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 차 없는 거리, 연세로



이름이 죄다. 신촌 근방에서 시작한 스터디로부터 모임, 이제는 단체가 된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신촌 소재의 대학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 나는 조금 억울하지만, 해맑은 이름의 연원 - ‘신촌에서 만났으니 우리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만큼 짐짓 귀여운 이 사람들의 성격을 잘 알려주는 사연도 없다. 무의미의 의미라지만 우리가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임을, 그러니까 흑석문화정치연구그룹이나 부평문화정치연구그룹 또는 난곡문화정치연구그룹이 아님을 체감하는 순간들도 있다. 사무실을 구할 때, 이사를 준비할 때면 단체의 이름에 지명이 있으니 신촌 지역을 우선순위로 고려할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정체성 보다는 지리적 경계에, 길들여진 장소 보다는 물리적 공간에 가까운 이름인 신촌. 그러나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게도 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신촌에 관해 생각해야 할 순간이 너무 늦었지만 어찌되었건 왔다. 서대문구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세로는 신촌로터리에서부터 연세대학교 입구까지 뻗은 이차선 도로다. 대중교통지구라는 조금 생경한 단어는 대중교통만이 다닐 수 있는 지역을, 그리하여 버스 등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의 진입이 제한됨을 의미한다. 특히, 연세로의 경우 금요일 14시부터 일요일 22시까지는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된다. 평일 중에는 거의, 주말에는 전혀 차가 없는 거리다. 서대문구는 연세로를 다시 승용차가 다닐 수 있는 거리로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신촌 일대의 자영업자를 위해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구청이 근거로 제시한 자료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상권침체의 원인을 그저 대중교통지구 때문이라 한정할 수 있나? ‘신촌 상권 침체’와 관련한 담론은 꽤나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일전 2015년 발표된 공간과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모 논문에서 신촌은 문화 백화현상—젠트리피케이션 이후로 ‘문화정체성’이란 것이 상실되고 상업지로서 매력을 잃는— 의 한 예시로 언급된 바 있다. 더불어 2012년 전후로 신촌은 수많은 상가 건물이 경매에 나오고 있는 상가 공동화 현상의 뜨거운 감자로 언급되곤 했다. 한편, 대중교통전용지구의 도입이 상가 침체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지역 경제에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2016년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중교통전용지구 도입 이후신촌점포를 방문한 시민의 수는 28.9%, 매출액은 4.2% 상승한 바 있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도린메시는 “지역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지역의 책임이라고 비난받는 문제들로 해당 지역문제가 상정된다”고 말한다. 구청의 이번 발표는 신촌의 상권 침체 원인을 ‘지역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균등은 단순히 절대적 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의 입장을 따를 때 상권 침체는 서울 또는 더 넓은 단위 내에서 지역들 간의 관계적 측면에서 실필 필요가 있다. 경제적 차원의 득실을 넘어 환경의 측면에서도 차량을 통한 지역 방문을 장려하고 이를 통해 지역 상권에 낙수를 기대하는 일이 과연 옳은지 또한 고민해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은 최근 연세로 인근으로 이사했다. 지하철을 타고 연구실로 향하는 나는, 매일같이 연세로를 걷는다. 걷는 일은 으레 그렇듯 내게도 특별한 순간이 아니다.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인 르페브르 식으로 말하면 “리듬에 붙잡힌” 상태, 걷기 또는 산보의 리듬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중 연세로를 걷는 일이 지닌 어떤 특별함에 관해서 알지 못했거나 또는 꺼내어 말해본 적이 없다. 분석을 위해서 외부화가 필연적이라면 이런 계기들, 구청의 독단적인 결정이야말로 충분한 사건이 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조금 느끼하게 표현해 르페브르가 말하는 식으로 리듬분석가가 되기 위해, 안이면서도 밖인 테라스에 가만히 서서 저 도시의 리듬을 살펴보면—, 연세로에서 걷는 내가 지녔던 리듬, 그리고 내게 응답한 또 다른 리듬들—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모빌리티, 떼로 모여 길을 막아 걷더라도 넓은 인도 탓에 눈짓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었던 익명의 누군가, 버스킹을 하던 청년들—은 (아직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한 옹색한 표현 뿐일지라도) 특이한 것이었다.


물론 연세로가 세종로가 되어도 일상은 계속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이나 계기가 없었다면 잠시 멈춰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을 게다. 발과 발, 누군가에겐 휠을 돌리는 순간과 순간, 어차피 일상은 반복과 차이의 연속이고 사라진 리듬을 채우는 것은 새로운 리듬이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학문의 세계에서는 돈을 낳는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증식의 회전문이 더욱 빠르게 돌리고 일상의 속도가 재편된다고, 또는 산책자의 거리감과 댄디함이야말로 대안적인 것이라고 논한다. 앎이 미약한 나는 그것이 아직 무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신촌은 사연많은 동네, 서른 해 전에는 록카페를 비롯한 ‘향락업소 퇴진’을 위한 정비계획이, 스무 해 전에는 월드컵의 과실을 위해 거리정비라는 이유로 노점상을 몰아내고 문화축제니 문화의 거리니 하는 사업이 장려되었던, 십년 전에는 브랜드 중고서점과 영화관이 들어서 헌책방과 서점을 밀어내었던 동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이 변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걸, 나는 안다. 그러니 외칠 수 밖에,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 공약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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