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운동의 말들 1 "최저임금은 청년임금"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경제가 멈추어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 협상 시기는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최저임금은 매해 여름 결정된다. 이듬해의 최저임금을 8월 5일에 고시하도록 법적으로 정해져있지만, 기한을 넘기는 때가 더 많다. 임금을 찔끔만 올리거나, 올리지 않거나, 심지어는 깎고 싶은 사용자와 무조건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노동자 위원들이 원만하게 합의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깝다. 노사와 함께 이 협상에 참여하는 공익위원이 자연스럽게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게 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측 9인, 사측 9인, 그리고 정부 추천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온전히 정부추천 몫이기 때문에 9명의 공익위원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 혹은 이들을 추천하는 자가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의 폭은 큰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최저임금위원회에 배석으로 참여했을 때도, 절실한 양측이 공익위원을 치열하게 설득하는 과정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공익위원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공익위원을 임명한 정부의 방향성이다. 그럼 정부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담론일 것이다. 제도는 독자적으로 생성되거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도는 그 제도를 둘러싼 다양한 환경요인과의 상호작용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슈미트(V. Schmidt)는 각 사회의 제도와 정책이 경제적, 제도적, 정책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다양한 정치 행위자들이 제도담론을 생산하고 확산시킴으로써 제도의 변화과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담론적 제도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이때 사회운동은 대표적인 담론 생산자로서 담론을 경유하여 제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별안간 화제를 모으고 너도나도 1만원을 외치던 때에는 모든 대통령 후보가 최소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된 두 해 이후에는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어 실제로 2019년은 2.9% 인상이라는 초라한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올해는 코로나19와 경제불황으로 인해 더 어려운 최저임금 협상이 될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 구호 이후의 플랜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이 구호가 힘을 잃은 지금 별다른 전략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동력은 사실상 상실되었다. 그렇다면 출구를 빨리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최저임금 운동에서 유효했던 전략들에 대해 정리하고,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은 어디인지 결정한 뒤,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연칼럼에서 연재하는 ‘운동의 말들’ 안에서도 ‘최저임금 운동의 말들’을 가장 먼저 다루고자 한다. 다음 신문연칼럼을 쓰게 될 두 달 반 뒤에는 최저임금 운동이 뚫어낸 새로운 출구를 걷고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최저임금 논의를 위해 만난 편의점 점주분이 10년 전을 회상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10년 최저임금이 4,110원이었을 당시, 누가 와서 아래 점포는 3,500원을 준다고 이야기 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때는 나도 그런가보다 하고 3,500원을 줬다. 그때는 왜 4,110원을 줘야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편의점 영업을 시작하면서 법정 최저임금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이다. 나또한 2010년, 2,800원의 시급을 받고도 별 문제의식 없이 일 하기도 했다. 1986년에 제정되어 1988년부터 시행된 최저임금제도인데도, 최저임금이 우리에게 이렇게 익숙해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최저임금을 이렇게 당연하게, 또 중요하게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리고 이 답에 반드시 사회운동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설득하기 위해 1988년부터 2017년까지의 최저임금 관련 기사를 수집, 분석하였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의 보도는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 검색’을 통해, 그 이후의 기사들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와 조선일보의 아카이브 지면보기 서비스를 통해 수집했다. 1988~2006년 기사는 ‘최저임금’으로 검색해 나오는 모든 기사를 수집하였으며, 2007년 이후는 ‘최저임금 청년’을 키워드로 검색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 두 언론사의 400여개 기사가 수집되었다.


<그림1> 최저임금과 청년의 보도 빈도 추이

위의 그래프는 최저임금 보도와 그 보도 중 ‘청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 수의 추이이다. (검색방법이 다르기에 별도의 그래프로 표시하였다.) 최저임금 보도에서 ‘청년’은 2008년 처음 등장해 2009년 본격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그래프를 확인한 뒤 2009년 준비과정을 거쳐 2010년 노동조합을 창립한 청년유니온의 운동이 이 담론의 성장과 관련있을 것이란 잠재적 결론을 두고 기사분석에 돌입했다.

