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모두에게 안식이, 또 회복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미디어화(mediatization)라는 개념은 사회 전 영역에 대한 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나아가 미디어를 중심으로 사회 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포착한다(박홍원, 2018). 미디어화가 발생하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 정치이다. 이를 정치의 미디어화라고 하는데, 정치의 미디어화가 발생하면 정치적 영역에서의 미디어 제도들(신문과 방송 등)의 영향력이 커지고 정당과 정치인 등 정치적인 영역의 행위자들이 미디어의 논리에 점차 적응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치적 행위가 미디어 실천(보도, 기자회견, 소셜미디어 담론 등)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제약된다.
사회적 재난도 미디어화된다.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세월호, 그리고 이번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미디어화된 재난들을 마주해왔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겪지 않은 재난들을 미디어를 통해 경험하게 되며, 미디어에 의해 재현된 방식으로 재난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미디어는 추모와 애도를 표하면서도 사고 원인을 분석하거나 책임 소재를 따지고, 정치적 사건으로 구성해내기도 한다. 이를테면 삼풍백화점 참사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과잉이 낳은 사건으로, 세월호는 재난 상황에 대한 국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드러낸 사고로 의미화되었다.
그런데 아직 현재 진행형인 이번 이태원 참사는 초기에 기존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미디어화 된 것 같다. 디지털화된 미디어 환경 속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가 참사 초기의 의미화를 맡은 탓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새벽, 뉴스 보도에 앞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 사고 소식들이 올라왔고, 인터넷 커뮤니티들도 불야성을 이뤘다. 특히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고였던 터라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온라인을 떠돌았다. 언론사들의 보도가 으레 씌우는 모자이크나 블러 처리 없는 생생한 참사의 현장이 곧장 모두에게 전달됐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 참혹함을 마주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고자 지속적으로 소식과 현장의 모습들을 들여다 보았던 것 같다. 사진이나 영상 외에도 현장 상황이나 ‘후기'를 공유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이후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고 다음날 정치권이 반응하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참혹하면서도 생생한 경험으로서 미디어화된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적 효과가 발생한 뒤였다.
학계에서도 재난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채널이 신문이나 방송이 아닌 소셜 미디어인 경우에 더 높은 수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가 나타났다고 보고하고 있다(박노일 외, 2018). 트라우마는 그 자체의 심리적 충격 외에도 여러 사회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공동체의 트라우마적 경험이 재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발산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외상을 봉합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양극화된 대립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에도 누군가가 인파를 ‘밀었다’며 특정인을 지목하면서 온라인에서의 ‘신상털이’가 이루어지는 등 팩트 체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참사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디어화 이론의 여러 함의 중 하나는, 미디어가 사회에 깊숙 침윤하는 과정을 역사화하는 데에 있다. 미디어적 현상이 자연적인 것이라거나 원래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미디어화 '되어온' 현상임을 밝혀내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참사 현장의 ‘생생함의 과잉' 또한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자연 발생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라는 기술적인 요소와 실시간 공유와 전파라는 문화적인 요소가 접합되며 구성해온 역사적인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화된 현상은 개입에 노출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의 이용자들은 제멋대로일 뿐인 주체들이 아니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담론의 제약 속에 있다. 그렇기에 재난 상황에서의 미디어 윤리를 사회적으로 구축하는 일은 유효하면서도 중요하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언론계에서는 참사 보도에 대한 실천 요강을 제시했다. 당시의 현장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온라인 상의 확인되지 않은 담론에 대한 인용을 자제하며, 참사 원인과 책임 관련 보도에서도 무리한 추정과 가정을 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비단 언론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게된 미디어화된 시민들 또한, 각자가 하나의 미디어로서 이러한 윤리적 담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제도적으로, 그리고 미디어 윤리와 관련하여, 재난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참고문헌
박노일, 장석환, 정지연 (2018). 미디어 이용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19(4), 673-683.
박홍원 (2018). 정치의 미디어화. <언론정보연구>, 55(2), 5-44.
Comentários