이 바뀌는 것,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에서 그 이외의 것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집권 여당이 바뀐다고 해서 그것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사회에 축적된 모순은 여전한데, 집권 정당이 바뀐다고 지금의 모순들을 야기한 시스템을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마냥 비관만하고 냉소만 던지기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이 녹록치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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