최저임금 관련 기사를 읽다보니 최저임금 ‘주체’의 역사가 확인되었다. 1980년대 후반 최저임금 등장 시기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의 목적에 대해 홍보하며 ‘저학력·저임금 산업·여성 노동자의 임금’ 문제를 제기하였다. 급격한 산업화 이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의 이면을 이야기하는 기사들에서는 “시집갈 때 쓸 돈을 모으지 못해 걱정”인, 퇴근해도 “돈이 없어” 문화생활은 포기한 채 “자취방에 틀어박혀있는” 25세 여성과 “해마다 전세금 인상철”을 걱정하는 30세 노동자, 여가라고는 “텔레비전 보는 것”뿐인 젊은 부부 등이 등장한다. 얼핏 보면 최근 인터뷰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언론에서 이야기되는 ‘n포세대’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들에서 그들은 청년세대보다는 다양한 노동자 중의 한명으로 호명되었다.

이후에는 저임금노동자 중에서 경비, 여성, 이주 노동자들이 조직화되면서 이들의 최저임금 관련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는 ‘비정규직과 최저임금’에 관한 기사가 등장했다. 이 시기부터는 특정 계층의 노동권 문제로 인식되던 최저임금 담론에 불평등과 소득 재분배 관점이 결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담론장에서 청년은 저임금 노동의 당사자가 될 수 없었다. 심지어 26세 노동자의 인터뷰를 싣고는 ‘4~50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의 당사자라고 언급한 기사도 있었다.

최저임금의 당사자로 ‘젊은’ 계층이 등장한 것은 ‘알바생’이라는 단어의 확산 이후였다. 나이가 어려 근로계약서 작성 등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알바생의 고충이 기사에 등장하며 최저임금 문제기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최저임금이 ‘청년’의 문제로 이야기 된것은 아니었다. 알바‘생’의 ‘생’은 학생을 즉, 대학생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 <88만원 세대>가 출간되어 불쌍한 계층으로서 ‘20대’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이렇게 형성된 청년담론 위에서 탄생했다. 청년유니온은 창립초기부터 최저임금을 주요 이슈로 제기하였다. 편의점을 방문하여 아르바이트 실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편의점에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는 실태가 확인되었다. <88만원세대>를 통해 (단어가 ‘청년’은 아니지만) 20대의 열악한 환경이 조명된 상황에서 청년이 경험하는 사회 부조리로서 저임금은 특정 계층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미래 맞닿아 이해되었다. 최저임금 당사자의 규모를 큰폭으로 확장하고, 담론적 기회구조를 열어낸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라는 구호로 최저임금 당사자로서 청년, 최저임금도 못받고 있는 청년 노동자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기사의 빈도를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최저임금제도와 청년이 본격적으로 결합된 것이 2007년 이후 청년 담론의 확산 이후가 아닌 2010년 청년유니온 등장 이후라는 점, 청년유니온 등장 이후 담론이 사용하는 언어가 ‘대학생’, ‘알바생’의 ‘용돈벌이’에서 ‘청년’,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인턴 등을 포함한 ‘노동’의 ‘최저임금’으로 변화하였다는 점에서 담론에 기반해 형성된 사회운동이 다시 제도담론에 바꿔내는 상호작용이 확인되었다.

이 운동을 통해 최저임금의 당사자로서 ‘청년’이 각인될 수 있었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단위인 ‘최저임금위원회’에 당사자가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2015년부터는 청년유니온도 청년 노동자의 대표로서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이 ‘최저임금’ 문제를 본인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청년’이 정치세력화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실제 한겨레의 설문조사 결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이 원하는 정책 중 ‘최저임금 인상’이 24.1%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청년들에게 최저임금에 대한 명확한 정책선호가 생긴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은 ‘사회의 불평등 해소’라는 본연의 가치로만 결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저임금 문제를 발굴한 운동주체가 청년에게 최저임금이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침으로써 담론장 내에서 제도의 방향이 변화했다. 여기까지가 2010년대 초반까지의 최저임금 운동과 최저임금 담론이다. 이렇게 ‘최저임금’ 자체의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간 이후, 2012년 ‘최저임금 1만원’ 구호가 등장하였다. 이 구호의 최저임금 인상에 미친 영향과 최저임금 담론, 운동의 동학은 다음 ‘최저임금 운동의 말들’에서 다룬다.


*해당 칼럼은 정보영의 2018년 석사학위 논문 <청년 불안정 노동자 운동과 담론정치: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 담론과 정책에 미친 영향>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사 내용의 확인이나 인용을 위해서는 해당 논문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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