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연] 입학하기는 했지만: 인류학과 적응기 1편



입학하기는 했지만. 혹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태어나기는 했지만>이 떠올랐다면 내가 의도한 바가 맞았다. 아주 간단히 영화 정보를 옮겨두자면 1932년에 공개된 이 영화는 오즈의 초창기 무성영화에 속하며, ‘태어나기는 했지만’ 살아가기 고달픈 어린이들의 쓰라린(?)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학원 입학 후 약 2개월 차, 영화의 제목이 자꾸 맴돌았다. 태어나기는 했지만, 입학하기는 했지만⋯.


나는 왜 인류학과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이 학과는 왜 나를 받아줬을까? 처음 떠올랐던 것은 이 두 질문이었다. 반복적인 미션으로 가득한 대학원 생활이 나름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던 걸까. 나는 요즘 난생 처음으로 독서의 대부분이 소위 민족지적 사례들로 가득 채워진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다양한 글들에서 필자들이 도출하는 의미와 해석의 깊이에 놀라기도, 또 감탄하기도 하는 것이 근래의 일상인 동시에 ‘어떤’ 태도의 글들을 마주할 때면 석연찮은 기분을 지울 수 없어 괴롭기도 하다.


‘어떤’ 태도의 글들이란 필자 자신의 위치에 대한 성찰 없이 특정한 세계의 이야기를 1세계적 카테고리, 이론, 아이디어들에 배치하고 싶은 욕망이 묻어나는 글들이다. 백인이자 지식인인 여성 학자가 동양 주부들의 수동성에 대해 말할 때, 백인이자 지식인인 남성 학자가 동양의 남성성이 돈과 관련 있음을, 그 축적과 소비의 매커니즘을 정액에 유비하여 말할 때, 나는 이것을 어디까지 유의미한 지식으로 받아들여야할까? 철 지난 소리를 한다고 비웃음을 살 수도 있겠지만 드문드문 만나는 이런 글들은 자꾸만 내게 인류학이라는 분과 자체가 제국주의와 맺었던 제휴를 떠올리게 한다.


또 다른 고민은 방법론과 관련이 있다. 나는 석사과정으로 인류학과에 진입한 것이라 선수과목으로 방법론을 배우는 실습수업을 들어야했다. 인류학에서 실습이라함은 필드워크를 수행하는 것이고, 이 필드워크를 위해 사전에 방법론 교과서를 읽었다. 필드워크와 관련된 용어 해설, 각 연구 단계의 의미와 실용적 팁들로 구성된 한 권짜리 입문서 격 교과서였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어 나갈수록 이 설명들과 팁들이 상정하고 있는 이상적인 연구자 모델이 점점 선명해져갔다.


가령 연구자의 인간관계를 최대한 활용하여 현장에 ‘발판’, ‘기댈 언덕’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는 팁. 다음으로 평소에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스타일로 사람들과 거리를 좁혀나가는 경험들을 쌓아가야 한다는 팁. 초반에 현장의 사회적 지형도를 잘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통해 연구자가 최초로 관계를 맺는 인물이 그 사회의 고립된 인물이 아닌지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팁. (왕따 격의 인물과 친해질 경우 다른 사람들이 연구자와 관계 맺기를 꺼릴 수 있기 때문에.) 요컨대 처음 만나는 세계에서 능수능란하게 인맥을 활용하고, 예리하게 지형을 간파하여 자신에게 유용할만한 인물과 친해지고, 술자리나 농구 시합 등을 활용하여 해당 사회의 관계 안에 안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이것이 자꾸만 엘리트/탐험가/인싸/남성들을 겨냥한 자질들로 읽혀졌고, 이것이 과연 이상적인 인류학 연구자라면 연구방법 자체에 젠더편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수업에서 조별 필드워크 진행 상황을 발표하던 날, 조별로 받은 코멘트와 해당 조의 성별구성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잘 진행하고 있다”, “포부가 너무 크다”, “목표가 너무 거창하다”는 코멘트를 받은 조는 전원 남학생들로 구성된 조였다. “너무 소극적으로 진행 중이다”, “인터뷰 대상자의 수를 늘리는 것이 좋겠다”는 코멘트를 받은 조는 모두 여학생들로 구성된 조들이었다. 지금 나는 흰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한 번 싹튼 의구심은 확장일로. 연구방법뿐만 아니라 연구 현장의 선택, 연구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도 젠더편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들만 쌓여갔다.


그러나 귀중한 읽기의 순간도 많았다. 여성주의 인류학 사례를 읽으면서 형광펜을 얼마나 칠했던지 책 한 페이지가 거의 형광색이 되었던 날에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온 학과에서 이렇게 엄청난 사례를 얻어 걸리듯 읽게 되어도 괜찮은 걸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또 다시 꼬리를 무는 질문은, 어떻게 이런 사례들을 차이의 존재 그 자체, 차이의 존재를 알았다는 지적인 만족을 넘어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입학하기는 했지만 내게는 아직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2편을 쓰는 날에 나는 실낱같은 힌트라도 얻게 되었을까? 아니면 일상에 휩쓸려 고민들은 망령처럼 머릿속을 떠도는 채로 남아있을까? 그도 아니면 설마 이 질문들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있을까? 이것까지 고민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적응기 1편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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