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 각하 그리고 나, 난감한 ‘퀴어함’



올해 1월 22일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은 10.26사태를 다룬다. 영화 속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기위해 경쟁하는 영화 속 김규평(이병헌 분)과 곽상천(이희준 분)의 모습에서 관객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을 떠올린다. 김규평의 시각에서 10.26사태가 벌어지기까지의 40일을 그리는 이 영화는 역사를 누아르라는 장르를 통해 전유한다. 집무실에서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박 대통령’은 반복해서 ‘배신자를 처단하라’말하고, 그의 수족인 김규평과 곽상천은 경쟁적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다. 청와대는 마피아 집단의 근거지로 그려지고, ‘보스’의 명령에 따라 김규평은 절친한 친구인 박용각(곽도원)을 죽이기도 한다. 비정한 누아르로서 10.26, 민중을 소거해버린 장르적 암투로서 10.26, 어느 평론가가 언급했듯 이 영화는 “탈역사 시대의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산의 부장들>에는 아직 언급되지 않은 기이함(Queer)이 있다. 김규평이 보여주는 수동성이 바로 그것이다. 중앙정보부장인 그는 “각하,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라고 반복해서 묻는다.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누아르라는 장르 속 조직원의 지닌 미덕이라지만, 절친한 친구를 죽이라는 암묵적인 명령 앞에서도 그는 선택권을 각하께 양도한다. ‘각하’에 대한 그의 마음을 ‘지극한 충성심’이라 평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총애의 경쟁자인 곽상천이 여기 개입하면서 이 역시도 난망해진다. 각하가 ‘나’보다 곽상천을 더 신뢰하게 될 때, 각하가 ‘내’가 아닌 곽상천을 궁정동 안가로 초대할 때, 각하를 위해 절친한 친구까지 처리했지만 그가 곽상천의 어깨만을 두드리며 격려할 때, 김규평 역을 맡은 이병헌의 얼굴은 질투에 휩싸여 있다.


대타자인 각하로부터 규평과 상천은 유사 부자간의 인정투쟁 관계를 지닌 것 같지만, 이 역시도 온당치 않다. ‘본인이 하야하면 그 뒤에는 네 자리가 있을 것’이라는 각하의 말에 규평은 “제가 각하의 곁을 지키겠다”고 이야기한다. 규평의 욕망이 가리키는 장소는 ‘각하(아버지)’의 자리가 아닌, 각하의 ‘옆’이다. 둘은 유사 연애 관계처럼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규평을 부르는 호칭인 ‘임자’는 아래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면서 동시에 부부가 되는 짝을 의미키도 한다. 박대통령의 비밀 계좌를 관리해온 심복이 있다며, 박용각은 말한다. “각하 옆에 숨어서 단물을 빨아먹는 마누라가 따로 있었다고!”. 대통령의 전화를 끈질기게 기다릴 때 그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른 놈 목소리, 그날 재평은 10.26을 결심하게 된다. ‘혁명의 배신자로...’ 아니, 사랑의 배신자로 널 처단한다.


지난해 개봉했던 <천문>을 비롯해 동성사회적으로 집필된 역사와 동성사회적으로 재현된 공간 속에서 중년 남성들은 서로 ‘사랑’을 한다. 경직된 이름 -군/신 또는 보스/부하- 너머로 이들의 관계는 ‘마치 사랑처럼’ 제시되지만, 이때 사랑 그 자체는 물화物化된 상태로 머물며 질투나 헌신 너머로 나아가지 못한다. 수동과 능동, 가학과 피학이 본질적으로 구분된 영화 속 사랑은 기실 지배의 양식과 다르지 않다. ‘탈역사적 장르 영화’라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평가를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위로부터의 역사 -왕조사- 와 은폐된 남성 권력 -궁과 청와대- , 국민(남성)배우들 -이병헌, 최민식 등- 을 놓지 못하는 어떤 욕망들은 서사적 고갈 앞에서 이제 그들을 서로 사랑하도록 만든다. ‘K아저씨영화’의 위기, 그럼에도 그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든 말하고 싶은 욕망은 탈출 전략으로서 ‘사랑’을 낳는다. 그것도 지배의 양식을 닮은 사랑. ‘각하 그리고 나’라는 난감한 퀴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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