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정확한 사랑의 전달



신화와 서사 수업 시간이었다. '우주에요.' 우주라니. 내가 매일 보아온 '하늘'은

우주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충격에 무릎 뒤가 저릿해온다. '하늘'로 상상

해왔던 감각이 확장되던 그 순간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단어는 우리를 의미 안

에 그리고 제한적 공간 안에 가두어 둔다. 우리가 하나의 단어를 두고 각자의 경

험에 따라 다양한 상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고 각자가 떠올리는 사랑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은 사람의 수만큼 다

양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단어를 듣고 발화하면서 서로를 오해하고 스스

로 오해 속에 갇힌다.


"나 지금 너와 영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스무 살의 어느 날 도착한 문자는

나의 이성을 중지시켰다. 왜 '사랑한다'라는 명확한 표현으로 사랑을 '정확하게'

언표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 사랑을 '노력'한다니. 사랑은 철저한 감정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당시 나는 '사랑해'를 조금 특별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담긴 고백이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는 바디우의 관점에서

충실한 사랑을 행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사랑을 정확

하게 언표한다해도 전달받은 사랑은 전달하고자 했던 사랑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일곱 살 난 조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조카의 장난에 짜증이 난 친구는 얼

굴을 찌푸리며 "나한테 왜 그래?"라 묻는다. "좋아서 그래." 조카의 답을 들은 친

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온다. '그럼 계속해도 된다'는. 조카가 전달하고자 했

던 의미는 '장난하는 것'이 좋다였지만, '네'가 좋다로 전달받은 친구의 마음은 두

드림 없이 열려버렸다. 이것은 의미 전달의 실패가 인도한 결과로, 내가 목격한

수많은 오해의 역사 중 한 장면이다. 어떤 말이나 행동은 의미와 관계가 없어 보

이는 것을 전달한다. 어떤 의미는 각종 수사(修辭)로 무장한 구체적인 말이나 행

동을 경유해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신의 영역에서든 발신의 영역에서

든, '정확한' 전달에 성공했는가를 살피는 것은 무용해진다.


우리가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들은 발신과 수신 이전에 너와 나에 의해 이미 오

염되어 있다. 두 사람 혹은 다수의 사람이 있다. 이들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그것

이 연인 관계든 친구 관계든 관계 맺기는 합의된 무대에 서로를 등장시키는 방식

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각자가 다르게 상상하는 무대에 서로가 원하는 역할로 상

대를 고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이해하려는

그리고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과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돌아간다. 우리가 전달

하고자 하는 것이 이미 서로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면, 정확하고 순수한 상태로

전달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상대에게

충실히 오염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실패할 것이 확실한 시도를 계속할 때, 내가

만들어온 오해의 역사는 중지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글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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