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연] 인터뷰가 싫어서: 인류학과 적응기 2편



나는 인터뷰가 싫다. 내가 인터뷰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여기서 인터뷰는 내가 질문을 하는 쪽의 인터뷰를 말한다. 지난 가을 학기를 보내며 가장 전전긍긍했던 것도 대부분 인터뷰와 관련된다. 현장연구에서 인터뷰의 중요성과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인터뷰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은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적격자 배지를 달게 된 것 같았다.

주로 타인의 생활사를 통해 연구를 해나가는 일본의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2016)는 인터뷰와 잠수의 닮은 점에 대해 꽤 긴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 적이 있다. 먼저 한 숨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의 감각과 인터뷰의 첫 질문. 그 다음 숨을 멈추고 깜깜한 바닥을 헤매는 감각과 이야기의 지속. 그리고 마침내 잠수가 끝나고, 그러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올라 정신을 차려보면 혼자서 밤바다에 떠 있는 것 같은 감각. 그러니까 쓸쓸하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인터뷰에 대해 갖는 태도를 그가 말하는 ‘쓸쓸함’을 통해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성찰은 나도 어딘지 모를 나의 어느 곳에 적중한다. 고작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나고, 몸과 마음을 질질 끌며 걷고 있다는 기분으로 귀가했던 어느 날이 생각난다. 그 기분이 어쩌면 일종의 쓸쓸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터뷰 그 자체가 아니라 인터뷰 이후의 감정인 걸까? 그런데 인터뷰란 짧은 시간 압축적으로 누군가와 강렬하게 연결되는 경험이 아닌가? 왜 그런 ‘연결’ 이후에 쓸쓸함을 느끼게 될까?


오랜 기간 한국을 연구해 온 미국의 인류학자 낸시 에이블먼은 전라도 사투리도 능숙히 구사할 만큼 뛰어난 한국어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인터뷰와 참여관찰로 한국 중년 여성들의 사회이동과 계급에 대해 쓴 책(2014)에서 8명의 여성들과 일군 관계들은 나에겐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물론 이 책은 연구방법론에 대한 성찰적 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책이므로 그녀의 관계 맺기의 흔적들은 책 전반에 걸쳐 설명 없이 드문드문 툭툭 불거져 나온다. 가령 에이블먼은 책에 등장하는 한 여성이 소유한 집에 세를 들어 거주하며 연구를 이어갔고, 한 여성의 자녀에게는 미국 유학에 관한 도움을 주었고, 한 여성에게 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그녀의 중대한 ‘비밀’을 듣게 되었으며,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들과 수영을 통해 교류했다고 한다. 그녀의 관계 맺기는 통상적 생각처럼 연구참여자의 피권력자라는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김연주 2012), 그러니까 연구자와 참여자가 그 과정에서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주고받는 것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위계관계가 바뀌기도 한다는 지적에 대한 상당히 노골적인 사례인 것 같다. 그리고 이때 연구자의 인종과 영어라는 지위가 주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그녀가 가진 친밀성은 앞서 옮겨온 ‘비밀’의 교환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을 구성하는 내용들을 끌어내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서 떠오른다. 인터뷰나 현장연구에서의 친밀성이 좋은 글을 담보하는 걸까? 사실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자기만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관계의 조절은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 대답에 동의하지 않을 방도는 없다. 그리고 문제를 얼마간 단순화하여 그 자리에서 대답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 대답은 필연적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나에게 필요한 대답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나는 친밀성이 핵심적 도구란 전제 아래 그것의 ‘정도’가 연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질문한 것이 아니라 친밀성과 현장연구, 친밀성과 인터뷰의 ‘관계’ 그 자체 대해 질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친밀성의 정도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설정될 경우, 너무 멀어도 가까워도 좋지 않다는 중용에 대한 강조로 귀결되거나, 연구의 성패는 연구자의 기질, 성격, 인격적 자질에 좌우된다고 하는 것 같고, 그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런 친밀성의 문제가 내가 인터뷰를 곤란하게 느끼는 데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는 인터뷰 혹은 현장연구에 앞서 친밀성을 얻기 유리한 자질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까? 현장에 매끄럽게 ‘안착’하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답인 걸까? 혹은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불가능한 걸까? 연구자의 기질적인 요인이나 특정한 연구 조건이 친밀성을 획득하기 어렵게 할 때, 그 자체로 핸디캡을 동반한 연구라고 생각하기보다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풀어갈 방식은 없을까?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친밀성이 ‘0’, ‘제로’인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터뷰 이후의 감정, 친밀성과 인터뷰의 관계라는 두 가지 문제는 이렇게 질문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라’는 반쪽짜리 명제는 얼마만큼이나 쓸모없고 또 얼마만큼이나 쓸모 있을까. 적응기 2편도 물음표로 시작해 물음표로 끝났다.




*인용한 자료

김연주, 2012, “페미니스트 참여관찰 연구과정에서의 윤리적 딜레마,” 『여성주의 역사쓰기: 구술사 연구방법』, 서울: 아르케.

마사히코, 기시 (김경원 역), 2016,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고양: 위즈덤하우스.

에이블먼, 낸시 (강신표·박찬희 역), 2014, 『사회이동과 계급, 그 멜로드라마』, 서울: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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