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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pn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5,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webp)
![[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pn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5,enc_avif,quality_auto/ff6734_2e57c1c4766f4ac3ade87ba7a342c1b2~mv2.webp)
[최애동향] 날아올라 알리 라랄라
알리가 떠났다. 풀네임은 알리 하그파라스트(علی حقپرست, Ali Haghparast). 이란 사람. 서울 우리카드 우리원이라는 배구단에서 24-25시즌부터 2년 동안 활약했다. 포지션은 아웃사이드 히터, 옛날 말로는 레프트다. 늘 그가 더 큰 무대로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왔지만, 이런 류의 헤어짐은 늘 준비없이 찾아온다. 우리카드 배구단은 언젠가부터, 누군가 떠나면 선수와 스탭이 모두 공항에 모여 따뜻한 이별 장면을 남겨주고는 한다. 알리와 동갑 케미를 자랑했던 세터 한태준 선수와의 수많은 투샷을 남기고, 알리가 떠났다. 나는 왜 알리를 좋아하는가? 알리가 왜 나의 최애가 되었는지를 회상해 본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박사학위논문을 마쳐내는 동안 나는 이미 극심한 무기력증과 염세적 마인드에 깊이 침잠해 있었다. 누워서 쓴 논문으로 겨우 학위를 마치고도, 그 학위를 바탕으로 더 적극적으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1년은 아무 것도
6월 13일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jpg/v1/fill/w_251,h_250,fp_0.50_0.50,q_30,blur_30,enc_avif,quality_auto/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webp)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https://static.wixstatic.com/media/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jpg/v1/fill/w_297,h_296,fp_0.50_0.50,q_90,enc_avif,quality_auto/ff6734_2b89ece0093545f0a9dff90ee72f6bc5~mv2.webp)
[뭘까?저건] 장애학 앞에서 내가 하게되는 자기방어
나는 석사논문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시설에 보낸 어머니들을 인터뷰하여 중증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어떻게 다시 상상해볼 수 있을지를 다루었다. 나는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통제하고 치유하고 시설화한다는 말을 못 견디겠다는 이유로 이 주제를 시작했다. 이 말에 긁혔다는 것이 보여주듯 나는 오랫동안 장애학 논의들을 내 삶에 붙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읽을 때마다 상처를 받았으며, 논문에도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변명하기와 회피하기 땅굴파기 등등을 하며 졸업 후 시간을 보냈다. 이 글은 내가 장애학 책을 읽으면서 또 석사논문을 쓰며 갈등했던 지점들과 그럼에도 관련 몇몇 의제에 대해 할 수 있게 된 말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의 초안은 25-1학기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열린 <섹슈얼리티 이론> 수업을 청강하며 작성되었고, 앨리슨 케이퍼의 책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와 김은정의 책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다.
6월 13일


아이, 배운 대로 키울 수 있을까?
우리는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연구를 하면서 여러 사회적 모순을 배우는 일은 곧 내 안의 모순을 대면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런 모순을 회피하는 방법도 같이 배우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모순에 조금은 무감해지고 무심해지는 것인지, 이제는 ‘흐린 눈’도 곧잘 해내게 된다. 아이를 양육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이해하게 된 한 가지는, 아이는 내가 외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는 당장 내 곁에 존재한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는 내 모순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내 시야를 넓혀주는 렌즈가 되기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며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도, 그리고 그와 함께 더 큰 의미가 생기는 것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면한 질문, 우리는 배운 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각자가 치열하게 싸워온 그 고민을 이번 수다에서 풀어내보았다. 참여자 소개 탁상공론에 참여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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