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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지수] 연구자 세계의 노동과 '일잘'



여러 프로젝트나 실무를 준비하면서, 학술세계에서 요구되는 일처리의 특성을 더욱 체감하는 요즈음이다. ‘연구’와 ‘교육’, ‘기획’과 ‘제반 실무’는 매우 다른 차이를 갖는 일들인데도, 연구자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이 모든 것을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진학하기 전엔 잘 몰랐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대학원생을 미취업자이자 사회에 나오지 못한 준비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분명히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와 교육 이외에도 갖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그 일에 대한 인정과 성과가 미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신진)연구자 또한 분명히 ‘노동자’로 양성된다. 학술 장의 특정한 성격을 반영하지만 철저하게 비가시화되어 있는 노동들을 하면서.

더 이상 학술 장에서는 ‘연구나 강의만 잘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연구비를 지원받고 생활비를 벌고 네트워크를 꾸리는 과정에서 실무처리에 대한 능력을 자연스럽게 요구하고, 자연스럽게 전담시킨다(이런 특성은 예술가/활동가 그룹이 갖는 특징들과도 만난다). 연구활동들을 시작하면서, 또래의 주변 연구자들 중에 이미 연구 이외의 분야의 능력을 습득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무척 놀랐었다. 이미 각종 디자인과 인쇄출판 영역에 한 발을 담가 놓은 사람도 있고, 정산과 회계에 능통한 사람도 있고, 탁월한 기획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능숙한 언변과 진행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가끔 어떤 연구자들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능력자다’라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착잡해진다. 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그렇게 여러 능력을 가진 ‘일잘’이 되어야만 했을까?

신진연구자의 경제적 삶은 아무리 본인이 싫어도 그런 걸 체득할 것을 요구하고, 학술세계의 질서들은 그런 노하우를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엄명하면서도 공식적인 영역에서 제대로 된 노동과 연구활동으로 쉽게 승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욱 방향이 쉽게 전도된다. 애초에 하고 싶은 연구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놓아야 하고, 그러려면 자기가 수행하려던 연구보다도 우선해서 실무 일을 습득하고 통달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연구사업이든 학술행사든 모든 것이 실무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술 장에서 요구되는 여러 노동의 성격은 전형적인 관료제 조직에서 운영되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매우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대개의 일들이 ‘매뉴얼이 없는 상태에서’ ‘암묵적으로 유연하게’ ‘알아서’ 처리된다는 특성이 있다. 만약 공공기관처럼 공식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속에서 명확한 보직이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한다면 체계가 약간 다를 수는 있을 것 같다.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업무를 나누어 주고 책임자의 성격에 따라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 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의 경험에 맞추어 생각하기로는 대부분의 학술조직이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고 있다.

일과 조직의 구체적인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아이디어와 실무를 동시에 가져와서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업단 같은 조직에서는 주로 연구 아이디어만을 위주로 논의가 진행되고 실무는 경력이나 아랫사람에게 특별한 매뉴얼 없이 자연스럽게 전담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별히 일을 먼저 시키는 사람이 없지만, 비어 있을 경우 큰일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주관을 투여해서 알아서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들도 많았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담당자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빠른 연락을 계속 나눠야 하는 경우도 많으며, 이런 부분은 연구팀과 실무팀을 막론하고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또 프로젝트든 학술행사든 일괄적인 일처리의 매뉴얼이 항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 때쯤이면 이런저런 일이 필요하겠거니 준비하고, 누군가는 총대를 매고 일일이 코디네이팅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즉, 펑크가 나면 안 되는 일들에 대한 항시적인 불안감을 가져야 하고, 아무도 대놓고 무언가를 부탁하지 않더라도 총괄 자리에 들어갈 사람이 결국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런 학술계 노동의 매우 암묵적인 특성들은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는 ‘슈퍼맨’들을 만들어냈다. 슈퍼맨은 타인과 일일이 소통하지 않더라도 자기 선에서 문제를 매우 잘 처리해내며, 남들보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일을 떠맡게 된다.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는 것조차 번거로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피하려 하고 일로 인한 트러블 또한 거의 만들지 않는다. 슈퍼맨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매뉴얼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슈퍼맨이 슈퍼맨이 될 때까지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의 정신적 부침과 소진이 있다. 아무도 그런 소진들을 쉽게 눈치채지는 못하며, 처음부터 슈퍼맨이라 그런 줄만 아는 경우도 많다. 또한 슈퍼맨은 유전자 같은 것이 아니어서 대를 잇지 않기 때문에, 학술 장에서 노동들을 수행하기 위해 적합한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학술 장에서 요구되는 노동에 대해 그런 방식의 감각을 습득하는 과정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학계에 진입하는 물리적 나잇대를 볼 때 그 전 단계에서의 노동경험이 전무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예전에 해오던 일처리 방식과 지금 요구되는 방식 사이에서 많은 충돌을 겪고 조정해야 하는 사례도 많았다. 일례로 수직적인 조직에서 일해왔고 상부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해야 하며 일에서 자신의 주관을 빼라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초기의 노동경험을 생성했을 경우, 학술 장에서의 노동에 대한 적응이 이전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생애 초기 단계에 수행되었던 노동이 나에게 주입한 습속이 존재하고, 계속 그것과 맞서 싸우면서 감각을 길러 나가면서, ‘연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실무/행정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말 그대로 공부만 해온 신인류 같은 연구자를 만날 때가 있다. 혹은 연구에 비해 실무와 행정의 문제를 낮잡아보거나, 실무자를 하대하거나, 일을 잔뜩 벌리고 뒤에 수습할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연구자들도 적잖이 보게 된다. 아마 학술세계에서 노동의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 것은 이렇게 연구와 노동이 칼같이 분리될 수 있다고 믿고, 후자를 격하시키는 학계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가 살아가는 학술세계에서 요구되는 노동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 그리고 ‘일 잘하는 능력자’를 단순히 상찬하거나 지향하는 것을 넘어서 ‘일잘’의 구체적 조건들을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노동의 관점에서 학술생태계의 질서를 살펴보고 연구하는 일과 연결될 것이다. 근로계약서조차 쓰는 일이 극히 드물고, 위촉한 적이 없기에 해촉증명서 또한 받을 수 없는 신분으로 일하는 연구자들이지만, 노동은 우리의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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