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 요즘 뭐하니?

2019년 8월 2일 업데이트됨


정말 열심히 해야지. 청년담론과 TV드라마를 공부하는 나는 이번 학기에는 기필코 튼튼한 이론적 지식도 쌓고, 경험도 쌓아보자고 활동과 세미나로 일주일을 빼곡하게 채웠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듣고, 행동하고, 말도 얹어보느라, 그리고 그 모든 일정의 중간중간과 끝에는 텍스트를 읽느라 허리가 휜다.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잠을 자고 싶지만, TV드라마를 연구하고 싶으니 TV는 좀 보고 자야 할 것 같다. 의지 반 핑계 반으로 거실로 향한다. 그리고 마주쳐버렸다. 엄마를! 들어버렸다. 그 질문을! ‘요즘엔 뭐하니?’. 나는 도망치듯 응~그게말이지 하며, 내 방으로 도망친다.


서운함 폭발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서면서, 미안함은 배가 된다. 얹혀사는 주제에 왜 이것 하나 성실하게 대답해주지 못하는지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한다. 피곤 노곤 해서. 하나하나 설명하기 힘들어서. 엄마가 잘 모를 것 같아서. 비단 늦은 밤 뿐만이 아니다. 아침밥을 먹다가 불쑥, 저녁밥을 먹다가 불쑥 이런 질문들을 마주하고,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엄마 나는 비판적 어쩌구저쩌구‘ 이론과 개념어를 섞어 설명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음 엄마 나는 티브이로 한국사회의 문화정치적 맥락을 읽어내고 싶고 그게 즐거워‘라고 할 때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랑은 말이 안통한다니까, 엄마는 몰라’의 마음으로 도망친다.


열심히 살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연구자로서 나의 경험들은 이제 막 육화되기 시작하지만, 왜인지 취직한 친구들의 양복은 벌써부터 몸 위로 번쩍인다. 이대로 작아질 수는 없다. 너도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의 일상에 다른 가치를 부여하고 싶고, 나는 공부를 ‘아무도 몰라주지만 중요한 일’로 의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아무도 몰라주는 공부’를 엄마는 자꾸 알고싶어 하는 것이다! ‘불안한 일상 속에서 분노의 방향은 가장 취약하고 약한 이들에게 향한다’. 혐오 정동의 방향을 비판하면서, 나는 나에게 가장 취약한 사람, 엄마의 질문들을 치워낸다. 엄마의 개입을 튕겨낸다. 엄마의 부대낌을 회피한다. 내가 취약한 이들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면서, 역설적으로 나에게 취약한 그리고 나를 가장 알고 싶어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문다.


이 모든 것들을 뒤집고 싶었다. 의지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사건으로 도래한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TV드라마 <봄밤>을 보던 어느 여름밤, 엄마가 거실로 나와 앉았다. 조용한 시청이 이어지다 갑자기 엄마는 ‘만약에’ 놀이를 시작했다. ‘만약에 네가 저 드라마 속 상황이라면~‘을 갖가지로 변주하여 묻고 또 답하는 이 놀이가 퍽 즐거웠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이후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우리는 ‘만약에’ 놀이를 즐겼다. 놀랍게도 이 드라마의 종영 즈음에 나는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해하거나 받고, 평가되거나 하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형태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갖가지 만남들, 부딪힘들, 부대낌들을 멀리하고 싶은 욕망에 빠졌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내 공부는 아주 중요해서 아무도 몰라야하고, ‘아무 데‘에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불안할수록 ‘나는 안다’와 ‘너는 모른다’를 도돌이표 돌았다. 그때마다 나에게 취약한 이들을 무지의 영역으로 착취했던 것을 잊지 않겠다. 역설적으로 이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는 일은 흔히 ‘수동적 수용’으로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TV드라마로의 몰입 속에서 가능했다. 엄마는 바깥에서 쏟아내는 내 번지르르한 말들과 내밀하고 지저분한 실천이 만나는 장소, 이제는 그곳에서 도망치지 않을 내가 가장 단단해지고 싶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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