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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 대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것과 가르쳐주지 않는 것


“보영씨는 관심 주제가 뭐예요?”


석사 신입생, 미처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대학원생의 삶, 특히 사회과학 전공 대학원생의 삶에 대해 일절 몰랐던 나로서는 ‘관심 주제’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뿐이었다. 그렇다는 사실까지 부끄러웠다.


“아.. 저는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데 아직..”


거짓말이었다. 나는 입학한 지 한참 뒤에야 나의 전공과 질문을 찾았다. 지도교수님의 전공이 사회운동이었고, 내가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수업이 사회운동이니 그냥 사회운동이라고 일단 답했다. 어쩌면 그때의 대답이 지금 나를 사회운동 연구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몰라도 정말 너무 몰랐다. 그냥 수업을 듣는 것이 재미있어 학교에 남으면 계속 그렇게 학습자 자격을 연장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교수님들이 성실히 준비해온 수업을, 잘근잘근 쉬운 말로 해석해주는 강의를 들으며 똑똑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텍스트를 읽고 요약하고 질문하는 과제가 매주 주어졌다. 수업이 일주일에 고작 세개라면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는데 헛된 기대였다. 적응하는 데만 한 학기 이상은 꼬박 걸렸다. 가장 큰 깨달음은 내가 ‘읽기’를 잘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원의 똑똑한 선배들을 보며 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구나.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나는 한번 들어선 길을 되돌아갈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안 읽히는 글을 열심히 읽고, 수업 전 날엔 밤을 새고, 억지로 글의 기여와 한계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비판이나 비평보다는 ‘오, 그렇구나.’라는 끄덕임이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멋진 토론거리를 써가지 못하는 것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버텼는데 학기 말이 되니 ‘연구계획서’를 과제로 제출해야 한단다. 이제까지 배운 이론을 기초로 하여 어떤 질문도 좋으니 이런 연구를 해보겠다는 포부가 담긴 글을 써보라는 과제가 새로이 주어졌다. 배신감을 느꼈다. 아니 이제까지 읽고 비평하는 훈련을 받아왔는데 이건 또 무슨 난관인가. 아니, 내 연구 쓰기는 배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쓰라는 거예요?


대학원 생활을 계속하면서 이런 고민이 한 사람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데 수업만 듣다보면 어느새 프로포절을 해야 할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다. 심사장에서는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가?”, “그래서 연구질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들이 흔하게 등장한다. 15분 내내 연구를 소개했는데 그래서 뭐 하자는 거냐는 질문이 돌아오면 그만큼 허망한 게 없다.


그래서 언젠가 학과의 신입생 세미나를 진행하는 날이 오면 이론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책을 함께 읽고 싶었다. 때마침 기회가 주어져 이번 신입생 세미나에서는 우에노 치즈코의 <논문쓰기의 기술: 정보생산자를 위한 글쓰기 매뉴얼>을 함께 읽었다. ‘정보생산자’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책을 선정했는데 다행히 실망시키지 않았다. 너무 많은 학생이 정보소비자가 되기를 원하고 실제로 연구자는 어떤 곳에서는 정보소비자임이 분명하지만, 우리는 결국 정보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냉정히 말하면 소비자는 대학 이외에도 공부할 수 있는 더 저렴하고 친절한 공간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결국 한명의 독립된 정보생산자-연구자로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대학원의 과정을 걷는다.


이제까지 경험해 온 대학원 과정은 정보를 잘 소비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이었다면, 연구를 생산해내는 것은 나만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과정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책에서 정보가 다름 아닌 ‘노이즈’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반복되는 익숙함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이질감 같은 것이 잠재적으로 정보가 될 수 있고 연구자는 그 불편함을 재료 삼아 세상에 새로운 정보를 생산해낸다.


사실 어디서 그 불편감을 느낄지, 어떻게 불편감을 질문으로 만들어낼지, 그 질문의 답으로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해낼지 그 방법 자체는 대학원뿐만 아니라 누구도 알려줄 수 없다. 그 순간은 모두에게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수업 바깥에서 현장에 있다가 미처 해소되지 않는 질문이 생기기도 하고, 관심가는 주제를 덕질하듯 파다보면 일상생활 중에 불현듯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게 언제 어디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의 석사논문 주제는 관심있는 단체의 온라인 게시판에 남아있던 회원들의 글 5년 어치를 무작정 하나씩 읽어 보다 떠올랐다.


다만 우리가 글을 읽는 훈련을 할 때에나 글을 읽기 이전에 스스로를 정보생산자로 자각하고 나면 글을 읽을 때도 생산자의 마음으로 글을 읽게 되지 않을까. 나라면 이런 질문을, 이런 자료를, 이런 방법을, 이런 답변을 해보겠노라고 곁가지를 틔울 수 있고 그렇게 또 다른 정보가 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를 직업으로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평소에 흔하게 지나칠 일상들을 새로이 불편하게 느끼고 그곳에 질문을 던지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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