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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준형] 초보강사 이강사의 강단 표류기 ①

최종 수정일: 2022년 2월 18일



학기 중간에 강의를 맡게 됐다. 미디어학을 타과생들에게 소개하는 교양 강좌란다. 박사과정 코스웤도 안끝난 대학원생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싶었다. 강사법이 바뀌어 아마 수료하고도 한동안은 강의 경험을 못할 걸로 예상했었는데, 뜬금없이 경험을 쌓을 퀘스트가 생겼다. 늘 강의를 듣는 입장이었기에, 강의라는 걸 하는 건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를 가르친 수많은 강사들 중에 감동을 주었던 분들도, 매번 수업이 실망스러웠던 분들도 있었다. 나는 강단에서 어떤 강사일까? 나를 시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직은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이라, 누군가에게 대학 수준의 지식을 전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과업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수강생이 80명 가까이 되는데다, 그들이 중간에 새로 들어온 강사를 불편하게 생각할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너무 덜덜 떨어서 웃음거리가 되면 어쩌나 겁도 났다.


시간이 흘러 첫 강의가 한주 앞으로 다가왔다. 강의에 앞서 몇 가지 사항들과 앞선 강의 내용들을 인수인계 받고 나니, 강의를 맡았다는 사실이 더 현실감있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막막했다. 기존 커리큘럼을 얼마나 따라야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피피티를 만들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톤으로 강의를 해야할지 당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작정 학부 시절 보던 교과서들을 꺼냈다. 아,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어있다. 아마도 한 수업에서 가장 열심히 교과서를 읽는 사람은 그 수업의 강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교과서를 따라 피피티를 만들고, 빼곡히 스크립트를 적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한 시간 십오분씩 두 강의를 연달아 해야하는데, 분량을 얼마나 준비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피피티가 스무장이면 될까? 더 해야할까? 고민 끝에 스무장을 준비했다. 이제 정말 학생들을 만나는 일만 남았다.


강의 당일, 긴장과 설렘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오후 수업을 하기 위해 한시간 반 거리에 떨어져 있는 모 대학으로 향했다. 가방엔 노트북과, 혹시 몰라 집어넣은 교과서가 들어있는 채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피피티를 수정하고 스크립트를 정리했다. 강의 초반에 어떤 인사말로 시작해서, 어떤 내용들을 수강생들과 협의할지도 빼놓지 않았다. 처음 강의를 맡게된다는 사실은, 쿨하게 밝히기로 했다. 난생 처음 정규 강의를 맡았으며, 개인적으로 대단히 뜻깊은 시간이라고, 강사가 바뀌어 혼란스럽겠지만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열심히 강의 하겠다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지하철에서의 시간이 좀 천천히 가주길 바랐음에도, 금새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사서 마시기 시작한 차음료를 괜히 입에 가져다 대며 동태를 살폈다. 아직 직전 강의가 끝나지 않은 듯 했다. 강의실 주변에서 폰을 보거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이, 혹시 내 강의의 수강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드디어 전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어느정도 강의실이 비워지길 기다렸다가 앞문으로 들어섰다. 전 수업의 강사 선생님과 가볍게 목례를 하고 가방을 내려 놓았다. 이리저리 전자교탁을 살피며 사용법을 익힌다. 이 정도 했으면 일찍 온 수강생들은 아마 내가 새로운 강사임을 파악했을 터, 더 몸가짐을 조심하게 된다. 전자교탁으로 피피티 자료를 강의실 앞에 띄우고, 노트북을 열어 스크립트를 보기 좋게 올려 놓는다. 수업 시간이 얼추 되어 간다. 강의실은 거의 다 찼다. 생각만큼이나 80명의 수강생은 마주하기 부담스러운 인원이다. 프로페셔널한 강사로 보이기 위해, 수업 시간 정각이 될때까지 일부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수업 시간이 되었다. 오늘, 나는 어떤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서게 될까.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낸다.


"안녕하세요!". 공이 울려서, 1회전..!


- 다음 이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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