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강의가 끝난지 오래지만, <강단 표류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적는 것이 늦었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몇 번의 수업과 기말 고사를 끝으로 첫 강의 경험을 마무리했고, 가족들과 휴가를 다녀왔으며, 강의 평가를 기다리느라 휴가 기간 내내 휴대폰의 웹페이지를 새로고침 했다. 가을 학기의 강사 자리에 지원했고, 곧 떨어졌다.
강의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 됐다. 첫 시간에 비 전공 분야를 전달하느라 쩔쩔맸던 것에 비해, 이후의 시간들엔 비교적 내 전공에 가까운 문화이론과 저널리즘을 소재로 했기에, 준비한 것들을 전달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시험을 치르게 했던 경험은 생각보다 특별했다. 문제를 내면서 내 강의와 학생들의 반응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어떤 부분을 재미있어 했고, 또 힘겨워 했는지 되짚어 가면서, 가장 적절해 보이는 질문들을 문제를 만들었다. 시험 당일은 좀 당혹스러웠는데, 시험이 시작된지 15분 만에 20%정도의 인원이 (거의) 백지를 내고 나간 탓이었다. 학부 시절 몇번 '금메달', '은메달'로 시험장을 빠져나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때 스스로 괴로움과 부끄러움, 모종의 해방감만을 느꼈을 뿐, 내 백지 시험지를 받아든 출제자의 표정을 살핀 적은 없었다. 출제자의 자리엔 생각보다 여러 마음이 교차했다. '그 동안 강의가 별로였어서 시험 공부도 안한걸까? 문제가 너무 예상 외였을까? 원래 공부를 안하는 학생은 아닐까?' 같은 공간에 여러 마음이 있을 수 있다는 쉬운 진리를 다시 배우게 되는 순간이었다.
강의 평가는 더 특별했다. 사실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많은 학생들이 '너무 어려운 내용을 교양 강좌에서 소화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사실 그랬다. 자신있게 강의할 수 있는 내용을 정하느라 이론적인 내용들을 많이 삽입했고, 아마 그 부분에서 학생들의 기대와 어긋났을 것이다. '처음부터 강의를 맡았더라면 더 긴 호흡으로 이론들을 소개했을텐데!' 라는 자기합리화의 목소리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어떤 학생들에겐 이런저런 사정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독선적 강의였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 잘 해냈다고 생각한 강의였음에도 이런 평가들을 받고 나니, '쉬운 일이 없다'는 쉬운 진리 또 하나가 먼지처럼 머리에 내려 앉았다.
강의 평가까지 받아들고 나니, 직업적 강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주위 선배 연구자들과 강사법이라는 이슈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사라는 지위의 불안정함을 넘어선 휘발성, 그곳의 구성원이면서도 또 아닌 자가 느끼는 정동들, 학생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로서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당혹감, 가끔의 고마움, 기특함, 강사법이라는 큰 제도적 변화 속에서 어쨌든 인터넷 채용공고를 뒤져 내 자리를 찾고, 어렵사리 서류를 마련해 지원하고 또 실패해야하는 방학 중의 서러움… 늘 동경해왔던 강사, 선생의 자리가 이제는 강의실 안팎에서 자기 투쟁 중인 사람들의 자리가 되었음을 배웠다. 쉬운 일은 없구나, 이번 여름에도 또 답 답지 못한 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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