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연구문화의 어려움과 필요성에 대하여



대학원 사회라고 말할 만한 곳에 들어온지도 (중간에 쉬었던 기간을 제외하면) 약 3년 반, 여러 방식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이 있다. ‘주변 연구자들’, 특히 비슷한 시기에 공부를 하는 동료 연구자들의 존재와 관계들이 생각보다 연구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업 안팎에서 만나는 좋은 연구 동료들의 존재는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도 확신할 수 없었던 자기 연구관심사를 구체화하거나, 연구하는 삶 자체에 대한 태도를 정향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는 동료들과 아직은 미성숙한 형태에 있는 나의 문제를 나누고 토론하거나 서로 비판하는 시간들. 그것은 동시에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교수 대 학생과는 다른 형식의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 기회이자 나 자신을 ‘연구하는’ 주체로 구성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연구자로서의 내가 ‘관계’들을 기반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학교 내외부에서 동료들을 통해 구성되는 ‘연구문화’가 대학원생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비중 있는 요건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연구문화를 통해 연구자가 자신을 재구성하는 계기들은 제도적인 준거점(특히, 소속 분과학문의 재학기간 동안의 분위기)를 따라 ‘우연히도’ 오게 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이런 우연성은 특히 연구문화가 대부분 대학원이라는 제도화된 학술기관을 준거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온다. 학과 내부의 공식/비공식적 공동체를 통해 연구문화를 유지하거나 혹은 그런 공동체가 아예 ‘부재’하는 등 학교별 연구문화 상황이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한편, 학교 바깥의 연구자 네트워킹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별 대학원 및 전공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맥락은 달라지겠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그러한 연구문화가 지속성의 문제에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는 좀더 복잡한 맥락들이 교차되고 있다.

우선 현상적으로는 갈수록 줄어드는 국내 대학원생의 ‘인풋’, 더 정확히는 장기적인 연구자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대학원생의 인풋이 줄어든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라 학과에서 계승의 형태를 띠는 전공별 연구문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축이 되는 교수나 (오래된) 박사 선배가 발휘하는 꾸준한 지구력과 희생에 근접한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학내 연구공동체가 학교에 의해 지원을 받고 있는 환경이라면 그나마 좀 낫다). 다른 한편으로, 학교 바깥에서 독립연구자의 길을 걷거나 혹은 학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지 않은 환경에 있는 연구자의 경우 자신의 연구활동을 성찰적으로 고려할 환경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예컨대 문화연구처럼 해당 전공이 분과학문 내부의 세부전공으로 안착해 있거나 비주류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이러한 학문하기의 난이도는 훨씬 높아지게 될 것이다. 문화연구를 일례로 든다면, 일부 학교의 사례를 제외하면 많은 학생들이 ‘동기’조차 없는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하거나, 전공관심사나 진로가 비슷한 학생을 만나기 어려워 학교 바깥에서 네트워크를 찾아 헤매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연구문화의 어려움은 현실적인 맥락의 문제 및 도구화/위계화된 지식생산체제의 문제와도 교차한다. 대학원생의 많은 삶이 혼자 공부하는 ‘각개전투’와 ‘시간관리’, ‘자기관리’의 문제로 규범화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도 어차피 2년 뒤엔 각자 사라질 모래알들이라서요”, 어느 날 동료와 얘기하다가 들었던 현실적인 지적이다. 대학원 사회에서의 시간이 코스워크를 마치고 실적을 쌓고 졸업을 하기 위한 것인 이상 한정된 시간은 ‘안배’가 필요한 대상이 된다. 특히 가시적인 성과가 중요시되는 학계의 지식 생산 체제에서 대부분의 ‘교류’라는 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비즈니스’로 환원되기 쉽다. 또한 애초부터 ‘해외에서 활동할 연구자’ 혹은 ‘비-연구자’로 자신을 정체화함으로써 국내 대학원을 학위 또는 이행의 수단으로 의미화할 경우에도 이러한 연구문화는 부차적인 문제로 남게 된다. 한편으로는 든든한 지원배경이 있지 않는 이상 생활비나 학비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생계를 위해 프로젝트나 복수의 노동을 병행할 필요도 생겨난다. 당장 내일까지 보고서를 써 내야 하는 마당에 ‘연구문화’니 ‘공동체’니 하는 것들은 굉장히 거창한 그 무언가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연구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학회나 콜로키움, 발표회와 같은 무수한 행사들이 제도화되어 이것이 실제로 큰 “학회의 효용”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이러한 행사들은 태생적으로 교수나 선후배와 같은 수직적인 관계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더 경험 있고 전문화된 ‘선배 연구자’가 진행하는 평가와 조언의 형태를 갖게 되기 쉬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분과학문 내에서의 지속적인 연구문화 및 공식적인 학회 경험과 더불어, 비공식적이며 최대한 수평성을 지향하는 형태의, 그리고 소속학교의 경계를 넘어선 형태의 대학원생/범 연구자 네트워크의 구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종류의 기획들은 당연하게도 여러 시행착오나 한계들을 동반하겠지만, 그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한 질문과 학문하기의 의미, 지식 장의 구조와 학문/지식공동체 구성의 어려움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품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도의 가치가 충분한 작업이다.

연구문화의 대안적 구성이라는 기획은 동료라는 범주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개인화된’ 연구자, 혹은 동일성을 따라 쉽게 상상되는 ‘특정’ 집단의 연구자에서 ‘관계들과 차이들 사이의’ 연구자로 자신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의 삶의 궤적과 동료의 그것들을 제약 없이 천천히 포개어 보는 것, 주기적인 위기나 경계로 점철된 연구자들의 삶에서 어떤 것들을 공부하고 서로 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느슨하지만 지치지 않는’ 관계의 네트워크와 그 구성 조건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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