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
우리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외모,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우리는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만인선언문 -
2007년 처음 발의(노무현 정부안)되었던 차별금지법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난 2020년 여름 다시 발의(장혜영 의원안)되면서 법안 제정을 위한 투쟁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대단히 급진적인 법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동성 결혼을 인정하라거나 자본가의 곳간을 털어 노동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위의 ‘만인선언문'에서 보듯 차별금지법은 매우 당연해 보이는 ‘포괄적 평등’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반대에 부딪혀 왔다. 장혜영 의원안까지 7번이나 발의가 됐지만 번번히 제대로된 논의도 못해본 채 폐기됐다.
물론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을 테다. 헌법에는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적혀있다.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가하고 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별은 실재한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차별로 고통받던 김기홍 활동가와 변희수 하사는 죽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시장 후보였던 정치인이 ‘퀴어 축제를 거부할 권리’를 운운했다. 그들이 헌법이 그려놓은 세계 속에서 살았다면 차별 받지도, 점잖은 척 헛소리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지 어떤 절차나 제도가 아니라 늘상 무정형의 싸움이 벌어지는 헤게모니적 공간이다. 헤게모니적 투쟁은 정해진 게임을 하는 퍼즐 맞추기와는 다르다. 게임이 누적적이지 않고 변화무쌍하다. 획득했다고 여겨진 평등이 퇴행할 수도, 갑작스레 새로운 형태의 혐오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에게 차별금지법은 하나의 부표다. 해안에서 파도를 타고 놀다보면 내가 어느정도 와 있는지 부표를 통해 알아보고는 한다. 부표를 지나쳤으면 너무 나간거다. 부표가 표시하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방위적인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적 투쟁을 위한, 부표와 같은 최소한의 저지선이 필요하다. 혐오와 차별이 차별금지법이라는 부표에 가로막혀 물러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촛불을 대표하겠다던 정부와 180석 거대 여당은 어떤 정체성과 사회경제적 조건도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평등주의적 언명 앞에서도 지역구 표심과 ‘사회적 합의’를 들먹이며 몸을 사리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것이 민주주의고 투쟁인지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누구나 자기 존재에 의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자.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바로가기 : https://bit.ly/equality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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