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사상식이라는 합성어는 너무나 이질적인 성격을 가진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사전적 의미로 시사는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current affair’이고 상식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으로 정의가 되어 있다. 상식의 경우 ‘반복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와 지식을 접하고 습득해서 얻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항구적이며 일정하다는 의미를 지닌 常이 단어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건대 유추가 가능하다. 이렇게 각 단어들이 담지하고 있는 시간축이 어설프게 접합된 ‘시사상식’은 이제 취업이나 입시를 위해서 반드시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목으로까지 자리 잡은 모양새다.
흔히 그 이유로 이야기되는 세계화나 기술의 발전, 정보의 홍수 등은 (이미 구태의연한 표현이 됐지만) 정확히 ‘그 당시의 사회적 사건들’로서 ‘시사적’인 요인들이다. 새로운 것들(new-s)에 문외한이어서야 신속하게 흐르는 세상물정의 꼬리를 놓친 채 구습에 젖어있을 도리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유발되는 변화는 한 사회에 고여 있던 ‘기존의 상식’에 반문을 가하고 가치관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상식을 비단 지식이나 정보라는 의미에 한정하지 않고, 사회에 잘 녹아들어 원만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이해력·판단력 및 사리분별 능력’으로 더 엄밀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따진다면 합성어 ‘시사상식’에 그다지 이물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이 용어의 용례를 보자. 취업에 강한 시사상식, 공기업 필수 시사상식, 또는 금융 시사상식, 부동산 시사상식 등이 눈에 주로 띈다. 다루고 있는 것은 주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을 가리키는 영어단어나 기술에 대한 설명이다. 게다가 사회 일반이 알아 두어야 할 법한 정보라기에는 그 양이 너무 방대하고, 또 알게 된다 하더라도 다소 전문적인 용어들이라 실용적으로 활용할 기회도 별로 없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단순 ‘지금, 이때에 등장한 정보’ 습득에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회적 윤활유로서의 상식은 그 본래 기능을 다하는 용어가 아니게 됐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상식이라는 단어 속에는 (명료하게 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배려와 이해, 더 나아가서는 지금껏 누적되어 온 문화적이며 사회적인 가치를 위한 자리가 없다.
단어 하나로 지나치게 꼬투리를 잡는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이 단어 자체가 일종의 가치 종속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상식이란 정의에 담지된 사회적 가치는 사라지고, 쇄도하는 정보를 ‘암기’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된다. 상식이 누군가의 시장가치를 향상시키는 수단으로만 전환되는 것이다. 이 두 단어 사이의 시간축이 어긋났다고 표현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누군가의 ‘앎의 수준’을 판단하고 가름하는 잣대로서의 상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그 힘을 잃은 지 제법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사'와 결합하여 동시contemporary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드러낸 시너지효과(!)는 다시 협소한 의미의 정보성 강한 특성만을 남기고 만다.
이러한 가치전도 현상은 이와 같은 상식이 ‘상식’이 되어 버릴 때 더 문제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남는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지금 서로 다른 상식을 서술하는 나의 방식은 굳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것(이를테면 한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악습 같은 것들을 포함하여)을 낭만화, 미화하는 불찰을 범하게 될 위험이 크다. 앞서 말한 사회적 가치라는 것 자체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고 애매하게 남겨두고 있는 탓이다.
그래서 말해보자면, 그 안에는 그동안 한 사회가 여러 문제적 사안을 두고 협상하고 타협해 왔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지배적인 상식이 무너지고 서로 다른 방식을 품은 가치관‘들’이 쟁투하는 모든 시간 역시 ‘상식’ 속에 담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사와 상식의 결합은 시장이 아닌 사회적 용어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단어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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