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영]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만


# 질투


나는 이상하게 질투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질투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가 만나온 사람들은 유독 내 친구들과 나의 사이를 질투했다. 질투심을 느끼는 심리를 잘 모르니 질투를 하는 연인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고 때로는 왜 나를 믿지 못하는지 억울해하다가 싸워보기도 하고, 고백하자면 애인을 기쁘게 하려고 질투하는 척 연기를 해보기도 했다.


왜 나에게는 질투가 없는지 생각해보니 삶의 경로를 따라 그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나 잘난 줄만 알아서 연인이 나를 두고 한눈을 팔 리가 없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고, 관계 그 자체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2015년 이후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친구가 ‘남성’이기 때문에 질투라는 특정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왠지 이상했다. 바람이 나려면 굳이 그게 남성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또 내가 ‘질투심’이 아예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내가 질투를 느끼는 지점은 애인의 친한 친구보다는 주로 애인의 과거, 혹은 전 애인이 나와 헤어진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 가는 관계를 향했다. 고민의 고민,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이건 질투라기보다는 그 사람을 영원히 나와 연결된 상태로 둘 수 없다는 사실에 느끼는 (꼬일 대로 꼬인) 소유욕이었다. 이런 생각을 한 뒤로는 이러한 감정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애인에게 절대로 나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금의 애인을 있게 한 그의 과거가 궁금하고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맞추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덧붙여 또 고백하자면, 내 지난 연인들이 나와 내 친구 사이를 질투했던 것도 사실은 충분히 그럴법한 일이었다. 나는 내 친구들을 사랑하니까. 그 호감과 사랑이 다양한 이유로 ‘연인 사이’라는 어떤 역치를 넘지 않았을 뿐이지(연인이 되기에 마음이 부족해서라는 뜻은 아니다) 애인과 친구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관계는 아니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히 질투할만했다. 내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으니 상대방에게도 잘 설명하지 못했고 왜 질투하느냐 억울해하기만 했으니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 폴리아모리? 모노가미? 다자연애? 정상연애?


사랑이 넘치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유롭고 싶어 하고 거리 두고 싶어 하는 스스로가 궁금했던 나는 10대 때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곧,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흘려보낸 장면들이 떠올랐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는데 며칠 만에 괜찮아지는 이유를 오래전부터 동경하고 사랑해왔던 다른 사람의 존재에서 찾는 드라마도 있었지. 나는 그 캐릭터가 꼭 나 같았지…’


동시에 여러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중심소재가 다자연애였던 웹툰도 있었고, <2♡>라는 노래도 있었고, <로맨스가 필요해2>의 열매는 석현과 지훈 사이를 오가고,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인 <봄밤>에서는 비록 저물어가는 관계이긴 했지만, 연인이 있던 정인이 지호와 사랑에 빠진다.


지난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이런저런 글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서, 실제로 다자연애 중인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되면서, 어쩌면 사회가 말하는 ‘정상연애’와 거리를 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스스로가 동시에 여러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안다. 그리고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올해 봄,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 관계에 도전해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마음을 주변에 고백했을 때 “정말로 질투가 안 나?”라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구나 감정적으로는 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끄덕거린 사람도 있었으며, 본인이 동시에 여러 사람을 (몰래) 만나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본인도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으니 만나보자는, 하지만 본인의 애인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마음에 흔들리며 내린 결론은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 여러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관계를 하겠다고 욕심부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는 것, 그저 스스로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어 기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 독점하지 않으면서 단단한 관계 쌓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여러 사람을 좋아해 볼 거야!’라고 다짐한 직후에 살면서 가장 깊게 몰입하는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의 파트너는 나만큼이나 기존의 정상연애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런 고민 끝에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대화를 이어나가며 우리는 둘만의 관계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욕망을 참으면서 다시 ‘정상연애’로, 모노가미적 관계(한 개인이 한 파트너와만 애정 관계를 맺는 관계의 형태)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해왔던, 그래서 한때 의문 없이 그대로 수행해왔던 역할에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역할에 한계 지어지지 않는 관계를 상상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있을 우리가 마주하게 될 다양한 변화들로 관계의 지속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 변화를 우리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모노가미와 폴리아모리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모노가미는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부일처제의 부자연성으로 인해 (나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부일처제를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특성이 인간을 흥미롭고 독특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인간은 자연스럽지 않은 선택도 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꼭 모노가미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끊임없이 대화하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더 건강하고 견고한 관계를 쌓을 수 있고 거기에 꼭 ‘독점’이나 ‘소유’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고, 우리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은지 대화함으로써 관계의 방식을 선택해 나갈 수 있다.

* 폴리아모리와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Explained> Monogamy 편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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